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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멋대로 Feb 14. 2024

모두에게 옳은 길은 없으니까

2. 회사와 나, 우린 제법 안 어울려요

운전이 서투르던 시절 이야기다. 하루 빨리 운전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엄마 차를 몰고 자주 연습 주행에 나섰다. 도로에 겨우 들어서고 나면 만감이 교차했다. 홀로 운전대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인 흥분감을 주었다. 자유를 느꼈다. 자칫하면 재산상 피해를 입거나 입힐 수 있으니 막중한 책임감도 생겼다.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오래 들떠 있지는 못했다. 초심자에게 도로 위는 냉엄한 세계였다. 차선 변경 하나 만만하지 않았다. 차간 거리가 넓어 보여 깜빡이를 켜고 한 차선 위로 가려 하면, 멀리 따르던 뒷차가 부앙- 속도를 올리며 옆으로 바짝 따라붙어 진로를 막아섰다.


끼어들지 못해 황망한 심경으로 옆에 선 차를 보면, 멋지게 선방을 해 낸 골키퍼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든 채 여유를 부리는 운전자가 눈에 들어왔다. 운전자의 옆 모습에서 무언의 메시지를 읽어냈다. ‘여기가 만만해 보이냐 애송아?’


도심 속 도로는 언제나 무자비했다. 전후좌우로 나를 둘러싼 수 많은 차와 신호와 규율과 유무형의 압박 속에,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서 멀어지는 상황이 잦았다. 무섭고 두려웠다. 도로 흐름을 거슬러 내 갈 길을 가려거든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우물쭈물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아주 엉뚱한 곳에 흘러가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 또 다른 도로 위에 섰다. 씽씽 나를 앞질러 지나가는 사람들이 만든 흐름을 따라 앞만 보고 가속 페달을 밟는다. 모두가 어디를 향해 이렇게 바삐 가는지는 모른다. 각자 또렷한 목적지가 있는 걸까. 나는 잘 가고 있는 걸까. 이 도로는 아무리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 속에 어쩐지 나만 갈팡질팡 아슬해 보인다.





“여기서 제가 뭘 하는 지 잘 모르겠어요. 행복하지가 않아요.”




퇴사 선언을 했다. 나에게는 오랜 고민 끝 결론이지만 저들에게는 갑작스러울 만하다. 왜, 뭐 때문이니. 팀장, 부서장, 인사팀 면담이 으레 따랐다. 나는 똑같은 대답을 그들에게 반복해서 전했다. 이곳에서 나는 혼란을 느낄 따름이고 행복하지가 않다. 조직의 성격과 방향성이 나와 전혀 맞지 않다. 구구절절 더 많은 말을 솔직하게 덧붙이고 싶기도 했지만 결국 남긴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어차피 사측은 나 정도 직급 되는 인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생각이 없다. 사의를 전달하려 면담 신청을 한 날에도, 팀장은 바쁘다며 대면을 거부하고 외근에 나섰다. “급한 거면 카톡으로 보내.”하고서는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외면하고 자리를 떴다. 말을 늘여 봤자 의미 없는 넋두리에 불과하다.


내 생각을 뒷받침해주듯 송별회까지 완벽하게 어정쩡했다. 바쁘다는 핑계 안에서 팀장은 이 날은 시간이 안 되고 이 때는 일정이 불가능하고, 아무래도 시간을 낼 수 없다 못 박았다.


결국 팀 전원이 한 전시 행사에 참관하던 날이자 나의 마지막 근무 날, 서울 코엑스몰의 지하 국밥집에서 다같이 20분 가량 말 없이 한 끼 식사를 한 것으로 송별회를 갈음했다. 식사 후에는 각자 맡은 스케줄을 처리하러 빠르게 흩어졌다. 앞만 보고 달리는 데 익숙한 이들에게 차선을 이탈한 ‘낙오자’를 돌아 볼 여유는 없었다.





새삼 이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에 대해 생각했다. 회사라는 도로 위를 나는 어떤 모양으로 달리는 사람이었을까. 아무래도 그들 입장에서 나는 내내 불안정한 모습으로 도로 흐름을 잘 타지 못하는 애송이 같았을 것이다. 회사라는 데가 그런 인원까지 돌봐 주는 곳은 아니므로 내가 받은 취급은 아주 응당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든 아니든, 나의 입장에서 회사란 내가 전혀 가기를 원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느끼지 못할 길을 기어이 가게 만드는 곳이었다. 남들은 그 위에서 쌩쌩 달리고 싶을지 몰라도 나는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아 오랜 동안 주저했다. 대다수가 가는 길이라고 무작정 옳은 길이겠는가. 나의 목적지는 이곳을 통해서는 닿을 길이 없던 것이다. 흙길에 비포장이어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했다.


진짜 어른처럼 밥값 하는 듯한, 그럴듯한 겉모습을 좇아 내 길이 아닌 길에 올라 있었다.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여태 불편했다.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한 주행을 이제 끝낼 때가 되었고, 잘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깔끔하게 매조진 기분은 아니지만 아무렴 후련했다. 이제 다시는 그 길로 가지 않는다는 확신과 결의가 수확이다. 내 인생 마지막 퇴사다. 남은 일은 하나. 이제 무얼 하고 살 것인지 계획할 일만 남았다. 다시 한 번 방황할 시간이 되었다.


남들 다 가는 길을 따라가 보는 도전은 끝이 났다. 끝은 새로운 시작.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용기를 내어 핸들을 바짝 꺾는다. 이제야 내가 서야 할 차선에 똑바로 들어섰다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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