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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멋대로 Feb 21. 2024

요즘 애들은 참 이상해

3. 현실의 벽 너머로

출근은 만병의 근원. 나의 가설이 옳았다. 임상적으로 도출한 결과다. 출근을 안한 지 2주 째, 컨디션이 최상이다. 과도한 육체 피로와 노이로제 증상이 사라졌다. 소화가 잘 된다. 불현듯 화가 치솟지 않는다. 악한 기운을 몸 안에서 뿌리째 쑤욱 뽑아낸 듯 개운하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모두가 바쁜 이 시간에 부리는 늑장이 야릇한 쾌감을 준다. 행복은 여유 안에서 꽃핀다. 느긋하게 움직이는 동안 스트레스가 비약적으로 줄었다. 의무와 책무라고 저들끼리 멋대로 이름 붙인 납덩이를 매단 채찍에, 등짝을 쩍 쩍 얻어맞아 가며 하루치 쳇바퀴를 굴려 줄 필요가 이제는 없어졌다.


그러다 간만에 조금은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슬슬 중대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생각보다 오래 묵혔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이제는 가족들에게 퇴사 소식을 알려야 한다. 현실의 첫 번째 벽을 마주할 차례다.


퇴사를 결심한 건 한 달 이상, 실제 퇴사한 후로는 보름 가까이 지났다. 아직 부모님에게는 어떠한 소식도 전하지 못했다. 아내와 몇몇 오랜 친구들만 아는 사실이다. 전 같았으면 언젠가는 말할 날 있겠지 하는 속 편한 마음이었겠지만 이제는 입장이 살짝 다르다.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퇴사 이외에 덧붙일 이야기가 더 있다. 당장 2주 뒤 나와 아내는 유럽으로 떠난다. 그것도 수 개월 동안이다. 퇴사 전부터 계획했던 일정이었다. 아내는 대학원 수료를 한 학기 남기고 1년 휴학 신청을 마쳤다. 퇴사에 유럽행에 아내의 휴학까지, 전해야 할 말이 가진 무게감이 하나하나 상당했다.




“일을 그만 뒀다고? 왜 또 갑자기? 아이고, 아이고. 머리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부모님과 점심식사를 마친 뒤였다. 카페에 들어서 음료를 주문해 두고 타이밍을 놓칠세라 말을 꺼냈다. 주변 공기가 일순 얼어붙었다. 직접 마주한 반응은 예상보다 더 좋지 않았다. 나의 처지와 결단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엄마나 아버지나 듣는 표정이 엉망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다수의 부모는 자식 걱정을 하기 위해 산다. 그런 입장에서 아들놈이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데 모자라 며느리까지 합세해 황당무계한 소식을 전하니, 뜻밖에 연타석 홈런을 얻어맞은 투수처럼 멍해질 수밖에.




“결혼 하고 이제 좀 정신 차리고 사나 했더니, 아휴.”




그 앞에서도 나는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단순히 일 하기 싫다는 마음에 떼 쓰듯 그만둔 것이 아니다. 명확히 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조직 생활을 계속 해 나가기에 나는 주변과 어울러지 않게 너무 뾰족한 사람이라 힘들다 했다.


나온지 오 분도 안 된 뜨거운 커피 잔이 벌써 바닥을 보였다. 베일 듯 날카로운 감정의 파편이 주변을 떠돌았다. 나의 행복을 위한 결정이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앞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 보려 한다 덧붙였지만 부모님의 표정은 끝끝내 풀리지 않았다.




“난 참 이해가 안 돼. 요즘 애들은 참 이상하다니까. 좀처럼 버티지를 못 하고.”




엄마 딴에는 답답해서 한 소리였다. 조곤조곤히 말을 이으려던 나는 순간 욱해 버렸다.




“그러면 내가 내내 괴로워하면서 버티고 앉았어야 맞다는 이야기야?”




답 없는 논쟁거리가 튀어나왔다. 60년대에 태어나 산 부모 세대와 80~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내 세대 사이 영영 닿을 길 없는, 평행선에 가까운 두 주장이다.


‘어떻게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려고 하냐. 어떻게든 참고 버틸 줄도 알아야지’


VS.


‘참고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내 행복은 내가 능동적으로 찾아야지.’



대치 상황에 있었지만 각 주장의 옳고 그름은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각자 열심히 서로 다른 자기 세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할 따름이었다. 모양만 다를 뿐 부모 세대나 나나 자신이 속한 세대만의 짐을 지고 족쇄를 찼다.


이 족쇄를 여는 방식이 아날로그 방식인지, 디지털 방식인지는 각자 살아가는 시대마다 다르다. 디지털로 점철된 시대에 아날로그를 강요하는 것도, 열쇠만이 해답이던 세대를 구닥다리라 비웃는 것도 그닥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의미 없는 논쟁으로 번지기 전에 모두 자리에서 슬금 일어났다. 우리 가족은 말을 아낀 채 근처 공원을 슬슬 걸었다. 카페에 들어설 때는 비가 왔지만 서서히 날이 개고 있었다. 어차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일이었다. 뒤늦게 통보하여 단박에 이해를 바랐던 나도 욕심을 부린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대로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했고, 부모님도 결국 우리를 이해하고 응원해 주었다.



산 너머 산. 그런데 어쩐지 산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꽤나 보람차다. 나는 본디 잘 닦인 평지를 달리기 위해 사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고개를 넘을 때는 헐떡일지언정 구석진 곳에 웃자란 들풀과 꽃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풍광을 내려다 보는 재미가 좋다. 아무려면 누군가 나를 또 철 모르고 사는 ‘요즘 애들’로 간주한들, 더는 아무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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