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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o Aug 21. 2022

'뿌듯함'을 경험하다.

불안 아줌마의 불안증 투병기 7

우영우는 드디어 회전문으로 들어왔다. 한바다에서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영우는 말한다.

"오늘 아침 느낀 이 감정의 이름은 바로 '뿌듯함'입니다!"


너무나 아름답게 빛났던 뿌듯한 우영우의 모습


16회 동안 방영되었던 ENA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따듯해졌다. 그간 드라마들의 드라마틱한 전개에 익숙해졌던 만큼, 이야기의 전개는 권모술수 권민우만큼이나 내 예상과 달랐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좋았다. 과한 양념이나 화려한 비주얼 없이도 맛있어서 마음이 따듯해지는 음식 같았다.



'뿌듯함',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이 단어는 우영우의 환한 미소에서 밝게 빛났다. 그런데 과연 나는 이런 느낌을 언제 느껴봤을까. 아마 아이가 뒤집고, 걷고, 엄마라고 부르고, 스스로 숟가락으로 밥 먹고 등등 자라면서 매 순간 엄마로서 뿌듯함을 느꼈던 거 같다. 그런데 과연 영우처럼 나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을까. 그리고 무엇이었을까.


대학에 들어갔을 때였나? 학점이 거의 만점이 나왔을 때? 아님 더 오래전 그림 잘 그렸다고 학교 복도에 걸렸을 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랬던 매 순간 해냈다는 생각과 함께 뭔가 불안하거나 걱정스러웠던 기분도 함께 있었던 거 같다. 그렇지만 우영우의 표정은 '충만한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다(이 점에서 박은빈 배우님 정말 연기가 대단하다!). 나 자신에 대해서 이런 뿌듯함을 언제 느꼈을까 싶었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 어떤 행사에 발표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분들도 있었고 처음 뵙는 분들도 있어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한 청년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자신의 명함도 주면서 나를 안다고 인사를 했다. 예전에 쓴 글이나 발표한 것을 보았다면서 말이다. 

그 청년은 목소리는 작았지만 조근조근 자신이 아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쉽게 기억하기는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나 역시 대략적으로는 그 작가와 단체에 대해서는 알지만 그렇게 세세히 기억하지는 못하기에 너무나 놀라웠다. 그러면서 너무나 열심히 내 발표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나의 그 나이 때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당시 나는 그 청년만큼 기억력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저 미술계의 여러 이야기와 현장들이 재밌어서 이리저리 다니며 강연 듣고 참여했었다. 이후 시간이 훌쩍 흘러 참여한 이 작은 행사에서 나의 활동을 기억해주고 좋게 생각해주는 청년을 만나니, 뭔가 가슴속이 따듯해졌다. 훌륭한 어르신들이 칭찬을 해주시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때 내 마음은 무엇이었을지 말이다. 그때 우영우의 대사가 생각났다. 혹 뿌듯함일까?

어쩌면 그 정도로 충만한 기분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20대의 나의 모습을 어떤 청년을 통해 바라보면서, 그리고 내가 당시에 누군가를 바라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그 기분이 떠오르며 느껴진 마음은 뿌듯함과 비슷하 것일 거 같다. 그동안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뿌듯함 말이다. 그러니 불안으로 가득했던 내 마음에 뿌듯함을 조금 넣어도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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