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하루를 버티고 나면 제일 먼저 닳아 있는 건 몸이 아니라 감정일 때가 많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안 바뀌는 사람과 구조에 부딪히다 보면, 작은 말 한마디에도 과하게 흔들린다. 그래서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감정이 덜 새어나가게 막는 장치를 미리 깔아두는 게 필요하다.
우선 사람에게 거는 기대의 모양을 바꾸어야 한다.
상사와 동료가 내 기준에 딱 맞게 움직여 주기를 바라면, 어김없이 실망과 분노가 쌓인다. 완벽함을 전제로 관계를 보지 않고, 저 사람도 나처럼 허점 많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감정의 파도가 조금 낮아진다. 기대를 완전히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이 정도는 다를 수 있다’를 미리 감안해 두면, 같은 상황에서도 상처 받는 강도가 줄어든다.
다음으로는 싸움은 내가 아니라 프로세스가 대신하게 두는 편이 낫다.
대부분의 불필요한 트러블은 말이 앞서 나가고, 감정이 그 말을 밀어붙일 때 생긴다. 그래서 ‘보고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확인받는’ 기본 절차를 습관처럼 밟아 두면 좋다. 이 흐름을 지키면 그때그때 감정으로 맞붙을 필요가 줄어든다. 말싸움 대신 남아 있는 메일, 회의록, 결재 문서가 내 편이 되어 준다.
마지막으로 에너지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에만 투입한다.
팀장 성격, 회사 문화, 조직 정치처럼 한 개인이 바꾸기 어려운 것에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 감정 소모는 끝이 없다. 오늘 당장 조정할 수 있는 것은 내 일 처리 방식, 말하는 태도, 경계 설정 정도일 때가 많다. 그래서 ‘지금 내가 손댈 수 있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같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멘탈이 덜 닳는다. 바뀌지 않는 것에 매달리기보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을 조금씩 넓혀 가는 쪽이 길게 보면 더 안전하다.
이 정도만 의식해도 회사에서 새어나가는 감정을 조금은 아끼게 된다. 사람을 바꾸려 하기보다 기대의 크기를 조정하고, 즉흥적인 감정 대신 절차를 앞세우고, 통제 가능한 것에만 힘을 써 보는 것. 거창한 다짐보다 이런 작은 원칙 몇 가지가 퇴근 후의 나를 덜 지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