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장 멀어지는 순간은 기대가 어긋날 때

회사에서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 사이의 마음이 가장 멀어지는 순간은 기대가 어긋날 때다. 선배는 자신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일을 나누고 싶어 하고, 후배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는’ 일을 맡고 싶어 한다. 그래서 비슷한 생각이 양쪽에서 동시에 자란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하지?”, “왜 나만 하찮은 일만 하나?” 서로의 자리를 충분히 모른 채 자기 입장부터 바라보게 되면, 소통은 금방 막히곤 한다.


법률 사무처럼 매뉴얼이 잘 정리된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문서 양식과 절차는 정형화되어 있지만, 현실의 일은 결국 선배가 몸으로 익힌 감각과 노하우를 후배에게 건네는 과정에서 전개된다. 나 역시 막내였던 시절, 선배들이 하던 일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속으로 가볍게 생각하곤 했다. 그런 생각은 거의 빠짐없이 실수로 돌아왔다. 문구 하나, 사건번호 하나를 잘못 적었을 뿐인데 전체 업무 흐름이 꼬이고, 이미 한 번 움직였던 동료들의 시간과 노력이 다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여러 번 벌어졌다. 사소해 보이는 한 줄이 실제로는 많은 사람의 하루를 뒤로 미루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경험이 적은 신입이나 저연차 직원에게는 거창한 과제를 한 번에 맡기는 것보다, 실패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작고 명확한 성과를 하나씩 쌓게 해 주는 일이 중요하다. 손자병법에서는 “勝敵而益强(승적이익강)”이라는 말을 남긴다. 한 번 이겼다는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그 승리를 발판으로 삼아 더 강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작은 성공을 한 번 경험한 사람은 그 경험을 발 디딤돌 삼아 다음 일을 배워 나간다. 반대로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처음부터 큰 과제를 들이밀면, 실수는 반복되고 자신감은 빠르게 닳아버린다. 조직이 지켜야 할 것은 ‘한 번에 커다란 성과’가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작은 성취를 계속 경험하게 해 주는 흐름에 가깝다.


손자병법의 다른 구절인 “以正合, 以奇勝(이정합, 이기승)”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정공법으로 맞서고, 변칙으로 승리한다는 이 말은, 일을 할 때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업무에 그대로 옮겨 보면, 먼저 기본기로 버티고 선 뒤에, 그 위에 자신만의 방법과 전략을 얹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처음부터 편법과 요령에 기대어 일을 처리하면, 그것이 통하지 않는 순간이 왔을 때 감당해야 할 부담이 너무 커진다. 반대로 원칙에 따라 정석대로 익힌 일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리 차가운 돌이라도 오래 앉아 있으면 서서히 온기가 돌듯이, 시간을 들여 기본을 반복하는 과정은 결국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바탕을 만든다.


문제는 이런 원리 자체보다, 그것을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설득하고 공감시키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데 있다. 선배는 지금 당장 눈앞에 쌓인 일을 줄이고 싶고, 후배는 하루빨리 티가 나는 일을 맡고 싶다. 그 사이에서 “왜 나는 계속 이런 일만 하지?”, “왜 저 친구에게만 좋은 기회가 가는가?”라는 생각이 쌓인다. 그래서 선배의 역할은 단순히 업무를 나누어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후배가 맡은 일이 조직 안에서 어떤 흐름을 떠받치고 있는지, 왜 이 작은 업무가 꼭 필요하며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런 설명이 차곡차곡 쌓일 때, 후배도 자신의 작은 성과를 조직 전체의 성취와 연결해 보기 시작한다. “하찮은 잡무”로 보였던 일이 어느 순간 “누군가는 꼭 붙들고 있어야 하는 일”로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이 온다.


다만 회사는 학교와는 다르다. 선배가 언제까지나 곁을 지키며 하나하나 붙어서 가르쳐 줄 수도 없고, 후배가 끝없이 기대고만 있을 수도 없다. 선배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갖추지 못하면, 언젠가 의지하던 ‘가지’가 사라졌을 때 추락할 수밖에 없다. 작은 참새든 큰 황새든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이유는 가지를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조직에서도 결국 나를 지탱해 줄 힘은 스스로 길러야 한다. 선배는 가지가 되어 잠시 쉬어갈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지만, 날개를 만들어 주는 일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중용』은 배우는 사람의 태도를 다섯 가지 동사로 정리해 놓았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고, 두텁게 실천하라는 것이다. 배우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 그만두지 않고, 묻겠다고 정했다면 이해될 때까지 놓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행하기로 했으면 결과가 분명해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 태도다. 남이 한 번에 익히는 일이라면 나는 백 번을, 남이 열 번에 몸에 붙이는 일이라면 나는 천 번이라도 반복하라는 이 가르침은, 느리더라도 자기 힘으로 서려는 사람의 길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올라가는 사람도 있지만, 오래된 계단을 한 칸씩 오르는 사람의 다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진다.


기본을 다지고,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승리를 통해 자신감을 축적하며, 묵묵히 실력을 쌓으려는 사람의 속도는 더딜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속도는 결코 헛되지 않다. 어느 순간 그 느린 속도가 곧 자신의 힘이 된다. 선배와 후배 모두가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고, 이런 과정을 개인의 인내가 아니라 조직이 함께 감당해야 할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람도, 조직도 함께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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