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그 따스한 날을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치 오래된 영화나 빛바랜 사진처럼 가끔 머릿속을 스쳐가는 잔상이 있다. 나에게도 있다. 어린 시절 언제인지 모를 추억 속의 장면처럼... 먼 무의식 속에 있다가 몇 년에 한 번 아니면 우연히 의식의 세계로 떠오르는 때가 있다. 어린 시절 성당 유치원에서 모래성을 쌓던 모습, 시골 풀밭에서 숨바꼭질하던 모습, 겨울철 썰매 타던 모습 등... 이런 모습을 사실 거의 잊고 지냈다. 일에만 파묻혀서 열심히 살았지만 아쉽게 살아온 모습들이 우연히 오늘 아침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이 일 년에 한두 번 스쳐 지나간다. 한 시인의 표현처럼 내가 하던 길을 걷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 그중에 하나가 막연히 그림이나 글인 것 같기도 하다. 그것에 소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무 근거 없이 드는 생각들이 망중한 속에서 정말 가끔 나에게 다가온다.
그 잔상 중 하나가 4월이 되면 아주 가끔 생각된다. 고등학교시절 나는 문학도는 아니었다. 그저 열심히 공부했던 시골 학생이었고 글짓기나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의무감에 마지못해 쓰던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그 시절 난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연히 백일장에 가게 되었다. 그것은 내 기억에 4월 29일 윤봉길의거 기념 백일장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그 날짜를 기억하는 것 같다.
내 기억에는 다른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 단지 내 머리에 떠오는 잔상은 그날 아침 행사장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시골길을 버스로 가는 장면이다. 내 머릿속에서 창밖에 보이는 풍경은 시골의 평범한 풍경이었고 4월의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버스 창밖의 풍경이었다. 그 풍경도 잘 찍힌 고해상도의 풍경이 아니고 마치 파스텔톤으로 그 느낌만 보이는 그런 풍경이다. 그날 백일장에서 무엇을 썼는지 명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분명 그날 아침 덜컹거리는 버스 속에서 고즈넉한 햇살이 비추는 시골 풍경 속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모티브로 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글을 쓴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내 기억 속의 그날은 달랐고 그때의 그 느낌과 그날 버스 속에서 바라본 한 컷의 햇살 속 시골 풍경과 그 기억은 남아서 지금도 가끔 나에게 나타난다.
무미 건조하게 숫자 속에서 살아온 나! 그러면서 정작 그 숫자를 이용하지는 않았던 내가 바보스러울 때도 있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내가 있기에 그러한 몇 안 되는 잔상이 나에게 떠오르는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어젯밤도 숫자와 씨름을 했다. 그 숫자가 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숫자이지만 아직도 숫자 속에서 산다. 물론 누군가는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데이터이고 정보이고 컴퓨터과학에서는 이 모든 것이 0과 1이라는 수로 표현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의 인식마저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그러나,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의 잔상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날 내가 경험했던 것은 나에게는 달랐고 그러한 느낌은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도 그저 우리 인간의 몫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저 나의 느낌에 따라 그 느낌을 그대로 느꼈고 그것을 그대로 표현했던 4월의 하루였다. 건조하게 살면서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은 나를 너무 메마르지 않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날 난 처음 나간 백일장이었지만 좋은 상도 받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날 돌아오는 길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같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날 서예부문 심사위원으로 그 행사에 가셨다. 지난날의 잔상과 함께 아버지란 말을 쓰다 보니 지금 아버지가 된 나는 왠지 모를 만감이 교차한다...
(이 글은 오래전에 썼다가 4월 29일의 추억과 관련이 있어 4월 29일 오늘까지 나의 서랍 속에 넣어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