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봄이 숨에서 느껴진다. 이제는 기온이 낮아도 공기 중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사라지고 어디선가 봄의 기운이 공기 속에 스며든다. 지난주 오전 일을 하다가 이른 오후 가까운 산에 가서 모처럼 산책 겸 운동을 하려고 하였다.
이 자료 저 자료 읽다 보니 늦은 오후가 되었다. 날이 어두워질 수 있어 약간 망설여졌다. 운동한 후에는 잘했다는 마음이 들지만 운동하기 전 가기 싫어하는 마음의 요동으로 산책 가지 않으려는 나만의 핑계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느껴졌다. 그러나 다행히 나가서 운동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소 늦은 시간이었으나 얼마 전에 새로 산 그러나 아직도 덜 길들여진 등산화를 신고 나섰다.
오르다 보니 지난번 올라왔을 때와 달리 미세먼지 때문인지 맑은 하늘이 아니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산이지만 다른 산에 비하여 높지 않고 내가 오르는 길은 익숙한 부분이라서 편한 마음으로 산책하듯 산에 올랐다. 두꺼운 등산복이 거추장스러워 잠바는 벗어 손에 들고 음악을 들으며 올라갔다.
평일 늦은 오후라 사람도 거의 없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으나 평일에는 사람이 없어 더욱 편하게 걸을 수 있어 좋았다. 평일의 등산은 골프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평일 골프가 주말 골프보다 좋듯이 주말 등산보다 평일 등산이 좋은 것 같다.
정상에 올라 미세먼지로 아쉬운 면이 있었지만 나름 주변의 경관을 보며 잘 올라왔다는 느낌을 가지며 잠시 목도 축였다. 이제는 내려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발길을 움직이다가 문득 반대편 길이 보였다. 다소 시간이 늦었지만 몇 번 올 때마다 다음에는 저쪽으로 한번 내려가야지 하고 생각한 반대편 등산로가 보였다. 왠지 거리상으로는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올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되어 난 순간적으로 그 길을 택했다.
난 그 길로 움직였다. 별생각 없이 400-500미터쯤 걷다 보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길도 그렇고 느낌이 이상한 곳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몇 년 전 사실 그 방향으로 다 가지는 못하고 중간에 다른 길로 내려온 적은 있으나 갔었던 적이 있었기에 어렴풋이 그 느낌은 있었다. 오랜만에 두 번째로 걸으니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겠지 하고 다시 걸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누구의 말과 같이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이제는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높은 산도 아니고 어느 쪽이든 내려갈 수는 있겠으나 오랜만에 등산하다 보니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내가 아는 길도 아니다 보니 약간의 긴장감과 심리적 불편함이 몰려들었다. 그 순간 그때까지의 익숙함에서 온 나의 정신적 편안함이 약간의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내가 길을 잘못 들기 전에 난 그곳까지는 가끔 왔지만 익숙한 길이기에 별다른 의식도 없이 걷다가 나도 모르게 사잇길로 들어와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순간 다시 돌아갈까 아니면 그냥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뒤돌아 몇십 미터 걸었다. 그런데 걸어온 길 특히 잘못 들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 걷는 것은 왠지 짜증도 나고 걷고 싶지도 않다.
죽을 수도 있는 그런 거창한 산행은 아니지만 일단은 일상의 소소한 익숙함에서 벗어나니 그리고 날도 어두워오니 불편함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비록 거창한 산행은 아니지만 왠지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 싫어 내가 원래 생각한 방향은 아니지만 계속 가보기로 다시금 발길을 돌렸다. 가다 보니 나름 조그만 절벽 등도 나타나 어두워지면 나름 위험할 수 있겠다 하는 긴장감도 느끼며 잠바 안에 넣어 둔 등산장갑을 꺼내 무장(?)하고 내려가는 조그마한 길들을 찾아 발을 옮겼다. 아직은 빛이 남아 있어 밝음에 대한 고마움도 새삼 느꼈다. 그러나 길은 사람이 적게 걸어 거친 돌부리와 나무뿌리로 걷기에도 다소 불편하였다. 더욱이 오랜만에 산에 오다 보니 몸의 움직임도 무겁고 새로 산 등산화도 아직은 새것이어서 딱딱한 느낌은 들었다.
얼마간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내려왔고 드디어 정규 등산로를 만났다. 이제부터는 편안한 길이었다. 마음이 편한 길이었다.
가볍게 그리고 편히 산책하겠다고 시작한 것이 우연히 불편함과 긴장감으로 바뀌긴 했으나 사실 그 불편함과 긴장감이 나를 압도하지 않은 것은 사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난 마을을 저 멀리 보았기 때문이다. 최소한 내가 길을 잃어 못 내려갈 일은 없다는 것! 당장 내가 원하지 않은 익숙하지 않은 길로 잘못 들어섰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겠다는 방향을 아니 날이 어두워와도 그곳까지는 어두워지기 전에 갈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사실 더 컸기에 잠시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더 큰 안도감을 가지고 걸을 수 있게 하였다.
대단한 산행은 아니지만 그리고 일상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산책에서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던 시간이었다. 익숙함은 나를 편하게 해 준다. 그런 익숙함에서도 난 또 다른 새로움과 불편함을 우연히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불편함 속에서도 내가 가는 방향을 알고 있다면 나는 불편함 속에서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이고 우리 인생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늦은 오후의 가벼운 산책 같은 산행이었지만 잠시 다시금 여러 생각을 해봤다.
내가 내려온 동네는 처음 가보는 동네였지만 마을 이름도 이쁘고 독특한 빌라 형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많아 다 개성이 있어 보여 좋았다. 이런 감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그쪽 길을 택한 것에 대한 소소한 보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음에는 꼭 다시 그 가려고 했던 길을 다시 가 봐야겠다. 이번에는 좀 더 일찍 출발해 보자. 요즘 나는 걷는 것의 즐거움을 느낀다. 예전처럼 피트니스센터에서 뛰지는 않지만 일상 속에서 걷는 즐거움을 알아간다. 집으로 오는 길 차를 탈 수도 있었지만 어두워진 산과 강을 보며 걸어왔다. 이제는 등산화도 훨씬 길들여져서 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