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에는 오직 바다뿐이고
나는 눈을 감는다.
매서운 제주 바람에 흔들리는 파도소리가 귓가로 흘러 들어온다.
그 소리가 강해 언뜻 들으면 빗소리와도 비슷하다. 불현듯 갈매기 때의 대화 소리가 비친다.
갈매기는 지금 배가 고프다. 그래서 항구 주변을 맴돌며 오늘도 연명을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한다.
야자나무도 불어오는 바람에 제 잎을 훌훌 털며 자기 존재를 과시한다.
차가운 바람이 내 피부에 소름을 돋게 만들더니 곧바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움츠린 피부를 안심 시킨다.
봄이 오고 있다. 추운 바람 속에 봄의 바람이 실려왔다. 지나 가버린 겨울을 회상하며 그 속에 존재했던 나를 뒤돌아본다.
지난 겨울 내 모습은 어땠는가. 육지와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무척 이나 추웠던 이번 겨울.
그만큼 내 마음도 꽁꽁 얼어붙은 날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때 얼어붙은 마음과 생각은 아직 완전히 녹지 않았음을 자백한다.
긴 제주의 겨울을 살면서 나는 무엇을 얻고자 했으며 무엇을 잃고자 했는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돈과 시간의 형편에 허덕이며 나는 그저 불평만 늘어놓은 채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있다. 바다의 소리는 나의 귀에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이에 나의 주의는 내 깊은 심연으로 다시 잠겨 버린다.
비치는 햇살 때문에 눈을 감아도 시야는 환하다. '환함'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연상시켰고, 이 아침 해의 이미지는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찌뿌둥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모습을 비춰냈다.
몸이 무겁다고 중얼대며 이불을 걷는 나는 아무 표정도 짓고 있지 않다. 하루에 대한 기대는 당연히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종종 느끼던 '기분 좋은 잠'에서 깬 '기분 좋은 아침'의 기운은 어디에도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의 내면 어딘가가 썩어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염증이 날대로 나버린 고름에서 풍기는 악취로 인해 나는 살아간다는 감사의 향기도 맡지 못하고, 숨 쉬고 있다는 기쁨의 미소조차도 짓지 못하는 것일까.
눈을 감고 바다를 바라본다. 잔잔한 바다가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바다의 질문을 무시할 수 없다. 어째서 이 바다는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인가. 이 시점에서 나는 지금 듣고 있는 소리가 바다의 소리인지 나의 내면의 소리인지 분간이 쉽지 않다.
내가 나의 복잡한 문제들에 뒤엉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바다는 언제나 그렇듯 물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이미지를 수면 위에 만들어 내고 있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는 부드러운 곡선이 그려지고, 갈매기가 앉았던 자리에는 난데없는 구멍이 생긴다. 정말로 구멍이 생긴 건 아니지만 그 형태가 둥글고 색의 농도가 진해 그렇게 비친다. 그 이외에는 특별히 이렇다 할 변화는 없다. 바다는 그저 바람을 붓대 삼아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제 몸에 마음껏 그려내고 있다. 아무런 압박도 아무런 책임도 아무런 가책도 없이 오직 자신이 원하는 그 형상 만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꽤 오랜 시간 눈을 감고 공상을 하고 있었기에 단번에 눈을 떴다가는 눈동자 속에 빛이 넘쳐 눈물이 흐를 수도 있다. 과유불급. 이때도 통하는 진리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