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다시 조립하는 'DIY 인간관계'

Ep.3

by 니디


나 같은 경우에 제주살이는 갑작스러운 결정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갑작스러운 결정은 나의 인간관계를 제로베이스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한동안 나의 '관계' 남편과 개 한 마리가 전부였다. 제주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다.



올해로 제주살이를 시작한 지 3년 째인 우리는 서귀포 법환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일이 끝나고는 대게 개 산책 그리고 저녁 수영을 간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으며 찌뿌둥한 기분을 머리카락과 함께 잘라내고 있으며, 휴무인 매주 수요일에는 별일이 없으면 원하는 관광지를 골라 소소한 여행을 즐기며 제주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나의 하루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어느 날 문득 나의 인간관계가 새롭게 쌓여가고 있음을 느꼈다. 봄의 따스함이 숨어있는 바람을 맞으며 운전을 하던 나는 이런 기분 좋은 만남들이 나의 하루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내가 원하는 사람들만 골라서 내 하루에 두는 일. 눈이 마주치면 '안녕하세요'대신 '오늘은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혹은 '오늘 날씨 진짜 봄이에요!'라는 말을 건네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관계들. 하루하루 유난 떨 것 없이 반복되는 만남에서 생긴 친밀함 혹은 친숙함.




이 모든 사람들도 결국에 우연이 만들어 낸 결과일 뿐이지만, 학교에서 혹은 회사에서 만났던 '우연'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전자는 전적으로 내 스스로의 동의와 의견을 받아들여 생겨난 관계라면, 후자는 내가 좋든 싫든 내가 '받아들여야만'하는 관계이다. 또한 전자는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관계이고, 후자는 책임과 더불어 희생까지 따라오는 관계들이다. 전자는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나를 존중해주는 관계이고 후자는 상대방의 잣대에 따라 나를 함부로 대할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관계이다.


과거의 나는 후자에 속한 인간관계 속에서 굉장한 피로감과 회의감과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그 관계가 나에게 이롭지 않음을 알았지만 쉽사리 끊을 수도 없었다. 그 관계의 모든 구성원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나를 겁먹게 했지만 그보다 더 내밀한 이유는 나의 '애정결핍' 때문이었다. 사람이 없는 나는 너무 외로웠다. 남에게 비친 나는 그저 착하고 여린 아이여야만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겠지 싶었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었고 오히려 그들은 물 같은 나를 물 보듯이 했다. 결국 난 큰 용기를 내어 그들을 모두 잘라내었다. 이 과정에서 용기의 원천은 나의 남편이었다.


내가 아무도 모르는 땅, 제주에 와서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는 나의 인간관계 속에 포함된 사람들은 나를 존중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 우리는 서로 속내를 드러내지만 비난하지 않고 응원의 말을 건넨다. '왜 그랬어?'라는 말 대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럴 때 있더라'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그걸 왜 못해?'라는 말 대신 '적응하려면 좀 시간이 원래 필요한 법이에요~'라고 말한다.


전자의 관계 속에도 분명히 책임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 선택에서 파생된 책임이며, 이는 애초에 '이 사람을 나의 하루에 포함 시킬 것인가 말 것 인가' 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들었을 때 나의 내면에서 이런 답을 내놓은 뒤에 따라오는 책임이라 그 무게도 그다지 무겁지 않다. 적어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인 것이다. 근원적인 물음이란 다음과 같다.


'이 사람을 스스럼없이 나에게 다가오게 놔뒀던 것처럼, 이 사람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때 또한 아무 말없이 떠나가게 내버려 둘 수 있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작은 공간 안에 들어와 준 감사한 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늘도 나는 그들을 만날 거라는 익숙함에 힘을 받아 하루를 이어갈 것이다.


'그냥 그대로만 있어주면 돼요, 다들. 제가 무진장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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