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과연 동물에게도 힐링의 섬인가

Ep.2

by 니디


얼마 전에 새롭게 알게 된 고마운 분이 말했다.


"요기 오는 길에 사는 말 아세요?"


으잉? 말이 이렇게 사람 많은 동네에 산다고? 당연히 의아했다. 지나가던 개는 많이 봤지만 지나가던 말은 본 적이 없으니 의아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동네 어디에 빈 땅이 있는데 그 빈 땅에 말이 혼자 산다는 것이다. 왕년에 경주를 뛰던 녀석이었는데 은퇴 후 다행히도 말고기로 희생되지 않고 지금까지 생을 이어가고 있다는 녀석. 단, 빈 땅에서 혼자.


말이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접수하고 몇몇 손님들에게 이 말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묻는 사람들 마다 모두 이미 말을 다 알고 있었다. 나만 몰랐던 거다. 으익. 당장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이 끝나고 마트에 들러 당근을 2개 샀다. 깨끗이 씻어서 먹기 좋게 당근을 자른 후 녀석을 만나러 갈 준비를 마쳤다.


녀석은 정말 빈 땅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같이 간 고마운 분은 이미 녀석에게 먹이를 주러 자주 들렀기 때문에 그 하얀 말은 고마운 분의 손길을 잘 받아주었다. 나도 스스럼없이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만히 차분히 나를 받아주는 녀석. 그대로 반하고 말았다. 근데 내 눈에 참으로 거슬리는 것이 있었으니 녀석이 살고 있는 공간에 쌓여있는 쓰레기였다. 정말이지 쓰레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이에 대해 물었더니 고마운 분은 고맙게도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내용인즉슨 그 땅 주인분은 서울에서 온 사람인데 동네 한가운데 있는 땅을 활용도 하지 않고 말이나 키우며 땅을 놀리고 있으니 동네 주민분들이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인적이 드문 시간에 말이 있는 그 사유지에 쓰레기를 던지거나 오물을 버린다는 것이었다. 더욱 경악할 일은 말이 칼을 맞은 적도 있단다. 정말 화가 많이 난다.


이어 고마운 분은 말이 있는 사유지 옆에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있는데 제주는 워낙 바람이 많아 강풍이 불 때는 쓰레기가 말의 보금자리 날아가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서 날이 좀 따뜻해지면 마음 맞는 분들끼리 쓰레기를 주울 계획이라고 한다.


말은 본디 겁이 많은 동물인데 거기에 칼 까지 맞는 지경이 되었으니 이 외로운 경주 은퇴마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가 얼마나 무서울까. 그런데도 처음 보는 나의 손길을 가만히 잘 받아주는 녀석을 보며 고마운 분은 "콧잔등을 내주는데 한 달 정도 먹이 공세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난 그 정도 걸렸는데"라고 말하며 녀석을 기특해하셨다.


제주살이의 순기능은 참 많다. 일일이 하나하나 어떤 순기능이 있는지 앞으로 열거를 할 예정이지만, 정말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중에 내가 가장 화나는 것은 동물들이 너무.. 고생을 하고 핍박을 받으며 멸시와 무시를 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난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공원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찍은 사진'을 보았다.


현수막의 내용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게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였고 사진 게시자가 덧붙인 내용에는 '현수막이 걸린 후, 하루아침에 고양이들이 먹던 물그릇과 밥그릇은 물론 추운 겨울에 몸을 녹이던, 시민들이 마련해준 박스며 담요들이 다 없어졌다'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사진을 게시한 사람은 해당 관청에 전화를 걸어 '고양이는 야행성 동물이라 아이들이 노는 대낮에는 출몰을 안 할뿐더러, 만약 녀석들의 모습이 보인다 해도 사람이나 아이들이 있으면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라고 항의했다 한다. 전적으로, 완전히 전. 적. 으.로 동의한다. 이에 해당 공무원은 '고양이의 특성을 잘 몰랐다.'며 사과를 했고 다행히 해당 현수막도 철거되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 해프닝은 좋은 방향으로 끝났지만 내 입가에 남은 씁쓸함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으며 앞으로도 가시지 않을 예정이다. 그리고 난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솔직히 말해서 제주살이에 정이 떨어진다. 전국에서 유기견 발생률이 제주도가 1위다. 내가 지금 키우는 첫째 홍미는 제주 유기견 보호소에서 왔다. 둘째는 유기견의 새끼이며, 셋째 고양이는 버려진 길냥이다. 참고로 난 개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남편과 함께 제주살이를 하고 있다.


지금껏 약 1년이 조금 넘은 시간 동안 믹스견 그리고 중형견인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별의 별소리를 다 들어봤다. '왜 육지 사람들은 개를 키우냐. 저리 치워라.', '믹스견은 농장이나 지키지', '얘 물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로 열이 받았던 사건은 따로 있다.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휴무날이었고, 우리의 휴무는 일주일에 한 번이다. 이 얘기는 존중받아야 마땅할 나의 분신 같은 강아지 두 마리와 온전히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뿐이라는 소리다. 해서 우리는 이 황금 같은 휴무를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애견 카페'를 가기로 했다. 검색을 하던 중 애월에 있는 '실내 애견 테마파크'를 발견했고 나는 전화를 걸었다. 이미 믹스 중형견을 키우는 견주로서 열 받은 일 그리고 실망한 일이 너무도 많았던지라 확인을 하고 싶었던 거다. 섣불리 집을 나섰다간 시간 낭비를 할 수도 있으니까. 테마파크는 우리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중형견도 입장 가능한가요?"

"아이들이 몇 키로인가요?"

"두 마리인데 각각 13킬로, 15킬로예요."

"네~ 입장 가능하십니다!"

"아 정말요? 그 미끄럼틀 있는 곳도 가능해요?"

"그럼요~"

전화를 받은 직원은 남자였다.


애들에게 큰소리를 뻥뻥 치고 길을 나섰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지만 그와 함께 우리의 마음도 점점 들떴다. 아이들과 실내놀이터에서 함께 놀 수 있다니, 다른 '반. 려. 견'들과 함께 놀 수 있다니, 진짜 기분이 좋았다.


도착한 우리 네 식구. 출입자 명부를 찍고 개 두 마리와 당당히 입장을 하려는데..

입구에서 여자 직원이 우리를 막아섰다.


"혹시 아이들 몸무게가 어떻게 되나요?"

"아, 전화드렸는데. 13킬로 15킬로입니다."

"죄송하지만 아이들은 1층 카페(사람을 위한 카페)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직원이 말하는 카페 입구에는 '대형견 입장'이라고 적혀있었다.


당황했다.

"전화받으신 남자 직원분이 입장 가능하다고 하셔서 왔어요."

"혹시 전화하실 때 품종도 말씀하셨어요?"

"??????? 아니요? 품종을 말해야 하나요?"

"품종을 말씀 안 하셨으니까 그렇죠"


열 받았다.

"이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안고 탈 수가 없어서 입장이 좀 곤란해요."

"네? 잘 안고 탈 수 있는데요.."

"아니요.. 고객님.. 웰시코기 같은 애들은 안을 수 있는데 얘네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열이 받았다. 난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웃는 얼굴로 꼬리 치는 아이들 때문에 성을 낼 수가 없었다.


"전화로 먼저 입장 가능하다는 말 듣고 왔어요 저희.."

"죄송해요 고객님.. 웰시코기 같은 애들은 안을 수 있는데.."


그렇게 그대로 뒤를 돌아서 건물을 나왔고, 나와 오빠는 욕을 한 바가지 할 수도 없이 화가 났다. 말 그대로 분노였다.


우선 첫 번째 왜 난 전화를 한 것인가. 두 번째 품종은 왜 말해야 하는가. 세 번째 왜 웰시코기들은 안을 수 있고 얘네는 안된다는 건가.


설마 지금 내 새끼들이 잡종이라고....?


이 사건 이후 난 제주에 사는 동물들이 아파하거나 불편해하거나 피해를 입는 이야기를 들으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목구멍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토할 정도로 분노가 인다.


내 생각엔 결국 이 말백이(경주은퇴마 이름은 말백이다)의 얘기도 나에게는 다 일맥상통이다. 언제쯤 동물들이 행복한 제주가 올까. 사람만 힐링하는 제주 말고 나는 동물이랑 사람이랑 다 공생하며 힐링하는 제주를 원한다. 물론 라오스처럼 'Share the road'라는 문구 밑에 사람과 오리 그림이 그려진 표지판이 길에 설치되는 일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라오스는 동물과 공생하는 법을 안다. 차가 지나가고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와중에도 소가 지나가거나, 닭이 지나가거나, 개가 지나가면 잠시 멈추고 그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준다. 멕시코에서는 자주 난데없는 교통체증이 발생하는데 이는 산책 갔다가 호수로 돌아가는 악어가 길을 건너는 중이라 길이 막히는 거다. 그들은, 동물과 잘 공생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동물도 존중을 받고 있다. 동물도 행복한 그들의 일상을 즐기고 있다. 왜, 동남아 여행 가면 개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는걸 자주 보지 않는가? 근데 우리나라는? 10마리 중 8마리는 도망간다.


나도 안다. 어차피 안될 것을. 으 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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