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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Oct 19. 2021

너를 만나고 다시 내가 소중해졌다

진짜야

나는 나 자신을 꽤 아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항상 내가 가장 소중했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는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내키는 대로 하면서 살아왔거든. 하지만 너를 만나면서 그건 정신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음식을(엄밀히 말하면 먹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운동은 싫어해(자전거는 예외지만). 그러니 먹는 것은 부실하고 몸은 허약할 수밖에(하물며 요리 자체를 귀찮아하기도 하지). 임신 후 가장 먼저 나의 기본 몸 상태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알게 되었어. 입덧 때문이라고는 해도 정말 누워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라니 해도 너무 하지 않니? 널 알기 전 그래도 두 달 정도는 나름 관리를 한다고 했는데도.


혈압이 낮은 것도 평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신경 쓰지 않을 일이 아니더라고. 이대로 나이를 먹는다면 내 몸이 어떻게 될지 암담함이 느껴졌다. 입덧이 끝나고 컨디션이 어느 정도 돌아왔지만 그래도 나의 체력은 허접해. 이것이 평소의 체력이라고 생각하면 새삼 몸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더라.


임신하면 체력이 평소와 같지는 않아. 평소보다 혈액량은 두배로 늘어나고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골반통 혹은 요통 등이 생겨 오래 일어서 있거나 움직이기가 힘들지. 심박은 평소보다 높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금방 차는 것도 그렇고.


임신 후에도 출퇴근을 하며 일을 하거나 꾸준히 임신 전 하던 운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참으로 하찮다고밖에 할 수가 없어. 그렇다고 이전에 하지 않던 운동을 갑자기 시작하는 건 오히려 몸에 무리를 주니 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섣불리 운동을 하겠다 나설 수도 없더라.


자전거 타는 건 좋아하긴 하는데 실외에서 타는 자전거는 넘어지면 위험하니 실내 자전거가 아닌 이상 타지 말라고 하더라고. 아니, 대체 그럼 뭘 하란 말이야. 걷기(... 괜찮은데?) 정도인가?


그래서 일단은 영양제를 열심히 챙겨 먹고 있어. 부족한 필수 영양소는(임신 16주 이후 중기의 경우) 철분과 칼슘, 비타민D 정도고 선택적으로 섭취하면 좋은 것은 오메가 3나 그 외의 것들. 오메가 3를 먹으면 태어날 아기의 머리가 좋아진다는데 사실 철분과 칼슘, 비타민D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나는 벅차거든. 철분은 몸에 잘 흡수되지 않아서 비타민C와 함께 먹어야 하고 철분과 칼슘을 함께 섭취하면 그 둘은 서로의 흡수를 방해한다고 해. 그러니 시간 차를 두고 철분을 먹은 후 칼슘과 비타민D를 먹고 있어. 영양제마저도 가지가지하지 않니? 이걸 신경 써서 챙겨 먹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야. 그러니 봐줄래? 대신 공부 못한다고 구박하지 않을게.


매일 같은 시간 영양제를 챙겨 먹으면서 한 생각은 지금까지 나를 위해 이렇게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챙겨 먹거나 꾸준히 행동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어.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인색했을까. 그동안 딱히 건강에 대해 걱정할만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갑자기 쓰러진다거나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있었다든가 아파서 입원을 한다든가 하는)?


아프고 나서는 이미 늦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야.


임신이라는 사건을 겪고 나서야(유산도 그렇고) 그간 참으로 안일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다니. 스스로를 아낀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 방식에는 조금 문제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나를 정말 아끼는 건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나를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걸 말이야.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지 그걸 새삼스럽게 지금에서야 깨달은 거야. 다행인 건 너와 만나기 전에라도 알았다는 점이랄까. 내가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나 자신의 몸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지. 뭐가 됐든 지금 내가 영양제를 챙겨 먹고 입맛이 없음에도 하루 세끼를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는 건 너와 공존하면서도 내가 건강하게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니까.


태교일기라고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나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고 나를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면 너를 만난 건 내 인생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중요한 사건이 맞다.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많은 경험과 사유가 지금 이 글을 통해 담기고 있거든.


나보다 5개월 정도 먼저 임신한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 뱃속에 있는 너희들은 양심이 없다고.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지만 반은 진심이었지. 왜냐하면 입덧으로 말라가면서도 너는 내 안의 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으니까. 그건 5개월 먼저 임신한 친구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야. 잘 먹든 못 먹든 상관없이 너는 알아서 필요한 영양분을 가져간다고, 자비 없이 말이야. 그러니 나중에 골골대지 않으려면 알아서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말이지.


너를 탓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야. 너는 너대로 너를 챙기고 있으니 나는 내 몸을 나대로 소중히 더 잘 챙겨야 한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래야만 너를 더 잘 돌볼 수도 있고. 이건 아마 너를 세상에 내보내 놓고 나서도 마찬가지일 거야. 너를 돌보면서도 나를 무던히 돌보며 살아가는 것.


내가 소중한만큼 네가 소중하고 네가 소중해서 내가 또 소중해지는 거야. 정말 좋은 공생관계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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