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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두 단어 03화

산책과 음악

보사노바, 세상이 기분 좋게 돈다

by 바질

산책할 때 듣기 좋은 보사노바 음악. 2016년 교환학생으로 중국 갔을 때 처음 접했다. 기숙사 근처 카페라떼를 시키면 밀크티를 주던 곳이다. 주인분의 예측 불가능한 느낌에 어울리는 카페 음악에 마음이 갔다. 재즈와 비슷한데 미묘하게 갈래가 다른 느낌, 처음 들어보는 언어였다. 그게 보사노바 장르인 것을 이후에 알았다.


보사노바는 재즈와 삼바가 섞인 장르다. 변주와 복구를 테마로 하는 재즈의 박자감과, 조금 가라앉은 느낌의 삼바 리듬이 조화를 이룬다. 1950년대에 만들어졌으니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노래, 그럼에도 90년대생에게 새로운 감각, 보사노바는 마냥 신선하게만 들린다.


보사노바는 사랑과 이별 노래가 주를 이루는데, 한국에 사랑 노래가 워낙 많으니 뻔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몽상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음악, 한 편의 시와 같은 서정적인 가사가 나는 달라,라고 말하는 듯하다. 브라질의 정서는 한국과 미묘하게 달라,라고.


보사노바 그 최초의 곡은 Chega de Saudade(Jobim, 1958), 직역하면 매우 그립다는 말이다. 브라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립거나 보고 싶을 때 사우다제,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제목처럼 가사와 음색도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자세히 들으면 재밌는 점이 있다.


가사에 따라 음의 조합이 달라지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현실을 직시할 때는 우울한 음이 주를 이루다가, 작사가의 상상 속에서 그녀와 포옹하며 행복감에 젖을 때에는 음이 점차 밝아진다. 깊은 물속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또 숨을 고르고 다시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우울함과 밝음이 공존하며 울렁울렁하는 게 꼭 우리 감정과 닮았다. 그래서 좋다.


"가라 나의 슬픔아, 그녀에게 말해. 당신이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고. 기도하듯이 말한다,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그리움이 가득 찬다(Chega de Saudade). 현실에는 그녀가 없고, 평화도 아름다움도 없고, 우울함만 있다. 그녀가 나에게서 나가지 않아. / 그녀가, 만약 그녀가 돌아온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일일지. 나의 팔 안에서 백만 번의 포옹을 한다. 이렇게 붙어서, 이렇게 조용히, 이렇게 가까이에서 끝없이 키스하고 포옹을 나눌 것이다. / 이제 이 상황을 끝내자. 당신이 나 없이 사는 지금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아."


이 노래는 들으면 기분이 가라앉아서 자주 듣지는 않는데, 우울할 때는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 들뜨다가 가라앉다가 하는 감정의 변덕에 지쳐 허덕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노래를 들으면 그래, 내가 사람이라서 그래, 누구나 그래, 라는 생각으로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안도감을 가질 수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우울한 노래를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으로 봐주면 좋겠다.


이 노래를 작사한 사람은 조빙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실제 이름은 안토니오 카를로스 브라질레이루 지 아우메이다 조빙인데 보통 짧게 줄여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으로 불린다. 보사노바 흐름을 처음으로 만들고 전 세계에 전파한 인물인데, 브라질에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는 흑인의 오르페라는 영화 덕분이다.


그는 요청을 받아 흑인의 오르페라는 고전 영화를 위한 음악을 만들었다. 총 세 곡이 수록되었는데, 그중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A Felicidade, 행복이라는 곡이다. 제목과 다르게 우울함을 담은 노래로,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슬픔에는 끝이 없으나 행복에는 끝이 있어요." 행복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 같아서, 가벼운 만큼 생명이 짧아 멈추지 않는 바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가난한 사람의 행복은 환상과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의 비극 미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톰 조빙이 워낙 유명한 사람이고 노래도 많이 만든 덕분에, 보사노바에 입문하고 싶다면 조빙의 노래부터 정주행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후에는 보사노바의 또 다른 대가 주앙 지우베르투의 노래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주앙 지우베르투의 Getz/Gilberto, 미국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게츠와 함께 연주한 본 앨범이 인기인 듯하다. 나도 북경에서 처음 들은 앨범이 이것이었으니, 조금 더 순한 맛의 모던한 느낌을 받고 싶다면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부터 들어보자.


기승전 보사노바로 끝나버린 이야기. 나에게 산책하면 떠오르는 것이 보사노바다. 20년, 21년 다사다난한 두 해를 보내며 생각할 거리가 많았는데, 회사에서 집까지 보사노바를 들으며 서너시간을 걸으면 기분전환에 꽤 도움이 되더라. 특히 멜로디가 통통 튀고 은근 신바람 나는 것들이 많으니, 홀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면 보사노바를 들으며 겨울 거리를 산책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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