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영화
오드리 햅번, 주윤발과 보낸 구정
연휴에는 넷플릭스를 봤다. 마이 페어 레이디, 1960년대에 나온 고전 뮤지컬 영화다. 부유한 신사가 가난한 여성을 어디까지 교육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데, 시장통에서 걸걸한 사람들만 대해온 엘리자가 변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밌었고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모욕을 주는 히긴스 교수에게 배운 단어 그대로 활용해 복수하는 장면도 즐거웠다. 다만 둘이 로맨스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싶었는데, 조금 답답한 결말이었다.
당신이 없어도 매해 봄은 올 거예요.
스페인의 평야엔 여전히 비가 오겠죠.
당신이 없어도 그럴 거예요.
말 잘하는 내 친구여
하트퍼스, 헤리퍼드, 햄프셔로 떠나도 돼요.
후반부에 둘이서 말로 싸울 때, 발음 교정을 하느라 배운 문장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 재밌었다. 영화 초반에 히긴스가 '스페인의 평야에는 비가 온다, 하트퍼스, 헤리퍼드, 햄프셔'로 엘리자가 H 발음을 죽어라 연습하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그 때 그 단어를 콕 집어 사용하면서 부드럽게 조롱하는 오드리햅번이 너무 좋았다!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찾으니 공자다정, 이라고 홍콩에서 리메이크한 버전도 있다. 남녀 역할이 바뀌어 가난한 청년이 고급 플레이보이로 탈바꿈하는 영화인데, 젊은 시절의 주윤발도 보고 싶고 홍콩 영화도 보고 싶었지만 코믹한 장르가 끌리지 않아서 좀 더 삼삼한 영화를 찾았다. 그렇게 고른 두 번째 영화는 가을날의 동화.
주윤발과 종초홍의 사랑 이야기. 뉴욕으로 건너온 가난한 중국인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고, 순정남 주윤발과 매력적인 종초홍의 수수한 밀당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평범한 일상에 은근히 퍼져가는 로맨스. 둘이서 와인을 마시면서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고 역시 로맨스의 시작은 술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오래된 영화도 좋은데! 알찬 연휴를 보낸 것 같다.
영화를 보지 않을 때는 잠에 들었다. 간간이 잠에서 깨면 좋은 기분이다. 따뜻한 온돌 침대에 눌어붙어서. 친척과 설을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푹 쉬는 것이 더 좋다. 일상이 매운맛이니 삼삼한 휴일이 더욱 매력적이다. 너무 퍼진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 때면 카페에 갔다.
좋아하는 재즈와 보사노바를 랜덤으로 재생해놓고 필사를 하거나 브런치에 글을 썼다. 구글애즈 스킬샵 강의도 거의 다 들었는데, 하기 싫은 숙제를 끝내 가는 기분이었다. 완강한다고 뭔가 좋은 혜택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뿌듯함과 상쾌한 감정을 가지고 집에 갈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