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푸른 아침, 잠을 깨워주는 츄러스와 에스프레소
아침에 일어나 짐을 정리했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많은 도시 중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무척 컸다. 나는 도시를 더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숙소를 옮기고 싶었다. 캐리어가 아닌 가방을 챙겨 와서 다행이었다. 배낭여행은 기동력이 좋다. 뭐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다만, 숙소를 옮기기 전에 들르고 싶은 곳이 하나 있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유명한 츄러스 집이었다. 50년은 훌쩍 지난 전통이 있었고, 늘 사람이 많다고 했다. 내가 츄러스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서고 있었다. 난 맨 뒤에 소심하게 줄을 섰다. 내 바로 앞에는 형형색색의 축구복을 입은 젊은 남자들이 한 무리로 서 있었다. 그들은 크게 웃고 떠들다가, 나를 발견하자 조용해졌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 여자는 매우 바빠 보였다. 다들 스페인어로 주문을 하고 거대한 메뉴판도 스페인어로 쓰여 있어서 나는 조급해졌다. 허둥지둥 뭔가를 찾는 내 표정을 본 여자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고, 영어로 된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다행히 내가 먹고 싶었던 메뉴가 가장 첫 줄에 쓰여 있었다. 컵에 가득 담긴 따뜻한 초콜릿, 여섯 개의 긴 츄러스, 에스프레소였다. 가격은 6.5유로로, 약 만원이었다. 생각보다 저렴했다. 스페인의 물가는 한국과 비슷한 듯했다. 큰 컵에 가득 담긴 초콜릿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매겨질 가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스페인의 물가가 조금 더 저렴한 것 같기도 했다.
먼저 뜨거운 초콜릿을 한 입 마셨다. 굉장히 진하고 크리미한 맛이 났다. 속이 따뜻해졌고, 더 마시고 싶어지는 기분 좋은 식감이었다. 한국의 초콜릿과 달랐다. 지나치게 달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츄러스 역시 한국의 맛과는 달랐다. 나는 한국 롯데월드에서 파는 설탕이 뿌려진 츄러스의 맛을 상상했는데, 이곳의 츄러스는 달달함 없이 담백한 튀김의 맛이 났다. 중국식 꽈배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바삭한 식감 덕에 그냥 먹어도 괜찮았지만, 진한 초콜릿 수프에 찍어먹으니 감칠맛이 더해졌다. 난 입이 짧은 편이고 낯선 음식에 거부감이 있는 편인데, 많은 양의 츄러스를 혼자 거의 다 먹었다.
아직 4월이었고, 바깥의 날씨는 다소 쌀쌀했는데, 뜨끈하고 맛있는 간식이 들어오니 기분이 좋았다. 커피도 무척 맛이 좋았다. 크레마와 쓰지 않은 진한 커피 맛이 잠을 깨웠다. 푸른 스페인의 아침이 비로소 활기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