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모르는데 스페인 사람이랑 30분동안 수다떨기
도시의 언덕 가장 높은 곳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길은 사진을 촬영하기 좋은 언덕이었다. 관광버스가 5분마다 한 번씩 정차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외국인들이 우르르 내려 사진을 찍고, 다시 우르르 버스에 올라타 다음 지역으로 떠나기를 반복했다. 나는 오가는 관광버스를 보면서 내가 탈 마을버스가 언제쯤 올지 궁금해졌다. 경치가 좋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지 않았다.
내 근처에는 멋진 오토바이 한 대가 놓여 있었고, 오토바이의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사람들이 종종 그분에게 길을 물어보는데, 일일이 답해주시는 것을 보니 친절한 분이라고 느꼈다. 그분의 희고 긴 수염, 약간 처진 눈매, 크고 통통한 코, 크레파스의 살색 같은 주름진 피부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척 호감형이었다. 나는 내가 서있는 곳이 버스 정류장이 맞는지 불안해서 그분에게 혹시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분의 대답은 노, 였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 특유의 친절함 덕분에,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십 분가량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스페인어로 물어보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멀리 보이는 톨레도 도시의 꼭대기를 가리켰다. 그는 이곳이 버스 정류장이 맞고, 이곳을 종점으로 해서 버스가 한 바퀴를 도는 구조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이 말을 알아듣기까지 그분은 거의 다섯 번이 넘는 스페인어를 반복해야 했다. 나는 그의 손가락이 같은 곳을 빙빙 도는 모습을 열 번 정도 쳐다본 후에야 그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웃으며 오케이 표시를 했고, 그는 웃었지만 내가 여전히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계속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와 빙글빙글 도는 손가락 표시를 반복했다. 웃음이 나왔다.
그 반복적인 소통을 통해 나는 스페인어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약간 인터넷 밈으로 자주 보는, 아주머니가 음식을 버무리는 모습을 김종민에게 보여주며 '따라 해봐요, 가능한.'이라고 했을 때 김종민이 따라해보기는 커녕 '가능한!'이라고 소리친 것처럼, 나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할아버지의 말을 따라 발음했다. 그때는 할아버지에게 호응을 해드리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지만, 어느 순간 나는 스페인 문장의 구조가 어떤 순서로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이가 없어서 웃었을 수 있지만. 이 분과의 길고 긴 대화를 통해서 스페인어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동기가 생겼다.
다시 할아버지와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는 나에게 길을 알려준 후에도 볼일을 보러 가지 않고 내 옆에 한참을 머물렀다. 아마 버스가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옆에서 알 수 없는 스페인어를 계속하시기에, 나는 문득 구글 번역기의 음성 번역 기능을 떠올리고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분의 입에 내 스마트폰의 마이크를 가까이 대자 그는 어리둥절해했다. 그래서 내가 시범을 보여줬더니 그가 환하게 웃으면서 구글 번역기에 대고 "이거 정말 멋지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혼자 여행을 왔는지 물어보았다. 또 나이가 몇 인 지도 물어보았다. 자기는 두 딸이 있는데 둘 다 나이가 세 살과 일곱 살이 많았다. 나를 보고는 자기의 딸을 보는 느낌이었다고도 하고, 자신의 두 딸을 종종 걱정한다고도 말했다. 내가 스페인 여행을 홀로 다니기에 괜찮은지 물어보자, 그가 대답하기를 "혼자 다녀도 괜찮다. 착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위험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고 말하니, 할아버지가 여기 내 오토바이가 있는데 이걸로 도시 구경을 시켜줄까, 하고 물어봤다. 나는 직전에 했던 대화 때문인지 왠지 겁이 났고, 괜찮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선택지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그를 따랐다면 더 근사한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이미 유럽 여행을 오래 한 뒤였다면 기꺼이 할아버지의 멋진 오토바이 뒤에 탔을 수도 있겠다.
할아버지는 내가 버스를 탈 때까지 옆을 지켜주었다. 내가 버스를 타러 갈 때 몇 번이나 인사를 해주셨고, 그의 밝고 친절하고 수다스러운 인상은 톨레도에서 겪었던 가장 강렬한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만났던 언덕은 그가 톨레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했다. 종종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톨레도 근교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톨레도에서 오래 살아온 토박이로 이 지역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곳이 꼭 내가 한국에 거주하는 동네와 같이 느껴졌다. 조금 투박하기는 해도 다들 친절했고, 쨍쨍하고 좋은 날씨 덕분인지 유쾌해 보였다. 주변의 환경이 나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고 만약 내가 나 자신만을 위한 거주 지역을 정할 수 있다면, 톨레도에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