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백칠호 May 08. 2021

어버이날 쓰는 아버지 전상서

삭제하고 달아나고 싶은 날들을 반복하며

아빠, 아빠도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은 시절이 있나요?


저는 그날들로부터 완전히 분리, 저 멀리 달아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시절의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그거 저 아닌데요 외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으로 매일 밤 베개에 머리를 뉘었습니다. 아빠도 알 거예요. 딸에게 캠퍼스의 낭만 따위는 없었다는 걸. 야경주독으로 고된 나날들을 보내며 평생 흘려야 할 눈물을 그때 다 쏟은 게 아닐까 하고 가끔 생각합니다.  


진짜 시련이라 부를 만한 것은 20대 끝자락의 겨울에 찾아왔지요.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바로 KTX를 타고 부산의 한 병원 중환자실을 찾았습니다.  

하루에 딱 한 번 면회가 허락된 중환자실 앞에 한참 앉아있었습니다. 초조한 마음에 앉았다 일어섰다, 복도를 서성이길 몇 차례 반복했을 때 문이 열렸습니다. 여기저기 터지는 울음소리 속에서 아빠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호사분이 안내해준 그곳엔 낯선 사람이 누워있었습니다. 아빠의 이름표를 달고요.


우리가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곳이 그 지옥이라니.


아빠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가족회의가 있었던 것 기억하세요?

엄마 아빠의 이혼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성인이었으므로 엄마 아빠의 선택을 존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아빠의 발언에 충격을 받고 말았지요. 이제 세상에 아빠는 없다고 생각하라니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딸의 알림장을 꼼꼼히 확인하고 준비물을 챙겨주던 아빠였잖아요. 아빠가 한 말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알아서 먹고살 수는 있겠지만 하루아침에 아빠가 없는 사람으로 살 순 없었거든요. 이렇게 멀쩡히 아빠가 살아 있는데요?   


그날이 아빠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날이 마지막 이어선 안 됐는데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괴롭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딸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아빠가 너무 미워서, 없다고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없어져버렸으면 싶은 적도 있었습니다. 당신과의 틈을, 어떻게든 메워보려고 했나 봅니다. 그 틈을 죽도록 미워하는 마음으로 부득부득 채워나간 딸을 용서하세요.


의사 말로는 뇌출혈이라고 했습니다. 오른쪽 뇌 손상이 크다고 했지요. 이 정도면 대체로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힘들겠지만 받아들이라는 말도 함께요. 그 어떤 기대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소견이었습니다.


내가 죽도록 미워했던 사람이, 내 앞에서 죽음을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딸의 극단적인 미움이 병마가 되어 아빠의 몸에 씐 걸까요? 그간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왜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된 것인지 아직 못다 한 말이 많았는데. 왜 그제야 할 말이 생각난 한 걸까요.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다면 더 빨리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 건데.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이미 깊은 잠에 빠진 아빠를 보며,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한다는 말은 죽도록 사랑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온 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기적을 바라는 것뿐이었네요.


기적은 우리처럼 불쌍한 인간들을 위해 존재하나 봅니다. 잠에서 깬 아빠에게 들은 첫마디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연락 못했다. 미안해. 사랑해 딸. 아빠 죽기 싫다.”

아빠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곳이 하필.  





기억 저편에 아빠와 엄마는 경제적인 문제로 불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사업이 무너지며 피해를 주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아 그런 결정을 하셨던 것을 압니다.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밤낮없이 뛰면서 일은 일대로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던 것도요. 가족을 흩어지게 만든 죄책감에 매일 술을 마시고 줄담배를 태우셨던 아빠. 당신이 쓰러지신 그날도 추운 겨울 새벽부터 사무실에 나서던 길이라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밤늦게 주말까지 묵묵히 일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아이에게 어떤 물질적인 피해도 주기 싫은 내 모습에서 아빠를 봅니다. 이를 꽉 깨물고 자식에게 싫은 소리도 억지로 해야 하는, 어쩌면 일부러 더 냉정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그런 상황들도 더러 생기는 현실에 아빠의 슬픔이 비칩니다.  


아빠, 저의 삭제하고 달아나고 싶은 시절은 바로 그 날입니다. 가족회의가 있던 날.

달아날 수 없다면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고아가 아니라며 화를 내고 가끔 아빠를 만나서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싶습니다. 아빠가 절대로 병원으로 가지 않게요. 또 두 발로 땅을 디딘 아빠와 손을 잡고 실컷 걸어보고 싶습니다. 제 결혼식에 아빠 손을 잡고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또… 엄마의 마음으로 아빠를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괜찮다고, 가족 앞에선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여주고 싶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해도 괜찮습니다. 어쩌면 삭제하고 달아나고 싶은 시절이 있어서, 그곳으로부터 한 뼘 더 달아난 어른 부모의 삶을 향해가는 건 아닐까 합니다. 아직은 아빠의 마음을 다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삭제하고 달아나기를 반복하면 언젠가는 다 알게 될까요. 모른다 해도 좋습니다. 아니 모르고 싶습니다. 곁에서 함께하며 천천히 하나씩 알려주세요. 아주 오래오래.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