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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Sep 14. 2022

#16 집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편지

작은 집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창문과 초인종이 붙은, 대문을 열고 머리를 한껏 숙이고 들락거릴 수 있는 작은 집. 

그것은 내가 최초로 기억하고 내가 최초로 사랑에 빠진 상명 유치원 유아반에 있던 장난감 집이었다.

자유놀이 시간이면 언제나 나는 그 집을 찾았다. 하지만, 그 집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있었기에, 하루는 운 좋게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아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할 수 있었지만, 하루는 집이 이미 미어터지게 만원이라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알록달록한 집에 들어가서 운 좋게 작은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으면 그 아늑함에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친구들을 부르거나, 문 밖의 초인종을 눌러 대는 친구들에게 대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플라스틱 소꿉에 커피를 따르는 흉내를 하며 집주인 행세를 하는 놀이를 너무도 사랑했다. 


결혼을 하고 몇몇 아파트를 옮겨 다니며 살 때는 그렇게 집에 대한 애착이 하늘을 찌르지 않았던 것 같다. 집은 회사가 끝나고 돌아와 철썩 소파 아래에 노트북 가방을 내동댕이 치며 앉아 멍을 때리며 쉬는 곳. 가끔 주말이면 지난 주말에 했던 밥이 형형색색의 곰팡이를 피운 압력 밥솥을 닦고 밥을 해 먹는 곳. 


집에 대한 애착은 아이들이 생기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같이 커갔다.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자연을 가깝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였을까.

작은 정원이 있었으면 했고, 숨을 구석이 많아서 아이들이 언제나 숨바꼭질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고,  밥을 준비하면서도 아이들이 노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면 했다. 육아에 지쳐 자아분열이 생겼을 때 혼자 조용히 앉아서 나는 누구이고 어느 별에서 왔는지를 탐구할 수 있는 나만의 책상과 책장이 있는 장소를 꿈꿨다. 빨래를 건조기에 넣지 않고 햇살에 말릴 수 있고, 화장실은 그 어디보다 고급진 도기를 써서 습하고 구리지 않고 아늑하며, 힐링하고 창의성이 샘솟는 곳이었으면... 아, 그리고 화장실과 부엌의 창문은 무조건 대문짝 만하게 만들 것이다. 바람이 잘 들고나가 샤워가 끝나면 천장에서 웽웽 일없이 소리만 내는 환풍기를 보기 좋게 무시해 주고 창문을 활짝 열어 바람과 빛으로 보송보송 말려야지. 요리를 할 때도 환풍기 대신 창을 활짝 열고 삼겹살도 굽고, 생선도 조리고, 김치통도 부셔야지. 

집에 대한 요구와 희망 사항은 날로 구체화되고 늘어났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원하는 그런 집을 지을 것이다, 지을 것이다....

이 모든 로망을 담아 힘겹게 구기동 꼭대기에 집을 짓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집에서 3년을 조금 넘게 살고 떠났다.



몰타에서는 처음 머물었던 아타드와 비르키르카라의 100년 넘은 집에서 2년 정도를 살았는데, 그 와중에 나는 비르키르카라의 집을 리모델링까지 했었다. 전주인이 남들처럼 배치한 부엌을 뜯어고치고 구석구석에 역할과 명분을 주거나 비워내기를 하고, 전주인이 양말 짝과 속옷들을 냄새나게 널어 두었던 (세탁기에 이틀씩 묵혔다 널었는지, 전 주인이 살 때 집 구경을 갔을 때는 늘 테라스에 가면 퀴퀴한 빨래 냄새가 났다.) 테라스는 별을 보며 힐링할 수 있는 초특급 라운지처럼 꾸며냈다. 6개월이 넘게 그 집을 손보고 중고 가구, 중고 샹들리에 등등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여놓고는 두 달을 더 살았나, 또다시 그 집을 냉콤 떠났다. 




하지만, 내 가슴을 그 어디보다 두근거리게 만든 집은 몰타에서의 서진이 남친 안톤의 집이었다. 

나는 그 집에 10분 이내로 머문 듯하다. 서진이를 픽업하러 잠깐 들렀을 뿐이다. 

아주 아담한 단독주택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다음 광경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작은 응접실 넘어 유리문이 기억자로 펼쳐지고 그 안에 정원이 있었는데, 정원으로 가는 길은 예쁜 판석이 깔려있었고, 그 판석이 조르륵 깔려있는 길을 따라 커다란 초록잎의 나무가 가로수처럼 하지만, 서로의 머리를 맞대어 작은 터널처럼 심어져 있었다. 이 키가 큰 정체불명의 나무들은 하루 종일 내리쬐는 몰타의 태양을 언제나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가려주며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주었지만, 나뭇잎 사이사이로는 햇살이 나뭇잎과 같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판석 위에 보석을 뿌린 듯 반짝이고 있었다.

판석을 징검다리처럼 딛고 가다 보면 아름다운 나무 의자 위에 예쁜 쿠션과 방석들이 놓여있었고, 구석구석 자갈과 예쁜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정원 한구석 벽에는 암벽 타기 연습을 할 수 있었고, 다른 한쪽 구석에는 대롱대롱 흔들 징검다리가 공중에 매달려있었다.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해먹이 매어져 있었다. 

기억자로 감싸진 실내는 한쪽은 식당이고, 다른 한쪽은 거실인데,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맨발로 정원과 거실과 식당을 오가고, 나 또한 그 집에 들어간 순간 나도 모르게 바로 정원으로 발을 내디뎠을 만 큰 이 집은 완벽하고 자연스럽게 안팎이 연결되어 있었다.


영국에서 온 이 엄마의 정체를 알기도 전이였기에, 이 엄마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던 사람인지, 아니면 조경사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집은 내가 보아온 수백, 수천 개의 집들 중에 단연 최고였다. 

집은 구석구석이 연결되고 개방되고 그 집의 세 아들을 위한 모든 액티버티를 버라이어티 하게 집 안과 밖에서 가능하도록 만든 그 집의 아름다움과 기능성에 입이 쩍 벌어졌다.

서진이에게 나중에 내가 보지 못한 그 집의 다른 구조에 대해서도 꼬치꼬치 물어서 그림을 그린 적도 있다.

서진이에 의하면 그 집의 어느 방 하나에는 구덩이가 있어서 바닥에 있는 문을 열고 그 구덩이 같은 곳에 숨을 수도 있고, 피아노 방, 현악기 방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구덩이만 들입다 강조해서 말했지, 더 이상 집 구조 그림을 발전시킬 만한 정보는 아쉽게도 주지 않았다. 


내 가슴을 벌렁 이게 하는 존재가 집인지라 나는 서울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몰타에서도 집을 무던히도 보고 다녔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라가리가에서도 집 보기를 취미생활처럼 했지만, 내 가슴을 그토록 벌렁이게 만들었던 집은 십 분 동안 잠깐 본 안톤네 집이다. 안톤네 집은 집에 대한 나의 신념과 로망을 거의 충족시킨 집이었다.


집에 대한 나의 신념은

첫째, 집은 무릇 모시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구가 너무 고급지거나,  너무 멀끔하고 널찍하면, 청소를 해가며 모셔야 하고, 행여나 고급진 장식이나 가구가 다칠까 모시고 살아야 한다.

그런 집은 나에겐 매력적이지 않다.

둘째 집은 안팎이 연결될수록 좋다. 창으로 바람이 안팎으로 휭휭 오고 나가며 연결되고, 정원을 가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하거나, 현관에서 신을 신고 맘먹고 나가는 곳이 아닌, 식당에서 슝, 거실에서 슝, 맨발이건 양말 바람이건 큰맘 먹지 않고 나다닐 수 있게 내부와 외부가 연결된 곳이 좋다.

셋째, 똑같이 큰 네모에 방과 거실 부엌 화장실을 쪼개고, 거실엔 소파와 소파 앞에 TV가 놓이는 무미건조한 구조과 가구 배열을 나는 참을 수 없다. 친구 집에 갔을 때 이런 구조를 보면 나는 정말 무모하고 어이없게도 굳이 가구 배열을 바꿔주고 와야 직성이 풀린다.

고정관념을 확 깨 버린 구조가 나는 좋다. 그리고 네모지게 쪼개 놓지 않고, 울퉁불퉁 쪼개서 예상치 않은 구석이 많은 집이 좋다. 그런 조그만 구석은 아직도 유아원에 다닐 때의 작은 집에 대한 향수를 일으켜 준다.

그리고 마지막 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온기이다. 온기는 그곳에 사는 가족들이 불어넣기도 하지만,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 집에 오겠다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솔직히 귀찮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신통하게도 언제나 나는 귀찮은 마음을 물리친다. 그들은 먹을 곳이 없고 잘 곳이 없어서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귀중한 시간을 나에게 나눠주러 오는 것이기에, 언제건 어디서건 나는 내 집에 사람이 오는 것을 좋아하고 감사한다. 그들이 가져다주는 달콤한 온기에 감사한다.


집을 그토록 사랑했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넘의 집이다. 여러 번 집을 고치고, 짓고 했는데, 정말 죽도록 짓고 고쳐서 남들을 살게 하고 나는 떠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내가 결혼 이후 제일 오래도록 살았던 남의 집 월세 살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릴 집을 꿈꾼다.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제 나이가 들어 그 힘든 집 짓기를 다시 할 수 있을지, 느려 터진 유럽 사람들과 리노베이션을 하다가 풍이라도 맞지 않을까 싶지만, 어딘가 자연이 가까운 곳에 다시 내 집을 갖게 된다면, 그곳은 안톤네 집을 많이 닮게 만들고 싶다. 타샤의 비밀의 정원까지는 안되더라도 아침마다 나가서 돌봐줄 꽃과 나무들을 비밀스럽게 품은 집, 여긴 어디? 이 구석은 어디에 쓰라고? 하는 구석이 많은 집... 상빈이가 애기 때 좋아하던 책 제목처럼, 내가 사랑했던 유치원 플라스틱 집처럼 

"작은 집이 있어요" 하고 다시 내 집을 소개하는 날을 기다리며....


-2022.9월 가을이 오는 라가리가 월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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