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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Aug 24. 2022

#16 집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나란히 늘어선 세 개의 큰 책장, 한때는 내 자부가 되어줬던 책들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다. 몇 번의 이사를 하며 이리저리 솎아낸 후, 책장은 많이 헐렁해졌다. 낮은 단에는 그림이 많고 글은 적고 글자는 큰 책들이 주루룩 늘어섰다. 그 위칸엔 포클레인을 비롯해 경찰차와 소방차, 오토바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니카들이 장한평 부럽지 않게 모여있다. 다시 눈을 들어 차례차례 더듬어가다 낡고 정든 책 두 권을 꺼냈다. <달려라 아비>와 <침이 고인다>. 둘 다 몹시 사랑했던 책들이다. 나는 이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단어와 구절과 문장을 모두 흡수하고 싶었었다.


'-었-'을 두 개나 붙일 만큼의 시간.


소설 속 인물들처럼 나는 일찌감치 집을 떠나왔다. 떠나며 남는 미련은 없었다. 내 몸만 한 가방 안에 꼭 필요한 것들을 챙겨 넣었다. 적당한 기대와 적잖은 불안도 함께 담았다. 고등학교 시절 책상 위에 두었던 덩치 큰 오디오 플레이어는 이제 침대 아니, 프레임 없이 매트리스만 놓인 잠자리의 머리맡에 자리 잡았다. 발치엔 이층짜리 행거가, 그 옆엔 작은 벽거울과 수납박스, 다시 그 옆엔 허리까지 오는 냉장고와 작은 싱크대가 있었다. 한 구짜리 가스렌지 위엔 작디작은 창문. 그 집을 설명하기 위해선 '작다'라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모든 게 작고 작아서 사실 집이라기보다 방에 가까웠던 곳. 그곳에서 나는 어설픈 탈피를 했다. 되다만 어른, 설익은 어른이 되었다.


작은 방의 작은 창문이 두꺼울 리 없다. 소음도 바람도 소문처럼 쉽게 들고났으나 다행히 상수동이 고즈넉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깊은 밤 자박자박 걸어 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늦은 밤의 라디오와 좋아하는 앨범의 히든 트랙을 들으며 자주 울었다. 방이 싫어 운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방이 좋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방에 고이는 '사생활'이 좋았다. 혼자 있는 시간. 혼자 먹는 저녁. 혼자 맞는 주말. 혼자 읽는 책. 쓸쓸함과 외로움. 강의실에서 배운 것보다 방에서 배운 것이 훨씬 많고 깊었다. 나는 그걸 배우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누구의 것도 아닌 한강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 더워 잠을 설치다 옥상에 올라온 이른 새벽이었다.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게 쓸쓸하고도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흐르는 강 위로 아침 해는 뜨고, 들고 올라간 책은 한 장도 펴보지 않은 채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음에 맺힌 것이 없었다면 내가 그 소설들에 그리 오래 묶여있을 수 있었을까. 나는 언제나 집을 떠난 여자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말리고 붙잡고 때론 제 몸을 흙에 던져가며 나뒹구는 이들의 손을 뿌리치고 제 살 길을 찾아 저벅저벅 걸어간 여자들. 나는 그 냉철한 판단력과 거센 추진력에 늘 감동받았다. 소설 속 여자들, 에세이 속 여자들, 그리고 내게도 손 흔들며 떠난 친구와 이웃들이 참으로 멋져 보였다. 한 줌의 내 그리움이란 공중에 날려버려도 좋았다.


결국 물리적인 공간을 일구기 위한 고군분투. 지난 1n년을 그렇게 압축할  있을까.  방에서  방으로, 그리고 방이 아닌 집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소설  인물들도 청약을 붓고 평수를 넓혀 이사를 했다. 강을 건너는 전철을 타고 학원 대신 회사로 출근하는 장면들을 읽자니 그들과 공평하게 나이를 먹었다는 실감이 났다. 어쩐지 우정이라도 생긴  같았다. 노부부라도 된냥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   침대  좁고 아늑했는데.' 같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상 그곳으로 돌아갈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거쳐온 , 잠시 머문 집들을 떠올리다 끝은 언제나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집으로 향한다. 아직 아무도 짓지 않아 존재할  없는 . 좋아해서 오래오래 살던 동네를 떠나올 , 우리는 그런 다짐을 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집을 짓자고. 무모하고 용감하게 집을 지은 사람들의 책을 읽을   마음은 함께 들떴다. 아는 것은 동서남북과 배산임수밖에 없으면서도 언젠가의  집은  모두를 아우를  있을  같았다. 한여름 눈을   정도의  아래, 산모기에 등을 뜯기면서도 주택이 주는 평안이 좋았다. 햇살 아래 바삭바삭 말라가는 빨래가 좋고 매미 다음 귀뚜라미 귀뚜라미 다음 잠자리가 나는 옥상이 좋았다. 계절이 흐르는  온몸으로 느낄  있어 좋았다. '작다.' 대신 '좋았다.' 말을 반복하며 언젠가의 꿈을 키운다. '지금 집을 짓는다고 하면 아직 자신이 없어. 내가   많은 것을 보고 깨우쳐야 좋은 집을 지을  있을  같아.'  짓는다 10 늙는다는  앞에 나는 자꾸만 겸손해진다. 땅을 정하고 흙을 고르고 터를 닦아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는 . 방향을 고심해 창과 문을 내고 볕을 끌어오는 . 경사와 계단을 조율하고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을 구분하는 . 내겐 아직 좋고도 어려운 일이라  많은 경험과 공부가 쌓여야 한다고 다짐한다. 언젠가 그런 ,  선선하고 시원한  계절. 나와 함께 나이 먹은 인물들의 페이지를 펼치고 싶다. 살아온 이야기들을 함께 읽고 싶다.




'바르셀로나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는 바르셀로나의 박민아 님과 함께 202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8시간의 시차를 공유하며 한 달에 두 번 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씁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알지 못하나 우리는 정말 즐거운 기대를 안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꾸준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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