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잊혀진 공부 못하던 친구들에게

학벌 말고 진짜 인생을 무너뜨리는 것들

by 정돈서재


차분한 범생이 친구들이 이런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폭력적인 선배들이 이 친구들만 피해 간 것인지...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 속에서도 꿋꿋이 공부만 해서인지… 나는 그들의 입장이 아니었어서 잘 모르겠다.


이런 공부 잘하는 친구들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을 일생일대의 각오와 함께 1학기를 시작했다. 내가 영어 시간에 처음 외운 단어는 “Achievement”였다. 이 글을 쓰면서도 Achieve 인지 Acheive 인지 헷갈린다. 이렇게 생긴 단어가 있었다니! 단어장 “A” 부분에 있는 단어라 외운 것이지만, “성취”라는 단어 뜻이 마음에 들었다. 이 단어를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암울한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게 됐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1학년에 겨우 “Achievement”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게 내 수준이니 당연한 결과였을 수도 있다. 실력은 없는데, 꼴에 강압적인 교육은 싫어해서 “최선어학원”(암기식 교육을 지향하는) 같은 곳은 딱 한 달 다니고 학원을 끊었다.


나는 성적이 왜 이리 안 좋을까? 많이 위축됐었다.

우선 다양한 곳에서 유입된 알지 못하는 친구들의 실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1학년 1학기부터 잘하는 친구도 많지만, 1학년 1학기는 일종의 흙탕물 같다고 생각한다. 공부 잘하는 순위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그때 나는 많이 쫄았지만, 나중에 성적을 어느 정도 만회했던 것 같다.


1. 잘하던 아이들


실제로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중동고는 그 당시 일반고였지만,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학을 보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전국단위 자사고, 영재고, 외고와 같은 곳이 대학을 잘 보내긴 하지만, 강남 학군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외고”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중학교를 졸업했으니, 나는 이곳의 실력을 알고 입학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우리 기수인 98회 졸업생들이 공부를 좀 잘했다고 들었다. 공부를 잘했다는 기준을 SKY로 잡을지, 요즘처럼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로 설명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대학 진학을 기준으로 고등학교를 평가하는 것을 “이명학 교장 선생님”* 께서는 싫어하시겠지만… 이색적인 기준으로 서울대가 아닌 “서울대 의대”를 기준으로 설명해 보겠다. 우리 기수는 현역으로 3명의 서울대 의대 합격생을 배출했다. 20년이 지난 2024년 기준으로는 4명의 “서울대 의대” 합격생을 배출했다니,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명학 (전) 교장선생님은 유퀴즈에 나오시면서 알게 됐는데, 성균관대학교 교수 출신이라고 한다.)


고1 때 만난 친구들 중 상당수는 이미 고3까지의 진도가 끝나있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중학교 졸업도 힘들었는데, 이 친구들은 언제 이런 공부를 다했는지… 그들과 일치하는지 모르겠지만, 고3 때 진도 걱정보다는 수능준비만 1년 동안 하는 상위권 친구들도 볼 수 있었다. 내가 만난 고3 상위권 친구들이 선행을 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1 때 나를 압박할 만큼 선행의 기술과 묘기를 보여주던 친구들 중 상당수는 나중에 기억도 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초반엔 무늬만 선행인 친구들이 섞여있던 것 같다.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하는 가에 대해, 기억을 되짚어보면… “잘하던 놈이 잘한다.”는 말만 떠오른다. 상위권이 무너지는 경우를 잘 못 봤고, 어린 나이이지만 그 친구들은 이미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마치 손흥민과 김연아처럼 학교와 학교 밖에서 어떤 식으로 연습하고, 실전에 임해야 하는지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프로였던 것이다. 그들이 특정한 학원, 과외를 받아서 잘하게 된 것보다는… 하필 잘하는 그 친구가 그 학원에 다녔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학원들은 자신들의 실력보다는 우수한 아이들을 모집해서 그 집단을 형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다수에 대한 가르침보다는 능력 있는 학생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게 주요 능력이 된 것이다.


2. 못하던 아이들


요즘도 “의대” 드림을 꿈꾸며 강남 학군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때는 꼭 의대는 아니었지만 명문대를 꿈꾸며 이곳에서 함께한 평범한 친구들이 떠오른다. 전 과목 과외를 받는다던 부잣집 아들 기수.(사업가 아버지의 자서전이 있던…) 그런 기수는 고3 내내 교실 뒤에서 복싱 연습만 했던 것 같다. 의류 브랜드 사장님 아들이던 OO는 수학의 정석이 찢어질 만큼 밑줄을 그었지만, 수학 성적은 좋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책 보는 척을 하면서 수업시간에 잘 수 있는지 알려줬던 “병린”이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했다. 축구선수 호나우두 머리를 따라 하겠다며 머리를 밀고, 머리 앞부분만 남겼던 용민이는 해양대 졸업 후 배의 기관사가 됐다가 지금은 항공기 파일럿일을 한다. 대치동 유명 학원 선생님의 아들도 있었고, 중학교 때 전교권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와서는 성적이 떨어졌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들었다. 그 밖에도 나를 포함해 SKY에 진학하지 못하고, 의대에 진학하지 못한 수많은 친구들도 같은 고등학교에 존재했다.


나는 고등학교 생활을 통틀어 이런 친구들이 오히려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같이 교실 뒤에서 축구를 하다가 혼났던 친구들. 점심시간마다 땀에 젖어 농구를 했던 친구들. 허무와 우울에 빠져 고등학교 생활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해 준 친구들은 능력이 뛰어났던 친구들 보다는 오히려 시답지 않은 내기를 하고, 때리고 도망 다니던 그런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엔 좋은 성과를 냈던 친구들만 기억에 남아있다. 나 역시도 누군가 고등학교에 대해 묻는다면 의대 진학생수를 말하고, 공부 잘했던 친구 얘기를 꺼낸다. 나의 부족함에 대해 “학교와 나를 동일시”함으로써 보충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부족함을 겪을 후배들의 현실을 들려준다면 마음이 힘들 수도 있다. 매년 통계가 다르니 말하긴 어렵지만, 강남 학군지에서는 학년당 대략 120명 정도가 SKY에 간다고 생각해 보자. 360명 중 1/3이 명문대에 가는 것이다. 요즘은 의대 강세가 이어지기에 의대만 추가로 카운팅 하면 중동고 기준으로 50명 정도를 더 잡을 수 있다.(보수적으로) 굉장히 많은 수이지만, 이 숫자에 속하지 않게 된 친구들은 구천을 떠도는 영혼처럼 꽤 오랜 시간 방향을 잡지 못한다. 네 번 다섯 번 수능을 보기도 하고, 집안에서는 귀한 자식에서 걱정거리 자식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내가 보기에 충분히 괜찮은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풀이 죽어서 학교생활을 하기도 한다. 이 친구들이 다른 지역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이런 경쟁 자체를 모른 채로 말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다면 부모나 자식이나 보통 욕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니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이들은 졸업하고 끼리끼리 잘 구분되어 지낼까?"


우리 때도 의대 합격생들이 많았기에 의대 진학한 친구들만의 카톡방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전교 상위권 학생들만 모아놓은 “밀레니엄반” 친구들끼리의 네트워킹도 있을 것이다.(일종의 특수반이었고, 수업이 아닌 자습을 위한 구분이었다.) 이런 네트워킹은 공통점이 있는 아이들을 담아두는 하나의 바구니 같은 것일 뿐, 같은 바구니에 있다고 모두 친할 것 같지는 않다.



“대입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상위권 친구들과의 인맥을 이어간다고?”



이 말을 부정하긴 어렵다. 우선 서울에서 만날 기회가 많다 보니… 이런저런 일로 서로 엮기고 친해지게 된다. 대학을 가보면 알겠지만, 성적이 우수한 고등학교는 동문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과별로 나눠서 동문회를 하기도 할 정도니 말이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신촌 모임”인데, 고2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신촌에 있는 대학에 그렇게 많이 가게 될 줄은 몰랐으니, 위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꼭 그것만이 인맥을 이어가게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게 친근감이 있는 건 오히려 나의 고등학교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그런 친구들이다. 지금 어울려 지내는 친구들의 학벌이 내 인간관계에 아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을 보고 친구 관계를 이어갔다고 하긴 어렵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보니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된 친구도 인연이 되면 만나게 되더라…



“진짜 인생을 무너뜨리는 많은 것들”


마지막으로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간 많은 친구들. 대학 입학 하나로 인생을 절망에 담가버린 그런 친구들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각자 목표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앞으로 60년 이상의 인생을 미리 “단정 짓고”, 한껏 어둡게 꾸며놨을 친구들. 그 마음을 절반 정도는 이해한다. 부모의 권유로 대학만 바라보며 달려왔기에 다른 목표도 안 보일 것이다. 때론 도망자 같은 느낌이 들고, 때론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대들이 아직 겪어보지 않은 20년 정도의 미래를 알려준다면, 학벌이 “안 중요하진 않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학벌이 안 좋다고 인생이 망가진(무너진) 사람을 보진 못했다. 누구든 결국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졸업 후 학교와 상관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친구들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스무 살부터 20년을 충실히 보낸 친구들을 마흔이 돼서 만나는 것 같다.


학교를 떠나 30년 뒤 모교를 방문하는 Home coming Day 에도 의사, 변호사 선배들이 오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안(?)하셨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서 성공하신 선배님들이 주로 오신다. 그분들의 성취가 더 크다는게 그때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학벌은 내 인생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대신 진짜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들에 대해 말해보겠다.

- 내 욕망으로 인해 잘못된 투자를 한 경우, 평생 갚기도 어려운 빚을 진다.

- 험난한 결혼생활. 배우자와의 갈등.

- 좋지 않은 사람들을 주변에 두어 부정적인 메시지를 오랜 기간 받아들인 경우

-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아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세월을 후회하는 것

- 소중한 사람을 홀대해서 떠나가게 한 경우

- 몸을 막 쓰고 건강을 지켜내지 못해 생활이 힘들어진 경우


나는 이런 것들이 내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는 일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이런 일들로부터 회복하는 것이 더 어렵다. 학교야 다른 데를 가거나 안 갈 수 있지만, 위의 것들은 보다 본질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노땅의 말이 먹히진 않겠지만, 이미 기대 이하의 학교를 갔다면 그것은 그냥 내 진로의 옵션 중 하나였다고 여겨주길 바란다. 훌훌 털어버려도 기회가 많으니 Home coming day에 오는 선배님들처럼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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