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만남을 준비하며..
대학교 1학년 소노 비발디파크(대명리조트)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갔을 때가 선명히 떠오른다. 그때 그 시절 기억은 떠올리기만 해도 이미 취해있다. 술을 처음 마신다는 동기는 연신 “하나도 안 취한다”며 술을 마시다가 토를 했고 선배들이 능수능란하게 그걸 치웠다. 각종 술게임을 하는데, 술을 못 마시는 나로서는 수능 공부만큼 술게임을 연구했었다. 선배들은 그 와중에도 특별히 챙겨줄… 즉 호감 가는 이성을 찾아 헤매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노안”인 데다가 재수까지 하고 들어가서 선배들은 내게 존댓말을 하기도 했다. ROTC로 학교에 남아있거나 복학한 형은 “저 새끼 왜 이리 늙었어.” 라며 웃는데, 차라리 그렇게 해주는 게 마음이 편했다.
2000년대 초 내가 있던 사회과학대는 선후배가 서로 말을 놓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었다. 아마도 우리 반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군대에서 복학한 선배나, 3, 4학년 선배처럼 나이차가 있는 형들도 내게 말을 놓으라고 했다.
“야, 이제부터 다 같이 말 놓는 거다? 다들 옆에 선배한테 “야”라고 해봐.” 하며 술잔을 들었다.
엄격한 중동고의 분위기 이후 맞이한 첫 대학생활은 자유와 혼돈의 연속이었다.
‘이것은 나를 벌주기 위한 일종의 시험인가?! 함정일 수도 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강한 선후배 관계에서 몇 년간 훈련된 내가 선배에게 말을 놓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한 선배가 가만히 멈춰있는 있는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OO가 말 안 놓는데이, 안 되겠다. 우리 술 못 마시겠네.”
선명한 사투리로 쩌렁쩌렁하게 말하는데, 내가 TV에서나 들었을 말투였다.
한 학번 선배가 윗 선배들과 반말로 대화를 주고받는 걸 보자 나도 이것이 나를 위한 몰래카메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뒤로 내가 선배에게 “야”라고 말하자. 그것으로 모두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나는 이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채 분위기를 경계하느라 술에 취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날부터 다양한 사투리를 듣게 됐고, 말투를 듣고 지역을 맞추는 연습을 했다. 부산이나 대구 친구들은 경남과 경북을 엄격히 구분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듣고 “부산”에서 왔냐고 하면 경북 친구들이 썽을 냈다. 나 같은 서울 사람은 사실 그런 말투를 들으면 부산 밖에 생각이 안 났다. 그만큼 서울 중심의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가 알던 광주와 마산 친구는 어느 누구보다 억양이 강했고, 졸업할 때까지도 말투를 바꾸지 않았다. 대학은 정말 대한민국을 작게 모아놓은 집합소 같았다. 각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지원해 주는 숙소도 있었고, 종종 향우회라는 명목으로 모임도 하고 있었다. 서울도 크기에 동네마다 그 특색이 달랐던 것 같다. 그중에 강남 8 학군은 그들만이 공유하는 독특한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다.
학기 초, 서로 시간표를 공유하며 학교 건물을 외우고 있을 시기 즈음.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한 친구가 내게 황당한 요구를 했다.
“OO이가 강남 사는데, 밥 좀 사주라.”
내가 당황하자 장난이었다면서도 이와 같은 요구를 몇 번 더 했었다.
식사 자리 나 술자리에서는 내가 걸치고 있는 시계, 옷, 신발을 지목하며,
“이게 강남애들이 입는 스타일이여? 아따 나도 저거 사야불것네” 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나중에 내가 허접한 짝퉁 명품을 입어도 친구들을 다 주목시킨 뒤에 OO가 명품을 입고 왔다고 소문을 내주었다.(정확히는 가짜 버버리 셔츠로 기억한다.)
이런 경험들이 있은 후로는 누군가 내 주소지를 물으면 그냥 “서울”이라고 하거나, 집을 더 벗어난 서울 외곽 지역을 집이라고 말하게 된 것 같다. 어차피 찾아올 것도 아니기에…
(내가 이러면 압구정, 한남동 이런 곳의 친구들은 더 곤란했으리라.)
물론 그 친구만의 오해나 잘못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내가 아꼈던 친구이기에 방어하자면, 강남에는 나 같은 짠돌이만 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친구가 생각하는 부유하고 보여지는 지출이 큰 친구도 많았다.
-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프라다”가 유행이었다. 나는 프라다 옷 한 벌도 없었지만, 프라다 가방, 신발을 착용한 친구들이 넘쳐났다. 비싼 노스페이스 가방과 패딩도 마찬가지로 흔했으니, 그 친구가 오해한 것은 아니다.(그밖에는 내가 브랜드들을 잘 몰라서… 생략한다.)
- 2002년에 완공한 “타워팰리스”에 사는 친구들은 그 출신과 돈 씀씀이부터 차원이 달랐다. 누군가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음식을 쏘기도 했다. 축구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친구의 어머니께서 다가왔고, 벤츠에서 내린 운전기사분이 뒤이어 햄버거를 들고 온 적도 있다. OO 브랜드의 자녀였던 친구는 친구의 생일 때마다 그 브랜드 옷이나 굿즈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곳에는 대형 병원의 병원장 아들, 대형 회계법인 창립자 아들, 그밖에 사업가의 자녀들이 많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물론 다른 지역에도 대단한 분들이 흩어져 계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유한 친구들에게 “밥사달라”, “너 부자구나?”라고 해서 기분 좋을 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그것이 내가 이룬 것도 아니고, 나도 똑같이 공부해서 대학에 온 신입생일 뿐 아니겠는가? 만약 돈 많다고 치켜세울 때 우쭐댄다면, 그 사람을 뭔가 이상하니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말투뿐만 아니라 생활에 있어서 굉장한 차이점이 있었다.
우선 부러웠던 점은 밤늦게까지 놀고도 그들은 막차 걱정 없이 자취방에서 놀았다는 점이다. 막차에 막혀 더 못 놀아서 인지, 서울 친구들과 지방 친구들의 파가 나뉘는 느낌도 있었다. 아마도 내가 집에 가고 밤새 그들끼리의 끈끈한 우정을 나눴을지도 모른다.
지방 친구들이 부러워서인지 대학생활 중 두 학기는 경험 삼아 자취를 해봤지만, 나머지는 본가에서 1시간 걸려 등하교를 했다. 내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여전히 서울에 남아있어서 만나기 편했고,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나와 같은 학교로 온 친구가 8명가량 있었다. 서울에 있는 다른 학교들까지 생각하면 우린 크게 떨어지지 않고 대학에서도 함께한 것이다.
반면 지방 친구들의 경우 특목고가 아닌 이상에는 그 고등학교 혹은 그 동네에서 자기 혼자 상경한 경우도 꽤 많았다. 서울이란 곳은 그들에게 외딴섬과 같았을 수도 있다. 대학교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만날 사람이 많던 나와는 다르게 지방 친구들은 학교에서 하는 활동에 집중하고,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길게 가졌다.
서로의 학창 시절에 대해 지방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놀라는 것이 많았다. 우선 자신이 “전교 몇 등”을 했다는 얘기를 꺼낸 것이다. 나는 전교… 가 아니라 반에서 중위권 정도였는데, 종종 전교 1등을 해봤다는 얘기를 하는 친구를 보곤 신기했다. 그래서인지 우린 비슷한 성적으로 대학이라는 한 바구니에 담겨졌지만,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의 측면에서는 지방 친구들이 월등히 높은 점수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지방 친구들과 달리 눈 높은 서울 친구들 중에는 반수를 생각하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반대로 지방 친구들은 대학으로 서울에 남아있는 친구가 많다는 점, 명문대 입학생 수가 많다는 점에서 내게 놀랐다. 그리고 전국 고등학교들을 살펴본다면, 강남 8 학군 고등학생들은 이런 특별한 예외를 더 크게 누리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현실을 8 학군 친구들이 피부로 느끼려면 대학까지 와봐야 한다. 고등학교 내에서 석차가 좋지 않지만, 전국에서는 석차가 높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숫자로 보고 생각하는 것과 대학에 와서 다른 친구들의 사정을 듣고 느끼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지방친구들이 어떤 학창 시절을 보내며 서울까지 오는지, 그들의 공부 환경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무슨 생각으로 공부해서 대학에 오는지… 이런 것들은 숫자에 나와있지 않다.
반면 8 학군 학생들이 이런 실체를 알기 전까지는 그들은 그들끼리의 경쟁에서 심리적으로 많은 타격을 받는다. 가령 전국에서 충분히 상위권인 학생도 학교 내의 석차에서 밀리면 자존감이 떨어질 것이다.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낳는 구조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사회에 나오는 것이다. 나 역시 이 대학에 그냥 다녀도 되겠다는 마음을 먹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보낸 후에야 적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경쟁심과 낮은 자존감을 공유해서일까, 내 대학시절엔 8 학군 친구들끼리 모여 다니는 모습이 많이 있었다. 군대를 가기 전 나와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은 양재고, 상문고, 휘문고, 개포고를 다니던 친구들이었다. 나처럼 재수를 한 친구도 더러 있었다.
우리가 떼로 몰려다녔던 이유를 가끔 생각해 본다. 같은 지역에서 자란 동질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것은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앞에서 내게 밥을 사라거나, 강남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던 친구를 소개했다. 우리는 그런 친구들이 있으면 편하게 말을 못 한다. 혹여나 그 이야기가 증폭될 수도 있고, 우리가 자란 지역에 대한 이미지를 한 사람에게 강하게 남겨주는 것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 8 학군 친구들이 모두 재벌가는 아니지만, 우리가 편하게 하는 얘기가 누군가에겐 불편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음엔 다들 동의했던 것 같다.
내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건대, 8 학군 친구들이 조심하게 되는 말들에는 아래의 것들 중 하나 이상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 최근 갖게 된 고가의 물건.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공유하는 것
- 서로의 거주지와 거기서 느끼는 장단점들에 대한 대화
- 집안의 재산의 현황과 그 이동 및 분할 과정에 대한 고민(친해지면..)
- 부모님, 형제자매, 친척들의 학력 수준과 집안의 기대, 그리고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
- 부모님께서 직장에서 경험한 것과 내가 그것을 듣고 느낀 점
- 해외에 나가거나 특별한 인턴 제안에 대한 고민
이렇게 우리끼리만 할 수 있는 얘기가 늘어날수록 마치 비밀 이야기 하듯 우리들만의 모임을 이어가게 됐다. 그러면서 내게도 일종의 차별과 “우월의식”이 싹텄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강남에서 열등감 속에 자라 놓고, 대학에 와서는 우쭐대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대학생이 되고야 우리 집이 그리 못살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안 것이다. 내가 강남 친구들의 모임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특별하다” 는 감정에서 “그래서 나도 특별하다”는 감정으로 감정이 전이된 것 같았다. 이런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떤 순간부터 나는 이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들 중 일부를 아직도 만나지만, 나머지는 덜 보게 됐다. 이 친구들은 졸업할 때까지 강남의 무리에 속해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했고, 그 선택도 나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강남 사람끼리 대학에서 몰려다니는 다른 모임은 바로 “동문회”가 있다. 사실 모든 학교가 이런 모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의 주요 대학이면서 강남의 주요 고등학교 학생들은 입학을 하면 동문회 회장님의 연락을 한 번씩은 받았을 것이다.
물론 중동고 동문회는 이중에서도 굉장히 끈끈한 것으로 유명하고, 명맥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 무서웠던 형들이 온화한 선배로 변해서 온정을 주는 특별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동문회 활동을 열심히 했고, 얻은 것도 많지만, 끼리끼리 문화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다른 학교에서 온 친구들도 강남의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하는데, 심지어 같은 학교라니! 동질감을 형성하기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동문회는 더 나아가 다른 강남 여고와의 동문회를 하기도 했다. 은광, 진선, 숙명여고 동문회와 같이 미팅을 하기도 했으니, 여러 가지 핑계로 같은 지역 사람끼리 모이려는 것 같다.
통제할 수 없는 만남에 대한 준비
사실 같은 사람끼리 모이려는 건 앞서 설명한 지역 향우회라고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서울 혹은 강남 친구들에게 있어서는 지방 친구들과는 달리 학교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강남친구들이 뭉치면 결국 학교에서의 생활을 소홀히 한다. 그냥 동네에 일찍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편해서, 나는 학교 말고 다른 옵션이 있으니, 이게 이득인 것 같아서 등등 이들은 학교 행사에서 점점 사라질 수 있다.
강남 무리에서 나와본 나로서는(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난) 이런 모습을 볼 때 아쉬움이 있다. 우선 다양한 지역에서 온 친구들에게 배울 점도 상당히 많다. 사실 능력이 더 뛰어난 경우도 많고, 학원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이 뛰어난 친구도 많다. 강남 친구들이 편하게 누렸던 것이 지방 친구들에게는 결핍이었을 수도 있으니, 내가 얼마나 호사를 누렸나 깨닫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내가 이들과 지내면서 좋았던 점은 내게 “서울 구경”을 시켜줬다는 것이다. 서울사람이지만 남산도 한 번도 안 가본 내게 이런저런 제안을 해줘서 대학생이 돼서야 서울에 대해 알게 됐다. 또, 일찍부터 독립해서 사는 친구들을 보며, 그 생활력을 간접체험 할 수 있었다. 지방친구들은 가족과 떨어져 살다 보니 시간관리에 있어서 자율성이 더 높은데, 그것을 잘 통제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특히, 동아리, 소모임, 학회 등을 하면서 학교에 스며들었고, 내가 만약 강남 친구들끼리만 어울려 다녔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강남 친구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는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차별적인 발언인지… 사실 나와 다른 사람과 지내는 것 자체는 대상이 누구이건 큰 도전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의미가 있다. 내가 20년 동안 살아오며 완고히 가졌던 생각이 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깨지기도 한다. 때론 내가 친구에게 베푼 호의가 그 친구에게 상처가 되는 경험을 한다. 이런 실수와 반복되는 만남의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로는 대학생 시기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안고 사회에 나아갈 것이다. 사회의 만남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내 팀장, 내 동기를 통제해서 만날 순 없다. 이는 전문직도 예외는 아니다. 어찌 보면 일하는 것보다 어려운 “사람과의 관계”를 쌓는 기회를 일부 강남 친구들(뭉쳐 다니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