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동네학교가 아닌데?

by 정돈서재


1. 중동고 배정


어느덧 시간이 흘러 중3이 끝나갈 때 즈음... 고등학교 배치를 받는 시기가 다가왔다. 지극히 수동적이었던 나는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설마 못 갈 만큼 먼 곳에 가겠어? 배정받는 데로 가자.” 하는 생각이었다. 반면, 친구들은 굉장한 호기심을 갖고 고등학교 배정을 기다렸다. 중동고는 선배들이 무서워서 거부감이 든다면서도 또 다른 장점을 들며 원하기도 했다. 단대부고는 그 당시에 돈대부고라고 불릴 만큼 각종 “비리”에 관한 소문이 많았다. 실제로 선생님으로부터 촌지를 요구받는 친구들도 있었다. 중산고 배정을 받으면 HOT의 문희준 후배가 된다는 얘기를 장난처럼 했다.(그 당시 중산고 최대 아웃풋이 HOT의 문희준이라며 놀리곤 했다.) 지금도 이미지가 좋지만 휘문고는 ”교복 자율화“와 (사실상 서로 터치하지 않는) 원만한 선후배 관계로 친구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암울하게도 중대부고와 개포고처럼 남녀공학을 가는 일은 우리에게 확률이 높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남녀공학에 대해 좋게 말하기보다는 거기 가면 고등학생 때 임신해 아빠가 될 수 있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진선여고, 은광여고 같은 곳은 축제로만 가봤을 뿐 내가 아는 건 거의 없다.)


반에서 공부 잘하던 친구 몇몇은 외고, 과고와 같은 특목고에 들어가기도 했다. 내가 그런 친구들과 친하지 않았던 것도 있겠지만, 그냥 그만한 실력이 되지 않아 생각도 못해본 것 같다. 공부를 잘하던 수인이가 외고에 갔고, 내가 벽을 느꼈던 지훈이는 민사고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친구들이 진학했으니 특목고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간다는 인식이 내게 생겼다. 조금 아이러니했던 건, 전교 1등 및 다수의 상위권 친구들이 특목고 진학을 선택하지 않고 강남의 일반고를 선택했다. 내가 그 정도의 위치에 올라보지 못했기에 그 셈법은 알 수 없지만, 똑똑하니 뭔가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와 어울려 지내던 아파트 친구들은 모두 일반고에 진학했다. 지금도 가장 가깝게 지내는 두 친구는 단대부고, 그리고 나머지 셋은 중동고에 진학했다. 그때는 또 중동인가? 하는 생각에 좀 식상해했다. 졸업을 한 뒤에는 종종 선배들로부터 “너는 성골이냐?” 하는 질문을 받곤 한다.(신라시대 골품제도에서 유례) 중동중-중동고를 연달아 나온 사람을 동문회에서는 성골로 불렀고, 성골 출신이 점점 줄어들어서인지 “성골”이라고 하면 무척 좋아해 주시는 선배들이 있었다. 중동고등학교가 지금은 자사고가 되고, 수능 응원을 잘하는 것으로 이미지가 더 좋아진 것 같다. 내가 입학하던 2000년대 초에는 엄격한 선후배 문화로 소문이 자자했다. 직접 경험한 일화는 내 군대 얘기보다 더 많이 풀어낼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고, 자칫 학교 이미지를 망칠 수 있으니 순화해서 적어본다.


입학한 우리는 어디서 배웠는지 아래와 같은 원칙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들이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 선배를 보면 전혀 몰라도 무조건 인사한다. 그 당시 명찰 혹은 배지를 보면 학년구분이 가능해서 피해 갈 수가 없었다.(85년생까진 명찰의 색으로 구분)

- 대중교통에서는 3학년을 제외하고는 앉을 수 없다. 중동의 교복을 입고 1, 2학년이 버스와 지하철에 앉아있는걸 나는 졸업할 때까지 본 적이 없다.

- 장갑, 목도리, 구두, 셔츠 빼서 입기, 주머니에 손 넣기 같은 행동은 할 수 없다. 즉, 추워도 장갑을 낄 수 없고, 장갑이 없다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도 없는 게... 1, 2학년의 현실이었다.

- 그 밖에도 선도부는 어디서든 얼차려를 줄 수 있고, 반에 들어와 소지품 검사 및 두발 검사등을 했으니... 선도부에 지원하려고 하는 동기들도 종종 있었다.

- 상당수의 선생님들도 중동고 선배이기에 이 규율이 더욱 잘 지켜졌다...


그 밖에도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건 각자의 추억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유퀴즈에 출연한 중동고 응원부

지금은 정돈된 모습에 수능응원이 이뤄지고, 응원팀이 유퀴즈에까지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 응원을 어떻게 하면 안 할 수 있을까 궁리하며 응원가를 외웠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다.



2. 넓어지는 만남

- 강남 출신이 아닌 강남 고등학교 출신 친구들-


끼워 맞추자면 이런 엄격함으로 인해, 넓은 지역,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온 친구들이 서로 융합할 수 있었다는 추측을 해본다. 가장 많은 인구는 아무래도 개포/일원동의 친구들이었고, 그와 비슷하게 대치/도곡동의 친구들이 중동고로 유입됐다. 그 당시 대치/도곡 친구들 중 일부는 자신이 중동고에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대치동에 있는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고민했기에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그에 반해 송파에서 오는 친구들은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 기억엔 송파에서 오는 셔틀버스까지 있어서 그 친구들을 태우고 등교하기도 했었다. 송파 친구들 중에는 반갑게도 내가 전학오기 전 중학교 친구들도 조금 포함돼 있었다. 내게 선포했던 것처럼 상당수의 친구는 “위장전입”에 잘 성공한 것 같았다. 기억나는 친구들 몇몇을 만나고 보니 우리의 기억은 그때보다 희미해져 있었고, 성향이 많이 달라져 예전처럼 어울리진 못했다. 우리 때의 가장 큰 특징은 분당친구들이 장시간 이동해서 강남으로 전학 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 당시 분당을 주름잡던 “서현고”가 "평준화“ 된 것이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들이 모두 비평준화 서현고 입학생이었을진 모르겠지만, 분당 친구들은 강남 8 학군 거의 모든 학교에서 찾아볼 수 있었고 대치동 학원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개포/일원/대치/도곡/수서/잠실/송파/분당 친구들이 섞이는 것만으로도 우린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놓였고, 그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위 지역으로 유입되기 위해 중학교 때 전국 각지에서 전학을 오는 친구들까지 생각해 보면, 우린 중학교 때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이런 일들은 그 당시 휘문고에도 꽤 많이 일어났다. 휘문고로 이동이 편리한 잠실, 송파 친구들이 상당수 배정받았다고 들었다. 어찌 보면 다른 강남 8 학군 학교들도 학교 주변에 거주하는 학생들만으로 학생들을 꾸리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가 엄격히 말하고자 한다면, “강남 고등학교 출신”이지 모두 “강남 출신”은 아닌 것이다. 동창들과 얘기하면 출신 지역별로 특징이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따진다면 그냥 부유했던 대치/도곡 친구들, 겉으로 부유해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타 지역 친구들로 나눌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각자 처했던 가정사를 다 알지도 못하고, 출신 지역으로 몰아서 사람을 가릴만한 위인도 되지 못했다. 반면 나는 친구를 갈라서 안 만나기보다는 좋은 친구가 있다면 더 친해지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3. 이제는 불가능한 맹모삼천지교

강남 8 학군의 고등학교는 그 당시 굉장히 방대한 “Melting pot”(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한데 섞여 하나의 동질적인 문화로 융합되는 현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돌진했고, 그 중심엔 어머니들이 있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그만큼 학부모회의 정보력과 비교의식은 남달랐다.) 어머니들은 강남에 오고 더욱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것 같고, 그들끼리의 정보는 비밀로 남을 때가 많았다. 이점이 아마도 대치동으로 사람들을 더욱 끌어들인 것 아닌가.. 혼자 생각해 본다. 이분들이 조금이라도 보탠 강남 프리미엄(?)이 후대로 하여금 진입장벽을 더 높여놓았고, 이제는 맹모삼천지교의 자세만으로는 전세로 들어오는 것도 힘들어졌으니 상황이 많이 변했다.



그렇다면 이 맹모들의 노력이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이 내용은 다음화에서 살펴보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