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는 정말 부자가 많을까?
“돈”에 있어서 나는 누구보다 쫄보였고, 지금도 그 습관은 여전하다. 내가 강남에 살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굉장히 모순적인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 집이 절약해서 강남에 살게 됐다고 생각하니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가풍(?)으로 여겨질 만큼 “절약”은 삶의 기본적인 컨셉이 됐고, 씀씀이를 보면 남들이 우리 집보다 잘 산다고 여기는 게 내 기본적인 사고로 잡혀있는 것 같다. 다행히도 송파에서부터 지녔던 이런 생각이 어쩌면 강남에서의 적응에 도움이 된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오늘은 강남으로 전학 오며 느끼는 “빈부”의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려고 한다.
이 주제를 두고 고민이 많아서 연재를 한 주 쉬게 됐다.
내가 강남들의 “부”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또, 그 “다양성과 격차”가 큰데 일관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었다.
(사람들의 재산 현황 면면을 다 알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늘의 글이
- 부모들의 강남 투자에 대한 이야기일까?
- 아이가 기죽을까 봐 걱정하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일까?
- 아니면 이곳 사람들이 돈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자랑하려고 쓰는 글일까?(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나는 고민 끝에 “한없이 쫄보”였던 내 학창 시절로 돌아가보기로 했다.
전체에 대한 객관적인 통계가 아니라 내가 경험했던 친구들을 통해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나와 같이 “쫄보”인 후배들에게 오늘 이 글을 전하고 싶다.
이미 후배들이 강남 8 학군에 들어왔다면 느낄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사는지 굳이 물어보지도 않고, 그걸로 배척하려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만약 시간이 흘러 동창들과 함께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나올 때까지 친구라면 꼭 과거 얘기를 나눠보라. 뒤돌아서 생각하면 우리 모두 “쫄보”였을 가능성이 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지역에서는 어느 집 하나가 다른 집보다 절대적으로 대단하다고 말하기가 좀 어렵다. A친구의 아버지가 교수님이라고 해서 그 학교에 교수님 자녀가 한 명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수가 많아서 교수 자녀의 네트워킹을 하고 다닐 수 있다. 고등학교 때는 이과반에서 의사 부모님을 둔 친구들을 너무나 많이 만나게 됐다. 어떤 곳에선 의사라는 직업이 그 지역의 높은 경제력을 대표할 수 있겠지만 이곳 자녀들은 많은 의사들을 보며 의사 세계에도 다양한 계층이 존재함을 보며 자란다. 물론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기에 자녀도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다양한 불편함을 초례한다는 것을 인식며 자란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는 남들과 구분되는 일이지만, 후배들은 그 영향력을 대학을 가서나 알 수 있다. 물론 주변에서 종종 잘 산다고 특별 대우를 해줄 때도 있겠지만, 대학을 가서야 이 강남이라는 작은 우물을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가서야 깨닫는다. “쫄보”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쫄보들로 모인 나의 중학교 친구들은 주로 같은 아파트나 근처 아파트에 살았다. 지금처럼 아이들도 집 가격을 알고, 매매와 전세를 구분하던 시대가 아니기에 그냥 한 동네에 살면 별다른 구분이 이뤄지진 않았다. 물론 눈에 띄게 잘난 집 자식들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차이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니깐… 하지만 서로 고만고만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돌아보면 우리 쫄보들은 삶의 질의 측면에서 그 평균이 대한민국 평균을 웃돌았고, 평균의 인구도 두터웠다. 그리고 이런 상향 평준 집단이라 그런지 상대적으로 마음이 “꼬인”사람이 덜 보였던 것 같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이유로 8 학군 출신 친구들은 대학교나 사회에 나가서도 이들끼리 어울리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암울한 현재]
지금까지 묘사한 “라떼”의 이야기와 달리 “부”에 대한 후배들의 인식은 암울하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격차가 작다고 느꼈던 친구들의 사생활을 SNS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몇몇은 조용히 가족과 다녀온 해외여행 사진을 요란하게 올린다. 집안에 모셔놓은 명품가구와 의류들도 SNS에 경쟁적으로 올라온다. 가족과 다녀온 비싼 음식점, 새로 산 아빠의 차, 나만 경험한 특별한 교육과 체험들을 모두에게 알린다. 예전엔 자랑거리를 선별하고, 일상을 공유했다면… 지금은 자랑거리를 공유하고, 소수에게만 사생활을 공유한다.
이제는 청소년들이 어른의 소비형태를 따라간다. 고급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인인 내가 가는 음식점에서도 청소년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명품 브랜드와 음식점들도 결국 이들이 소비층이라는 것을 알고 판촉행사를 한다. 내가 처음 스타벅스를 갔던 게 대학교 1, 2 학년 때였는데, 그땐 내게 너무 비싼 음료였고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컵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다시 말하면, 고등학교 때 그만큼 소비할 곳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SNS를 통한 비교와 고가 브랜드들의 타겟층 변화는 강남 8 학군을 비롯한 전국 청소년들의 소비패턴과 “부”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고 있다.
-실거래가 공개의 가혹함-
비교의식이 강한 민족에게 “실거래가 공개”는 너무 가혹하다. 돈만 낸다면 아파트 전체 등기를 뗄 수 있다. 그 집이 너희 집인지, 너희가 얹혀사는 집인지도 안다는 뜻이다. 실거래가 공개의 좋은 의도도 있겠지만, 부동산을 통해 한국사회를 완전히 계층화시켰다. 다른 나라도 모두 그런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한국만큼 온라인을 통해 최신 실거래가를 검색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일본, 프랑스, 미국, 독일과 같은 나라들은 법적으로 실거래가를 공개하지 않도록 돼있다. 프라이버시 아닌가?! 내가 남의 집 가격을 모른다면 그냥 온전히 그 집으로 이한 내 삶의 질을 따져볼 것 같다. 직장과의 거리가 가까운지, 아파트의 질이 좋은지, 그 동네 환경을 내가 좋아하는지 등등 말이다. 내가 걷다가 보면 이런 얘기가 들린다.
“얘들아 A네 집에 가자. 거기가 신축이라 아주 좋아.”
“B집은 OO가 없어서 별로더라.”
어떤 집은 “아빠 나도 A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돈이 있으면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에 동의한다. 그래서 어쩌면 하기 싫은 공부보다 “돈을 벌 수단”만 있다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개념은 우리 시대에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고, 좋은 인성을 갖춘 것보다… 집에 돈이 많다면, 비싼 아파트에 산다면, 부모님의 연봉이 높다면과 같은 의식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이는 우리 시대에 공유했던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서 “우리 부유한 사람끼리만 알고 지내면 좋다”는 인식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무리에서는 “쫄보”이겠지만, 사회에 나가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건 멋져 보이지 않다.
글을 마치며..
타 지역에서 공부를 잘해도 여기에 오면 전교권 정도가 아니라 반에서도 상위권 안에 들기 힘들 수도 있다. 다른 동네에서 부유한 축에 속해도 여기에 오면 그냥 평범해질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오면 끊임없이 느낄 일이다. 만약 누군가가 계속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면…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근거없는 자신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 교수님은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되면서 한 집단에서는 뛰어날 수 있지만 상위 집단에서는 ‘내가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하는데 이것은 내가 상위 집단에 속한다는 증명이기도 하고, 보다 겸손해질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반면, 많은 부모들은 강남 8 학군에서 아이들이 치이고, 기죽어 살 것을 걱정한다. 그럼 계속 지금 있는 곳에 있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부”의 측면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동네로 이동하면 기를 펴고 살아서 좋은 것일까?
누가 얼만큼의 재산을 가진 지는 실제로 까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수많은 소문, 겉으로 드러나는 명품과 차, 말로 묘사했던 “부”는 그 실체가 연기와 같다. 심지어 본인도 본인의 재산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할 때가 많다. 매일매일 드나드는 돈의 흐름, 계좌별로 관리하는 다양한 자산군, 묶여서 쓸 수 없는 돈 등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쫄지 말라. 후배들이여 허상으로 겁먹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에 집중해서 잘 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