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은 학원의 성지다. 학원 등하원 시간엔 운전 기사들이 사장님을 모시듯 부모들은 자녀를 학원에 내려주고 어디론가 떠난다. 자신의 몸뚱이 보다 큰 가방을 맨 어린 친구들. 버스, 지하철, 그리고 길거리에서 단어를 외우느라 길을 못보고 걷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밤 11시는 한창 머리를 굴려야할 시간이다. 이런 아이들에 대한 우려는 방송으로 많이 비춰졌고, 대치동에 대한 이미지를 매우 혹독하게 바꿔놓은 것 같다. 요즘은 대치동 근처에 정신과 병원이나 각종 상담센터가 즐비한 것을 보면 그 말이 어느정도 맞아보인다.
‘강남 8학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복잡해 보인다. 아이를 망치는 곳이라는 생각과 달리 부모들은 계속해서 이 학원가로 아이들을 보낸다. 그들이 너무 가혹한 부모일까? 아니면 언론에서 강조하는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이 너무 어두운 면만을 강조한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그 영상들은 대치동에 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대치동으로 학원을 출퇴근 하는 아이들의 고충을 더 남은 것은 아닐까?(정작 대치동 거주 학생들은 도보로 등하원을 하니 기나긴 교통 지옥을 맞이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곳에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몰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공부를 잘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대치동으로 이사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아이가 타지역에서 공부를 잘하지만 ‘더 이상의’ 경쟁상대를 찾지 못한다면, 대치동은 아주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이곳 학원을 다닌다면 거의 전국구의 경쟁 상대를 만나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하지만 ‘공부를 잘+열심히 시킬 것이냐’의 관점으로만 이곳을 바라본다면, 나는 그분이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 그리고 사회에 나왔을 때 알게 된 것은 이곳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특이한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난 어떤지 모르지만…)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유’하는 행위가 오직 강남 사람만의 행위는 아니다. 대학때 봤던 ‘전라도 향우회’, ‘제주도 향우회’와 같은 곳은 서울에서 지낼 숙소까지 제공했으니 끈끈함으로는 우리보다 진한 것 처럼 보인다. 이들 지역 사람들의 말투가 비슷하고, 특정 지명을 말하면 서로 박수를 치는 것 처럼… 우리에게도 서로 동의하는 ‘분위기’가 있음을 설명하고 싶다. 참고로 난 이 분위기에서 배운점이 많고, 그 분위기를 사랑하며, 이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위를 막론하고 친근감을 느낀다.
송파에서 전학온 나는 새로 시작할 학기 준비로 한창이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은 송파에서 많이 터득했기에 이와 관련해서 마음의 준비는 많이 해뒀다.
명품을 자랑하는 친구가 있더라도 나의 검소한 태도로 일관할 것!
일진이나, 힘자랑을 위한 각종 싸움에 휘말리지 말 것!
연예인 얘기를 한다면, 내가 관심이 없어도 대답 할만한 한두명 즘은 외워갈 것!
공부에 치이고, 얄미운 경쟁이 있더라도 세상이 그런 것이라 여길 것!
특히 초반엔 쪽팔리지 않는 패션으로 승부를 볼 것! 이란 마음 가짐을 가지고 등교했다. 물론 처음부터 무리하게 바지를 줄이거나, 머리에 신경을 쓰고 가진 않았다. 학교에 들어섰는데, 학급의 창문이 높았고, 복도에서는 그 안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며 느끼는 남중의 어두운 느낌과 주체할 수 없는 남성 호르몬만은 몸으로 느껴졌다. 눈치밥 하나는 상위권이기에 누가 범생이고, 누가 공부에 관심이 없는지… 그리고 노는 아이로 보이고 싶은지, 운동에만 관심이 있는지 등등 느껴졌다. 처음엔 농구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친해졌다. “오, 얘 농구 잘하는데?” 내가 공부는 못해도 농구는 좀 했다. 인정받으려고 농구를 한건 아니지만, 뭔가를 잘한다는건 친구들과 친해지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이런 건전한 친구들만 있던건 아니다. 내 큰 키와 의도치 않게 얻은 강렬한 외모는 아이들에게 오해를 사기도 했다. “너 송파에서 왔다며?”, “송파애들은 싸움 잘하냐?” 심지어는 “내가 송파 친구에게 들었는데, 너 싸움 좀 한다며?” 하고 다가오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힘이 쎈 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누굴 치는 사람은 아니였는데… 아마도 내 덩치와 강한 인상 때문에 오해를 샀던 것같다. 반에서 한두명 정도에게만 그런 얘길 들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범생이 이미지를 쌓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무시하고 그냥 넘어갔다.
범생이처럼 되는 길도 쉬운 건 아녔다. 옷차림에서 부터 나는 따라갈 수 없는 친구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정말 찐따같이 입고다니는 친구들이 많아서 내 평범한 교복은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원래의 그 펄럭이는 바지통을 안줄이고 등교하는 친구들이 다수였다. 아니면 정석적으로 교복을 입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아서 정말 놀랐다. 머리를 감지 않는다든지, 좀 더럽게 다니는 친구들은 마치 책보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남녀공학이였다면 과연 그친구들이 멋을 안부렸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찐따력을 지녔던 친구들은 ‘남중’이였기에 자신의 자유로운 모습을 펼쳤을 것이다.
이런 친구들만 있던 건 아니다. 역시나 머리에 뭔가를 바르고, 일부러 수업시간에 자는 친구도 조금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은 내가 송파에서 자주 봤던 그 멋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학생 대다수(35명이라고 하면 32명정도)는 그런 모습이 ‘한심하다’고 여기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이 그친구를 뭔가 정상 도로에서 ‘탈선’한 친구로 바라봤다. 예를들면, 중3때는 동률이라는 소위 일진, 아니 학교 일짱인 친구가 같은 반이였다. 하지만 이친구를 누가 일짱으로 만들어줬는지 무색하게 너무나 무해하고, 착했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놀리기도 했으니, 그게 일짱인지 그냥 명예 일짱직을 수여받은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물론 몇몇 일진 친구가 자신이 경험한 신세계에 대해 떠들때는 신기해서 듣긴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동경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뭔가 바른 것을 추구하는 아이들에게 속한 기분이였다. 내가 지난 몇년동안 느껴보지 못한 기분에 편안했고, 이곳이 추구하는 방향은 굉장히 정돈돼있었다.
즉,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아니면 도서관에서 책에 대해 토론 하는 것,
운동을 열심히해서 육체를 단련 하는 것,
자신만이 좋아하는 취미에 빠져드는 것,
좋은 것이 있으면 친구에게 배우는 것,
가족의 옳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모두는 아닌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