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알아가는 시간
너희를 사랑하는 일만 하고 싶다, 라고 생각한다.
나는 중학교 1학년 국어, 중학교 2학년 국어, 중학교 1학년 진로, 중학교 2학년 동아리 수업에 들어간다. 행정적으로는 진로와 상담 업무를 맡고 있고 국어 교사라는 이유로 도서관 업무도 맡고 있다. 각종 대회와 학교 홍보 업무도 있다. 이처럼 바쁜 일정 속에서 담임반 아이들을 담임교사로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조례, 종례, 청소시간뿐이다. 그마저도 조례 시간엔 매일 안전교육 영상을 봐야 한다.
아이들에겐 점심시간과 방과후에 개인상담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는데 점심시간은 모든 교사가 수업이 없으므로 종종 회의가 열리고, 방과후엔 전문적 학습공동체나 교직원 회의, 연수가 빼곡하게 잡혀서 일주일에 한두 명 수준으로 속도가 더디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4번이나 든 국어 시간을 활용하여 은근슬쩍 상담을 한다. 너희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1. 가장 많이 쓰이는 <뇌구조 그리기>
교생실습할 때도 상담하며 썼던 <뇌구조 그리기>를 국어시간 첫날에 진행했다.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 해봤다고 아우성이지만 막상 시간을 주면 썼다 지웠다 하며 꽤나 진지해진다. 아이들의 전반적인 관심사나 취미, 걱정거리를 알 수 있다.
나는 특히 학부모 총회 때 유용하게 사용했다. 책상 위에 보호자님의 명패, 담임교사의 편지와 함께 <뇌구조 그리기> 활동지를 올려두었는데 나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읽으셨다. 한 보호자님께서 "켄마가 뭐죠? 우리 아이 뇌 속의 가장 큰 칸에 적혀있는데 저는 생전 처음 들어봐요." 씁쓸하게 웃으며 말씀 하셨다.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역시 '친구'. 친구 관계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2. 한 달을 마무리하며 <쪽지 상담>
학급 내 갈등 상황이 생겨서 10분쯤 할애하여 쪽지 상담을 실시했다. 갈등 상황 질문(ex. 상처받은 적이 있는지, 상처 준 적이 있는지)에 자연스럽게 답할 수 있도록 자기 성찰이나 목격 진술의 다양한 질문들을 넣었다.
종례 시간에 쪽지 상담 결과를 언급했다.
"'상처받은 적이 있다'라고 쓴 사람과 '상처 준 적이 있다'라고 쓴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요?
맞아요. '상처받은 적이 있다'라고 쓴 사람은 거의 전부였는데, '상처 준 적이 있다'라고 쓴 친구는 딱 세 명밖에 없었어요. 누군지 밝히지 않겠지만 선생님은 '상처 준 적이 있다'라고 쓴 친구들을 굉장히 칭찬해주고 싶어요.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상대에게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은 중요한 능력이에요.
자,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요? '상처받은 적이 있다'라고 쓴 친구들이 이렇게 많은데 '상처 준 적이 있다'라고 쓴 친구가 세 명밖에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네, 나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가벼운 행동이 상대에겐 기억에 꾹꾹 새겨진 힘들고 아픈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요. 앞으로 자신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가 어떤 느낌을 가질지, 어떤 기억을 가지게 될지 조금 더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칭찬이 적힌 친구는 전체 칭찬을 했고, 불만이 적힌 친구는 틈틈이 개인적으로 불러서 이야기했다. (근데 또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는 학생'에 자기 이름을 적는 아이를 보면 미워할 수 없게 귀엽고 그렇다.)
3. 친구가 친구에게 묻는 <내가 우리 반 친구 ㅇㅇ에게 궁금한 것!>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질문들은 '어른의 시선'이라는 한계가 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 시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국어 <요약하기>단원에 들어가며 <내가 우리 반 친구 ㅇㅇ에게 궁금한 것!> 활동지를 만들었다. 제일 위에 있는 괄호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옆으로 한 칸씩 돌리며 해당 친구에게 궁금한 점을 1~2개씩 적는다.(이때 나도 함께 참여했다.)
한 바퀴 돌아 자신의 종이를 받으면 답변을 쓴다.
"자, '나를 소개하기'를 목적으로 이 질문지를 요약하려고 해요. 그러면 여기 있는 20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줄줄 말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중요한 정보만 선택해서 말하는 게 좋을까요?"
아이들이 "중요한 정보요!"라고 답하면 "자신을 소개하기에 적합한 중요한 정보를 5가지 골라봅시다." 활동을 하고 발표한다.
발표가 끝나면 '소개하는 글'은 설명하는 글에 속하고, 설명하는 글을 요약할 때는 목적에 맞는 중요한 정보를 중심으로 요약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짚는다. 수업이 끝난 후 활동지를 걷어서 내용을 확인하면 새로운 단원의 디딤돌 활동도 되면서 사심(?!)도 채울 수 있다.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연애 상황과(!) 좋아하는 연예인, 게임, 취미, 패션, 친구 관계 등등을 알 수 있었다. 덧붙여 선생님께 궁금한 점에 '무슨 게임하세요?', '어느 중학교 다니셨어요?' 등등의 질문을 보며 귀여워서 웃었다.
아이들은 대화하는 활동을 할 때 가장 살아난다.
너희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멀지만
그 여정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