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용기를 담아, 수고했어 오늘도.
두 번째 담임을 맡은 해, 매주 금요일마다 담임 반 학생들에게 금요일의 편지를 썼다. 목요일 밤이면 마감을 앞둔 작가처럼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 서른 장을 인쇄하여 따뜻한 종이를 끌어안고 교실로 가는 길엔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이었다.
더 이상 산타클로스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직접 산타클로스가 된다.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나는 아이들을 통해 알아간다.
영 번째. 사랑과 용기를 담아.
●○ 너에게 부치는 편지
안녕!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어.
작년에 함께한 너와는 더 깊이 친해질 기회가, 올해 처음 만나는 너와는 새로운 인연을 맺는 한 해가 될 거라 생각하니 심장이 쿵쿵대.
나는 너에게 금요일마다 편지를 쓰기로 다짐했어. 처음엔 ‘금요신문’을 만들려고 했었어. ‘안녕! 선생님은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 3반을 기다렸어요’로 시작하는 신문을 밤늦게 완성했지. 그런데 다시 읽으니 마음에 들지 않아서 힘들게 쓴 글을 다 지워버렸어. 자꾸만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게 거슬렸기 때문이야. 나는 ‘선생님’과 ‘학생’이 아니라 ‘나’와 ‘너’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나의 엄마는 ‘엄마가~’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어. 그런 엄마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적이 있는데, 자꾸만 주어를 ‘I’라고 하지 않고 ‘Mother’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Do you like apples?”라고 물으면 “Yes, Mother like apples.”라고 답하는 식이야. 아마 나를 앞에 두고 머릿속에서 ‘응, 엄마는 사과 좋아해.’라는 문장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게 싫었어. ‘엄마’가 아니라 ‘나’가 주어라고, ‘나’가 자신의 행동을 하는 주체라고 여러 번 말해야만 했어. 그런데 어느덧 학교에 있으며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더라. 나는 이 낯선 습관이 익숙해질까 두려워. 엄마가 자꾸 ‘엄마가~’라고 말할 때마다 답답했는데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내가 그 답답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걱정돼. 말하자면 내가 내 이름보다 내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버릴까 걱정이 되는 거야.
나의 이름은 영화야. 내가 좋아하는 이동진 평론가의 블로그 제목이 ‘언제나 영화처럼’이라 기뻤던 기억이 있어.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도덕선생님을, 2학년 때는 가정선생님을 좋아했는데 3학년 때 최종적으로 국어선생님을 좋아했고 국어선생님이 되었어. (물론 중학생 땐 동방신기가 최고였어.) ‘오늘도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걸 좋아해.
너는 어떤 새해 계획을 세웠는지 궁금해. 너의 새해 계획을 응원해. 너도 나의 새로운 한 해를 응원해주길 바라.
자, 오늘도 반가웠어!
●○ 몸과 마음이 안전한 반
내가 바라는 우리 반은 몸과 마음이 안전한 장소야.
내가 생각하는 ‘안전’이란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야.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을 때 혼자여도 불안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대.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건 이 지구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몸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건 아프거나 괴롭힘을 당할 때야. 마음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건 우울하거나 따돌림을 당할 때겠지. 몸이든 마음이든 안전하지 못할 때 가장 힘이 되는 게 뭘까? 즉, 몸도 마음도 안전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뭘까? 돈? 1등 성적표?
아니, 아마도 옆에서 같이 울어주는 친구일 거야.
우리는 돈도 1등 성적표도 될 수 없지만 옆에서 같이 울어주는 친구는 될 수 있지. 그 사실이 나는 가끔 너무나 멋지게 느껴져.
우리 같이 울어주는 친구가 되자.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이 되자.
●○ 사랑과 용기를 담아
나는 지난주에 좋아하는 작가의 공연을 보러 가서 사인을 받았어. 작가님은 ‘사랑과 용기를 담아’라고 써주셨어.
그 문구를 보며 너의 이름을 떠올렸어. 나는 지금 사랑과 용기를 담아 너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
●○ 나의 소비
짠! 김땡땡 선생님의 적극 추천으로 사진 인화기를 샀어! 앞으로 너의 사진을 찍고 인화하여 게시판에 붙일 거야. 적극적으로 추억을 남기자, 우리!
●○ 전해야만 하는 말
① 9시에 조례를 시작합니다. 8시 50분까지 교실에 와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합시다.
② 9시 10분까지 오지 않으면 미인정지각입니다.
③ 몸이 아파 조퇴하는 경우: 보건 선생님의 의뢰를 받은 후 보호자님과 전화 통화를 합니다.
④ 아침에 몸이 아파 늦는 경우: 등교 시간인 9시 전에 보호자님이 연락 주셔야 질병지각으로 처리됩니다. 사전에 연락이 없는 경우 미인정지각입니다.
⑤ 체험학습 신청: 체험학습 1주일 전에 미리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해야 교장선생님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진짜로 전하고 싶은 말
나는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땐 앤이 한 말을 생각해.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 바로 빨강머리 앤이거든.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지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너에게 오늘의 반배정이 어떨지 모르겠어. 그래도 일단 분명한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거야.
그리고 나는 너와 한 반이 되어 기뻐.
첫 번째. 수고했어 오늘도.
●○ 너에게 부치는 편지
안녕! 너와 나의 3반이 아직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게 안 믿겨. 이토록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주위를 살피느라 긴장되었을 거야. 주말이 되면 한숨 돌리겠지?
너희들의 방탄소년단이나 워너원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신화가 떠올라. 초등학생 때 나는 여섯 명이서 몰려다녔고 우리는 신화를 좋아하며 한 명이 멤버 한 명을 담당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어.
그런데 사실, 나는 신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연예인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어. 친구들이 모두 좋아한다고 하니까 나 혼자 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거야.
내 친구가 고백하더라. “중고등학교 때는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웠어. 다른 사람들이 혼자인 나를 무시하거나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거라고 생각했거든. 단지 다수에 속하고 싶어서 정말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지, 취향이 비슷한지를 생각하지 않고 친구를 사귄 적도 많아. 그렇게 애태울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야.”
나는 “나도 그랬어.”라고 말했어.
스물한 살 때,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진급하는데 나만 휴학하고 혼자 6개월 동안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 아무도 나에게 핀잔주는 사람이 없었어. 혼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멋있다고 했지.
학창시절 친구 중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가장 궁금한 친구는 쉬는 시간마다 혼자 책을 읽던 친구야. 내가 나인 채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
나 또한 알면서도 혼자가 되는 게 혹은 혼자로 보이는 게 두려워서 내가 강한 것 보다 더 강한 척을 하기도 하고 내가 약한 것보다 더 약한 척을 하기도 해. 그래도 확실한 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거야. 점점 더 나다운 내 삶이 마음에 들어.
학교라는 이 작은 사회에서 강한 척 또는 약한 척을 하느라 너도 그리고 나도 한 주간 수고했어.
우리의 첫 주말이네. 자, 오늘도 무척 반가웠어!
●○ 우리 반 첫 자리 뽑기
어느 날 내가 말했어. “오늘 수업을 다섯 반이나 했는데, 우리 반에 들어오니까 피곤이 풀리고 너무 기분이 좋아.” 그러자 네가 물었어. “왜요?” 나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해서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어. “그냥.” 정말 그냥 좋은걸.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없지만 그 질문 덕택에 너의 특별한 모습을 떠올려. 그리고 혼자 웃어. 너와 나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해.
●○ 첫날 ‘열심히 청소한 사람’ 투표
나는 스무 살 무렵까지 다함께 짜장면을 시켜먹으면 치우기 쉬운 것만 골라 치우곤 했어. 어느 날 문득 한 친구가 먼저 나서서 남의 그릇의 짜장이 손에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리하는 걸 보았어. 그 하나의 장면만으로 그 친구가 멋진 사람이 틀림없다고 확신했어.
그 이후 나도 짜장 그릇을 먼저 치워. 손에 묻은 건 씻으면 되는 거니까. 나도 무엇보다 스스로 인정하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때는 함께 사용한 물건을 청소하는 모습을 볼 때라고 생각해. 혼자 묵묵히 청소하는 사람은 언젠가 발견되기 마련이고, 그것만으로도 신뢰를 듬뿍 얻게 되지. 다른 건 다 몰라도 함께 쓰는 교실을 열심히 청소하는 너라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친구는 무슨 일이든 맡길 수 있는 친구야.”라고 말할 거야.
ㅅㅂ이와 ㅁㅎ이는 첫날 만에 눈에 띈 것을 축하해. 첫날 20분짜리 한 번의 청소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친구들도 언젠가 반드시 누군가에게 발견될 거야.
우리 함께 서로가 발견되는 사람이, 그리고 서로를 발견하는 사람이 되자. 앞으로가 기대돼.
●○ 나의 소비
첫날 자기소개서에 가족 구성원을 묻는 질문이 있었어. 나는 ‘나의 가족을 소개해주세요.’라는 보편적인 질문 옆에 ‘반려동물도 가족이에요!’라는 문장을 더했어. 아무래도 최근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읽었기 때문인 것 같아. 번식장, 경매장, 보호소, 도살장을 취재하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거든.
이 책을 읽고 나는 ‘클로렌즈’란 브랜드의 티셔츠를 샀어. ‘사람과 동물의 건강한 공존을 꿈꾸며 그 시작으로 유기동물보호소 자립을 위해 노력합니다’라는 비전을 가진 곳이야. 숭실대 경제학부 학생이 창업한 사회적 기업(즉, 돈이 아닌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인데 수익금의 50%는 유기동물 보호소에 기부한대.
나는 유명한 브랜드들을 잘 몰라. 하지만 도전하는 작은 기업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을 찾아 소비하는 편이고 그런 내가 마음에 들어.
자기소개서의 가족 구성원에 강아지와 고양이를 적은 너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어. 나는 언젠가 지금보다 더 책임감이 생기는 날 유기묘와 가족이 되고 싶어. 내가 새로운 가족이 생긴 그날 너에게 자랑할 수 있을까?
일단 다음 주에 나의 이 새로운 티셔츠를 입고 올 테니 발견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