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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데이지 Jan 26. 2019

우리는 모두 싱글

조문 가는 길, 복잡한 마음 

잊고 지냈던 과외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미국에서 고등학생이었을 때, 양 선생님이 서른 중반이었으니까 이제 마흔쯤 되었을 터였다. 나는 꼭 조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일은 몰라도 안 좋은 일엔 꼭 참석해야지. 안 그러면 후회되더라고.” 엄마가 말하는 어른의 책임감 때문이 아니었다. 젊은 그녀의 죽음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더 탐구하고 싶은 아이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죽음의 소식과 함께 선생님의 삶에 대해 없던 관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죽음이, 언젠가 끝나는 삶의 일회성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닐까? 한 번 뿐이기에 소중하고, 아등바등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평소에 자주 안부를 물었으면 좋았을걸…. 나는 아쉬움과 함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선생님은 한국 여자 중에선 흔치 않은 싱글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슈나우저 한 마리와 함께 했다. 이름은 시져. 그래, 시져였다. 엄마는 지나가는 말로 비혼이라 얼마나 외롭겠냐며 혀를 찼다. 당시엔 나도 의문 섞인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가 대학생 때 입양한 강아지와 둘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유롭고 괜찮은 라이프스타일이었다. 게다가 강아지가 얼마나 좋은 파트너인데.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대학원서 접수를 마친 후, 항구도시인 아나폴리스로 놀러 갔을 때였다. 화창한 날이었다. 우리는 부둣가의 식당 테라스에 앉아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크랩 케이크를 즐겼다. 나의 과외선생님은 그날만큼 대학 얘기 대신 선생님이 여행한 다른 주의 먹거리, 쇼핑거리 등의 얘길 해주었다. 예쁜 잔에 담긴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으니,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얹은 브라우니를 먹으며 그녀는 내일 뉴욕으로 올라가 Jessi J의 콘서트를 볼 거라고 소풍을 앞둔 소녀처럼 신이 나서 말했다. 그날, 내가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아이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장례식에 갈 때만 입을 법한 심플한 남색 원피스를 꺼내 입고, 색조 없는 화장을 했다. 거울 속의 성숙한 내 모습이 어색했다. 이 드레스 코드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그곳에 모일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에 양 선생님은 늘어난 티셔츠에 찢어진 배기 청바지를 입고, 낮은 천 운동화를 즐겨 신었으니까. 내가 이 따분한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고상하게 서 있는 걸 그녀가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때 비로소 본인이 잊혔다고 느끼며 슬퍼하진 않을까? 나는 이 사려 깊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사람은 영악해서 목소리가 없는 한 사람보다 뒤에서 수근거릴 다수를 의식하니까.


강남의 장례식장엔 방이 14개나 있었다. 프런트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 방으로 향했다. 먼저 조문을 마친 방문자들이 나오며 저녁 식사 계획을 논했다. 그들의 태연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들으니, 그녀의 죽음이 어릴 적 바다에서 놀다가 떠내려가 버린 튜브같이 가볍고 멀게 느껴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맞닿아 있었지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거리는 멀기만 했다. 외롭겠다. 사람들이 어둡게 차려입고 와서 딱딱하게 절을 두어 번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면,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선생님은 혼자 외롭겠다. 이 외로운 순간은 미혼, 비혼 상관없이 모두가 맞이해야 하겠지.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싱글이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45살에 생을 마감한 이반의 절친 표툐르가 장례식에서 그의 사체를 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친구가 고통을 받다가 죽음을 맞이한 일이 본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데 곧 이것은 순전히 남의 일이며 자신에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 결론짓곤 마음을 놓는다. 그리고 이반의 간호사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러나 간호사는 시크하게 냉정한 현실을 말한다. 그것도 씩 웃으면서. 

"A sad business, isn't it?"
"It's God's will. We shall come to the same,"

"슬픈 일이에요. 그쵸?" 
"하나님의 뜻인걸요. 우리 모두 맞이하게 될 거에요." 

Leo Tolstoy, The Death of Ivan Ilych p.94-95

나 혼자 맞이하지만 우리 모두 맞이하는 것. 죽음은 영원한 수수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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