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
피터 패럴리 감독의 <그린 북>이 제79회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만한, 잘 만든 영화다. 1960년대의 인종차별 문제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감동적인 부분도 있고, 은은한 유머도 있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굳이 흠을 찾자면 너무 모법생답게 잘 만들어서 심심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은 나이트클럽에서 주먹 쓰는 일을 하는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가 우연한 기회에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의 차를 운전하며 미국 남부 피아노 투어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셜리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흑인에 대해서 인종차별적 감정을 가지고 있던 토니는 여행 과정에서 셜리와 대화를 나누고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편견을 반성하고 변화한다. 영화 제목은 흑인의 숙박을 거부당하기 일쑤였던 당시에 흑인이 숙박 가능한 호텔들을 수록한 가이드북 '그린 북'에서 따왔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1960년대 당시의 인종차별은 흑인에게는 양복을 팔지 않거나 식사도 팔지 않겠다고 거부한다. 심지어 피아노 연주를 위해 초대받은 저택에서 화장실까지도 따로 쓸 것을 요구한다. 경찰을 비롯한 백인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붙는 것도 예삿일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부당하다고 느껴져 분노하게 된다. 그렇기에 백인과 흑인이라는 인종을 뛰어넘어 우정을 쌓아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영화에 대해 불만이 남는 지점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토니는 크리스마스 가족 파티에 셜리를 초대하지만 셜리는 흑인인 자신이 토니의 가족 파티에 가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거절하고 홀로 집으로 돌아간다. 쓸쓸히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던 셜리는 마음을 바꾸어 토니의 집을 방문하고 토니의 가족이 그를 반갑게 맞이하며 영화는 끝난다.
납득이 가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토니는 처음에는 흑인에 대해 꺼려하는 감정을 가졌지만 두 달에 걸친 여행 끝에 마음을 연다. 사실 이 부분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KKK가 아니고서야 두 달 동안 함께 여행하면서 흑인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토니의 가족들은? 토니의 부인을 제외하고 그의 가족, 친척들은 토니 본인보다 훨씬 인종차별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갑작스러운 셜리의 방문을 환영하며 자리를 마련한다고?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셜리가 토니의 집을 방문하기 직전의 장면에서도 토니의 가족들은 인종차별적 대화를 나눈다. 셜리와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토니에게 흑인이 짜증나게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토니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씁쓸하게 말할 뿐이고 그 대화 자체는 그대로 끝난다. 토니는 왜 셜리와의 여행에서 배운 깨달음을 가족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과정이 있었따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의 경험을 통해 변화한다는 사실 자체는 감동적인 일에 틀림없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그러한 개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배경에는 미국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간다고 느끼는 백인들의 위기감이 있다. 21세기의 미국은 '유색인종'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유색인종'은 흑인, 라티노, 아시아인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고 백인이라는 집단 자체가 여전히 가장 큰 인종 구성원임은 변하지 않지만, 백인들이 자신들을 더이상 주류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의 위기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탄생은 역설적으로 그러한 백인들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트럼프 당선 이후 인종 문제에 대한 갈등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인종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그린북>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