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클랜스맨>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 <블랙 클랜스맨>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남북전쟁 직후패배한 남부 사람들의 이야기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현재에는 인종차별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블랙 클랜스맨>의 클라이맥스에서는 KKK의 단원들이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4)을 관람하는 장면 역시 나온다. <국가의 탄생>은 미국 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지만, 내용적으로는 KKK가 주인공인, 정치적으로 잘못된(politically incorrect) 영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국가의 탄생>, '명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문제작이다. <블랙 클랜스맨>은 미국 문화사가 은폐하고 있는 인종차별 의식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블랙 클랜스맨>은 흑인 경찰이 KKK에 잠입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그런데 KKK란 무엇인가? 흰 두건을 쓴 인종차별 집단이라는 사실 밖에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KKK는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직후의 남부, 테네시에서 시작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시대다. 남부는 패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피폐해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흑인을 적대시하는 자경단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KKK였다. KKK는 Ku Klux Klan의 약자인데, '서클(circle)'을 의미하는 kuklos가 Ku Klux가 되고, clan이 klan이 되면서 따왔다.
1869년 수장이었던 포레스트가 해산을 선언하고, 1871년에 연방법으로 금지되면서 KKK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이 보였다. 그랬던 KKK가 재건된 것은 1915년의 일이다. 영화 <국가의 탄생>이 나온 시기다. 이 시기 KKK는 남부뿐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전성기에는 500만 명의 회원으로 확대된다. 타겟으로 삼는 대상도 흑인뿐 아니라 유대인과 이민, 카톨릭 등 이른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외의 집단으로 확대된다. 하지만 두목이 체포되고 대공황이 닥치면서 1930년대 이후로는 급속도로 쇠퇴된다.
1950, 60년대에 흑인운동이 활발해지자 그에 대한 반동으로 KKK는 제3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 <블랙 클랜스맨>은 1972년, 흑인 운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KKK 역시 수면 아래로 잠복한 시기에 시작된다.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미성숙한 시기다. '유색인종 환영'이라는 선전문구를 본 주인공 론 스툴워스(존 데이비드 워싱턴 분)가 경찰에 지원해 합격할 수 있을 정도의 제도는 있었다. 그러나 경찰 내의 유일한 흑인인 론은 유무형의 차별을 경험한다. 문서보관부라는 한직에서 일하게 된 론에게 백인 경찰들은 흑인 범죄자를 "두꺼비"라 부르며 약을 올린다.
참고로 <블랙클랜스맨>은 실화에 기반하고 있는데, 실존인물인 론이 KKK에 잠입한 것은 1979년이다. 영화는 시점을 인종갈등이 훨씬 심했던 1972년으로 7년 앞당겼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지점은 '어떻게 흑인 경찰이 KKK에 잠입할 수 있었는가?'하는 의문일 것이다. 문서보관부에서 잠입수사부로 이동한 론 스툴워스는 어느 날 신문에 실린 KKK의 전화번호에 전화해 가입 의사를 전한다. 그러나 실제로 KKK 회원들을 만나 입단 절차를 밟는 인물은 론의 동료인 유대인 필립(아담 드라이버 분)이다. 전화는 론이, 대면은 필립이 분담한다는 설정이다.
이 설정이 억지스럽다. KKK를 실제로 만나는 사람이 필립이라면 2인1역이라는 번거로운 방법을 취하는 대신 그냥 필립이 론 스툴워스 역할을 맡으면 된다. 처음에 전화를 건 사람이 론이라 해도, 이후로는 필립이 론이라는 통일된 인격체를 연기하는 편이 잠입수사가 발각될 위험이 훨씬 적다. 물론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실화에 기반한 이상, 실제로는 나름대로의 필연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만 보면 굳이 흑인인 론이 위험을 무릅쓰고 KKK에 잠입할 개연성이 부족해 보인다.
어쨌든 필립을 통해 비밀결사 KKK의 실상이 하나둘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제국"을 자처하는 그들은 비밀조직을 유지하면서 때로 사격 연습을 가서 흑인 모형에 총을 쏘는 등의 모임을 가진다. 약간 특이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인 그들이 어째서 흑인에 대한 증오를 그렇게 키워갔는가?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그 증오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KKK 단원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펠릭스가 아내와 함께 흑인에 대한 테러를 획책하며 흑인을 죽일 생각에 기뻐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그런데 KKK의 실체에 대해 알게 해 준다는 점 외에 영화 자체로서의 재미는 점점 떨어진다. 잠입수사물의 재미 중 하나는 잠입한 스파이의 실체가 조직 안에서 밝혀질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부분이다. <블랙 클랜스맨>에서도 펠릭스가 유대인인 필립의 팬티를 벗겨 포경 사실을 확인하려 하거나 론의 주소를 찾아가 흑인인 실제 론 스툴워스를 발견하는 등의 몇 번의 위기가 있다.
그러다가 클라이맥스인 필립의 입단식 날, 펠릭스는 론과 필립의 정체를 알아챈다. 자, 이제 필립의 정체가 밝혀지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것인가 싶던 그때... 펠릭스가 아내의 호출을 받고 자리를 떠난다. 점점 고조되던 긴장감이 갑자기 다운된다. 펠릭스의 아내는 폭탄 테러를 시도하는데 결과적으로 말하면 론과 필립은 검거에 실패한다. 펠릭스 일당이 실수로 자폭하면서 일련의 사건은 해결된다. 이것도 결말로서는 맥이 빠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경찰과 악당의 총격전을 통해 체포가 됐든 총살이 됐든 끝장을 보길 기대했건만 그냥 실수로 자폭하는 것으로 끝나다니, 론과 필립의 잠입수사가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어이가 없다.
그런 부분은 여러모로 부족한 느낌이 들지만,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론이 문을 열자 영화는 갑자기 2017년의 실제 영상이 삽입된다. 데이비드 듀크를 비롯해 KKK 등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트럼프 당선에 환호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샬럿츠빌에서 차량 테러로 운동가가 살해당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트럼프 대통령이 양비론을 발언하는 것으로 끝난다.
여기서 영화의 메시지는 명확해진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극우주의와 인종차별주의의 난동이 과거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 중반에서는 KKK의 지도자인 데이비드 듀크가 대통령을 꿈꾼다는 이야기를 듣고 론이 "그런 허풍선이 인종차별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뽑을 정도로 미국인들이 어리석지는 않다"고 대답하는 부분이 있다. 이 대사가 트럼프 당선을 풍자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70년대의 실화를 영화로 각색했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현재의 실제 영상으로 이어지는 연출은 분명 흥미로웠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시대의 인종차별 비판이라는 메시지가 명확한 것은 좋다. 다만 그러한 메시지를 지나치게 명확히 밝혀내기 위해 영화로서의 재미를 희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앞서 지적한 잠입수사 설정의 억지스러움이나 흐지부지 끝난 사건 해결 등의 문제다. KKK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라면 볼 만한 영화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P.S. 얼마 전 백인 우월주의 단체에 가입하고 인종차별을 일삼던 어떤 백인 여성이 단체 내의 여성 차별을 경험하고 탈퇴했다는 기사를 보았다(https://edition.cnn.com/2019/10/30/us/white-supremacist-woman-reeve/index.html). 본인이 흑인이나 유태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할 때는 즐겼으면서 정작 본인이 차별의 대상이 되자 문제의식을 느끼고 탈퇴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블랙 클랜스맨> 내에서도 KKK는 남성적인 단체로 그려진다. 펠릭스의 아내는 사상적 측면(?)에서는 다른 회원들 못지 않게 인종차별적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들만의 대화에는 끼지 못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인종차별 단체 내에서도 배제된 경험이 영화 후반부에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지 않았는지, 본인이 차별받는 계층이라는 이유가 다른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