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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공습 자료센터

전쟁에서의 민간인 살상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다

by 김현욱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80년째 되는 해다. 1945년 3월에 있었던 이른바 도쿄대공습 역시 80주년을 맞았다. 그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도쿄대공습 자료센터는 지하철 스미요시(住吉)역에서 도보 20분 정도 되는 곳에 있다. 도쿄 도심에서 벗어난 외진 곳에 있어 굳이 관심이 없으면 가기 힘들다.

도쿄대공습 자료센터

건물 역시 세련된 최신식 박물관과는 달리 수수한 외관을 하고 있다. 공적 기관이 아닌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는 자료센터는 일본에서도 지명도가 높지 않은 곳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은 일본 본토를 폭격했다. 도쿄 역시 1944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폭격의 대상이 되었는데, 1945년 3월 10일의 폭격은 10만 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혔다.

아이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상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고발하는 주장의 대부분은 일본을 피해자로 두는 관점에서 나온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다. 가해자로서의 관점이 결여된 일본의 전쟁관에 대해서는 비판할 부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쿄대공습 자료센터 역시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04화 4.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주요 폭격 사례

그런데 이 센터의 관장은 저명한 역사학자 요시다 유타카(吉田裕)였다. 한국에도 예전에 일본인의 전쟁관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일본인의 전쟁관>이라는 책이 번역된 바 있다. 양심적인 역사학자인 요시다가 관장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자료센터의 전시에 대해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일본인의 전쟁관 : 알라딘


실제로 자료센터의 전시는 일방적으로 일본의 폭격 피해만을 강조하는 대신에 전세계적으로 전개된 폭격의 비인간적인 잔인함을 고발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중국, 호주, 미국을 폭격한 사건 역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가해의 역사에 대해서 자각한 전시가 되어 있다.

조선인의 폭격 피해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거주 중이던 조선인들이 받은 피해에 대한 전시도 있었다. 조선인들이 일본에 오게 된 이유인 징용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방적으로 일본인만을 전쟁의 피해자로 기록하는 서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폭격에 대비한 방공 매뉴얼과 옷차림
당시 집을 재현한 전시


원칙적으로 전쟁에서 군인에 의한 민간인에 대한 의도적 살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비행기를 이용한 도시 폭격은 민간인을 대규모로 살상한다는 점에서 잔인한 행위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전쟁이란 원래 그렇지 않은가, 라는 삐딱한 생각이 드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전쟁이란 불가능하다. 결국 정도의 차이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살상하는 행위가 전쟁 상황에서도 비판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현재 진행중인 가자에서의 학살을 생각하면 그렇다. 무력 행사를 부정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할 부분이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민간인들을 살상, 납치한 2023년 10월의 공격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에서의 민간인 살상은 그 이상으로 도를 넘어선 행위로 더 큰 비난이 가해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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