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의한 애도를 되찾기

<라스트 플래그 플라잉>

by 김현욱

대의 없는 전쟁을 위한 의미 없는 희생과 장기화되는 전쟁으로 인한 피로라는 점에서 이라크전쟁은 베트남전쟁의 재현으로 비유되곤 한다. <라스트 플래그 플라잉>은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이라는 두 세대의 전쟁을 다룬 내용이다.


영화는 이라크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의 어느 시골에서 시작된다. 이라크전쟁에서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스티브 카렐 분)는 33년 전 베트남전쟁을 함께 했던 두 명의 전우(브라이언 크랜스턴, 로렌스 피쉬번)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말한다. 33년 만에 재회한 삼인방은 일단 전사한 아들의 시신을 맞이하러 간다. 그곳에서 군이 은폐하려 한 진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알링턴 묘지(한국의 현충원)에 묻기를 거부하고 자택에 묻겠다며 아들의 시신을 운반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두 세대의 아픔을 통해 이라크전쟁을 비판하며 국가에 의한 애도의 의미를 되찾자는 메시지일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이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언급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영화가 그리 단순한 플롯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신을 인계받은 델라웨어에서 자택이 있는 뉴햄프셔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아니고 도중 정차역에 내려서 밥도 먹고 핸드폰도 개통한다.(응?) 그런데 그러다 기차를 놓친다.(네?) 단풍놀이 가는 기차도 아니고 아들 관이 실린 기차를 놓쳤는데 주인공이 태연하다.(엥?) 상식적으로 아들의 관과 함께 장례 치르러 가는 아버지가 도중 정차역에 내려서 핸드폰 사다가 기차를 놓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기차를 놓침으로 인해서 영화에는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긴다. 주인공 삼인방은 가는 김에 30년 전에 자신들의 실수로 죽은 전우의 유족을 찾아 보스턴으로 간다. 뒤늦게라도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죽은 전우의 노모를 마주한 삼인방은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결국 거짓말을 하고 만다. 그럴 수 있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 진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영화의 주제에 모순이 생긴 것이다. 애초에 주인공이 아들의 알링턴 매장을 거부하고 시신을 되찾아 온 이유는 아들의 전사 상황을 은폐하려 한 군대의 거짓말에 분노해서였다. 그런데 삼인방 역시 아들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을 한 군대와 거의 같은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엔 두 축이 있다. 아들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서 집에 가는 이야기와 30년 만에 옛 전우를 만나 회포를 푸는 이야기. 영화는 기차를 놓치는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후자에 무게를 싣기 위해 전자는 기계적으로 소비된다.


아들을 알링턴 묘지에 매장하기를 거부하면서 주인공은 아들을 군복이 아닌 사복을 입혀 매장하겠다고 말한다. 국가에 의해 수행되는 애도를 개인의 애도로 되찾겠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도착해서는 해병대 제복을 입힌 채 매장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해병대 제복을 입은 옛 전우들이 성조기를 들고 장례 의식을 치른다. 주인공의 심경이 바뀐 이유는 해병대 제복이 멋있다는 이유밖에 없다.


알링턴에 매장을 거부하면서 국가로부터 되찾은 개인을 다시금 해병대 제복과 성조기가 상징하는 국가로 되돌린 것은 모순으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큰 불만을 느꼈다.


영화의 메시지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들의 전사에 대한 군의 거짓말에 분노하고 알링턴 묘지 매장을 거부하고 해병대 제복을 입히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만 본인들도 똑같은 거짓말을 하게 됨-> 군의 거짓말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됨-> 집에 돌아와 해병대 제복을 입히고 매장함."


이게 정말 영화가 말하고자 한 메시지인지는 모르겠으나 말이 되게 해석하자면 그렇다. 그런데 영화 외적으로 여기에 동의하는가와는 별개로 영화 내적으로 이러한 주제가 설득력 있게 묘사되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 측면과는 별개로 유머 코드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들의 관이 실린 기찻칸에서 주인공 삼인방은 30년 전 베트남에서 성매매를 한 '무용담'을 낄낄거리며 이야기한다. 대화의 소재가 불편한 건 둘째치고 어디에서 웃으면 좋을지 몰라서 끔찍하다. 언피씨해도 웃기면 이해를 하겠는데 끔찍하게 노잼이다. 체감상 5분이 훌쩍 넘는 이 장면이 대체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아들의 관 옆에서 끔찍하게 노잼인 대화로 낄낄거리는 아버지를 통해 부조리극을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 알 수가 없다. 주연인 스티브 카렐은 재미도 있고 좋아하는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의 그는 영 만족스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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