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 검증 그리고 개선
읽기 싫어 듣고, 쓰기 싫어서 찍고. 그래도 먹고살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최초 사무실은 오피스텔이었다. 고등학교 때 쓰던 책상으로 사무공간을 꾸몄다. 막내이자 매니저 또는 실장. 두 명뿐인 회사에서 중간관리자로 일을 시작했다. 2011년 2월이었다.
경리, 총무, 온갖 판촉물의 검수자이자 상담원. 영업사원을 흉내 냈고 무지성 R&D를 추진하는 방구석 MD. 소기업의 태엽을 돌리는 역군으로 인생의 1/3을 보냈다. 일은 끝도 없는 매니징이었다. 경험과 결과에서만 오래 일을 배우다 보니(그것도 경영지원 실안에서) 생산성은 둔감해지고 막연한 조언들은 거를 수밖에.
자축하는 듯한 성공 공식. 괴담이나 대서사시가 아닌 그냥 답을 주었으면.
책 한 권에 관리자의 덕목과 패션을 완성하고 노하우를 획득하기란 불가능하다. 정말 위대한 사람들의 멋진 이야기들이 즐비하지만 급하고 부족한 나는 가장 분명하고 명령하는 책을 원한다. 다행히도 이 책의 일부는 가장 쉽고 아주 명확하다.
나는 내가 해왔던 매니징에 대한 잘잘못을 따져볼 수 있었고, 불평하거나 부정적이었던 방법에 대해 설득됐고, 몇 가지는 새로 배웠다. 그것들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가능한 '최저 가치' 단계에서 생각하고 이슈를 감지해야 한다.
'최저 가치' 단계를 고려하는 것은 '기회비용'을 저울질하는 것과도 매우 비슷하게 느껴진다. 책에서는 '결함을 발견하는 시점을 앞당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쉽게 풀어주었는데 폭넓게 대입해보면 인사 채용과 수습 기간의 평가, 업무 배정 및 일정 관리, 인사평가 등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것은 내가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이 상충되고 또 어려워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실무 업무와 매니징을 병행하는 경우 큰 확률로 매니징의 집중도가 떨어진다. 제안서를 쓰거나, 최종 결정을 위한 자료 제작 등의 과정에서 팀원과 자신을 비교하며 효율을 계산해본다. 게임이 되지 않는다. '최저 가치' 단계에 자신을 최전선으로 두고 계산하니 어떤 선택보다도 저렴하고 문제 발생 시에도 가장 짧은 동선으로 대처가 가능할 것처럼 느낄 수밖에. 물론 내가 맡은 하나의 업무만 봤을 때는 유효할 수도 있으나, 방치되었던 곳에서 발생한 문제는 비용을 증가시키고 체크 리스트가 없어 진행률이 계속해서 지체되는 등 내가 들고 있던 '최저 가치'는 치솓고 팀원들의 에너지는 집중되지 못하고 곳곳에 흩어지게 된다. 애초부터 인력의 역량과 성향에 맞는 업무를 배치하고 정확하고 분명한 지시(TRM 정도에 따른)를 고려했어야 하며, 이것은 최초 채용의 목적, 적합한 인재의 발굴 방법의 고민 등 더 낮은 '최저 가치' 단계를 통과한 뒤에 나왔어야 하는 고민인 것이다. 이미 나는 몇 단계를 생략한 채 스스로의 효율에 취해 더 크게 발생할지도 모를 손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더 큰 단위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을 시뮬레이션하여 현재 '최저 가치'가 올라가 있지 않은지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 생산의 최적화를 돕고 환경을 가꾸는 경영지원실의 ‘최저 가치’ 단계는 채용보다 면접, 면접보다 공고, 공고보다 기업 운영 시뮬레이션과 플랜 구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어떤 영향을 주는 관리자인지 스스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깊이 성찰하게 만든 구간이다. '넛지'라는 것에 대해서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수회 반복해서 읽고 단어를 찾아보았다. 관리자(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습관과 성향과 태도는 팀원들에게 강하게 전달되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서 재생산된다. 무엇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연거푸 한숨을 쉬거나, 불안감을 공유하고, 최악의 상황을 산정하여 구구절절이 표현하여 모두가 상상하게끔 만들었던 지난 모습을 반성한다.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매우 소심하고 겁 많고 다소 변태스럽기까지 한 성향이 업무 과정에서도 많이 노출되었다.(회사를 우선시하고 어지간한 몸빵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영지원실 부서의 문화 건립에 일조한 것에 대해서는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감정을 쉽게 드러내거나 실의에 빠져 발만 구르는 리더의 모습은 부정의 레버리지를 키운다'는 책 내용에 대해 극한의 경계심을 갖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주의하고자 한다. 어떤 형태나 전달방법과 상관없이 리더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마이크로 매니징은 내려놓고 캘린더를 활용하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
언제부턴가 기업 대부분의 이벤트들이 캘린더로 옮겨지기 시작했고 시간 단위로 쪼개지는 타임테이블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여러 회의에서부터 문서의 제출 기한까지. 뭔가 '캘린더를 사용하기 위한 사용'으로 느껴져 거부감이 들었던 적도 있다. 오히려 나는 2020년부터 정부지원사업의 책임자로 수행하면서 극한의 '마이크로 매니징'을 추구했고 팀원과 자기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수십 번의 사업계획서 수정에 다소 심취해 있었다. 심지어 성취도 있었기에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최근까지도 '마이크로 매니징'의 부정적인 견해가 컸던 것은 아니나 대표이사의 캘린더 사랑과 온라인 미팅 비중의 증가, 프로젝트와 직원의 증가로 이벤트가 많아져 자연스럽게 달력의 의존도가 올라가게 되었다.(사실 책과는 별개다.)
일정 관리 방법을 터득하고 달력의 활용도를 올리다 보니 일정의 설정은 가장 중요한 생산도구 중 하나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책을 통해 '마이크로 매니징'은 하나하나 간섭하며 팀원들의 업무를 감시하는 것이 아닌, 역량을 고려한 업무 배정과 업무를 다시 여러 단계로 나눠서 세부적으로 일정을 세워 수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관리 방법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물론 업무 성숙도가 높을수록 관리감독의 비중은 줄어든다.)
추가로 책에서는 불가한 일정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히는 것과 일정 수준의 '여유 시간'을 허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여유롭고 어디부터 불가한지 파악하는 것부터가 현재 우리 기업이 당면한 과제이긴 하나, 이번에 도입될 모니터링 시스템이나 직무별 인사평가 방안이 자리를 잡는다면 진정한 '생산 도구로서의 달력'이 안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기업의 과제 '성과 평가'
기업의 성장과 생산성 증가를 위해 관리자는 팀원들이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선택적이고 정확한 매니징을 추구해야 하고, 팀원들의 업무 효율은 최대한 명확한 기준으로 측정되어야 한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인원을 파악하고, 미달되거나 이탈이 예상되는 인력을 조치하는데 쓰인다.
나는 이 책의 가장 핵심 파트라 여기는 13장~15장 중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작업이 성과평가 제도 안착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다소 막막한 관리자에게 즉시 사용 가능한 성과 평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매뉴얼이라고 생각한다. 평가 방법과 평가자의 마음가짐부터 예상되는 직원의 반응, 유의사항 등을 다루고 있다. 역시나 핵심은 단순 점수로 평가할 수 없고, 근거에 기반한 주관적인 평가도 매우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면전에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고 알려주는 것이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용기를 얻은 대목이며 좀 더 체계적이고, 상대의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이루어진다면 훨씬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팀장들의 여러 의견을 반영하며 직무 정의 및 평가 제도에 대한 개편을 진행 중에 있는데, 이것은 완성이 된 뒤에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만 정상 작동 여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근무시간의 대한 분명한 기록(근태관리)을 체크하는 환경이 선행되어야 하고, 무력감이나 느슨함이 만연한 회사 공기를 걷어내야 하며, 이것들이 익숙해진 뒤에도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서 인력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지원실은 한 사람이 한 부서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다른 부서의 업무를 일부 겸하며, 또 언제든 지원이 가능한 형태로 서로를 보완하는 구조이다 보니 평가 방식을 많이 고민하였다. 누구나 지원을 염두한 업무를 하다 보니 막상 작은 업무 단위에서 책임자가 공동이거나 공석인 경우가 많았고, 먼저 발견하거나 시간이 남는 사람이 처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특히 총무 업무가 그렇다.) 그래서 1차적으로 내린 결론은 경영지원실 모든 부서(인사, 회계, 세무, 총무 등)의 모든 업무를 세부적으로 리스트업 하고, 모든 업무의 정/부를 부여하는 것이다. 신설되는 업무는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정/부를 배치한다. 물론 자신의 업무는 다들 각자 알고 있으나 항상 번거로운 일은 후순위로 밀리고 뒤늦게 처리되는 일이 잦다 보니 이번을 계기로 손보게 된 것이다. 자신의 R&R을 분명히 알아야 내 업무 순위를 정확히 인지하고, KPI의 형성과 성취도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에게 부여된 고유 업무에 대한 평가와 근태, 에티튜드 등을 반영한 공통 평가를 종합하여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면 좀 더 분명하고 추후에 인력 변동이 있더라도 기업 나름의 기준(수량적인 측면까지 고려한)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크게 재미는 없지만 숨겨진 미장센이 많은 영화처럼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다소 지루하고(특히 뻔한 자기 개발서 형태의 가상 사업체 운영을 예시로 드는 패턴.) 던지고 싶은 충동이 초반에 몇 번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아주 직설적이고 분명한 어조로 지시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중요한 건 한번 읽고 한 달 뒤 주요 페이지를 다시 읽었을 때였다.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것처럼 대략적인 흐름은 자연스럽게 머리에 상처럼 떠오르고,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여러 미장센들이 매우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두 번째부터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아직 읽을거리가 상당하다.
독서를 게을리하고 진짜 양식(洋食)을 즐기는 나로서는 이번 공부가 꽤나 양질의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매뉴얼이다. 교보재다. 꺼내서 필요한 부분을 펼쳐라. 13장부터는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