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늘어가는 요리실력과 그리움.
20대에 들어와 집을 떠나 살았다. 자취를 하면서 요리실력이 늘 줄 알았는데 내 요리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제자리걸음이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할 만큼 요리를 자주 하지도 않았지만. 난 요리에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를 생각했다. 언젠가 친구 어머님께 이런 말을 했었다. "요리실력은 어떻게 하면 느는 거예요?" 주부 내공이 꽉 찬 어머님은 내게 이렇게 답하셨다. "자꾸 만들다 보면 늘어. 자꾸 만들어봐야 돼." 어머님의 이 답변이 진짜임을 나는 한참이 지나 알게 되었다.
런던에 건너와서 내가 나아진 점을 몇 가지 떠올려보면, 항상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요리실력이었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나 집주인 아주머니는 내 요리를 맛보고 금손(?)이다, 재주(?)가 있다,라고 하는데 난 어쩐지 이 말들이 낯설다. 내가 나를 잘 안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 그 정도는 아닌데... 하며 마치 내 것이 아닌 칭찬 같았다. 뭐 그래도 금손은 아니지만 똥 손은 벗어났다는 생각은 든다. 내가 왜 런던에 와서 요리실력이 늘었나 생각을 해봤다. 이유는 분명하다.
첫 번째, 런던의 비싸고 맛이 없는 외식.
런던의 물가는 정말 비싸다. 집세와 교통비는 물론이고 외식을 하는 비용도 조금 부담스럽다. 부담스러운 가격이어도 맛있으면 괜찮을 텐데 그 정도도 아니다. 실제로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초밥 테이크아웃 지점은 그저 그런 초밥 몇 개 들어있는 한 팩이 한국 돈으로 7천 원이 넘는다. 가끔 외식을 하려고 뭘 사 먹지? 고민해보면 답이 쉽게 안 나오고, 고민 끝에 결국 가는 곳이 버거집이다. 가끔 한식을 사 먹으려고 식당에 가면 맛에 비해 비싸다는 느낌이 나서 한식당도 잘 안 가게 되었다. 진짜 요리할 힘이 없어 사 먹으려고 가는 곳은 겨우 KFC, 그곳에서 치킨 몇 조각을 시키는 게 다다. 돈도 많이 들고 맛도 그렇게 맛있지 않다면 그냥 내가 만들어 먹는 게 낫겠다 싶어 (돈도 절약할 겸) 나는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두 번째, 고마운 마트 가격.
다행스럽게도 살인적인 런던 물가를 견디며 살 수 있는 건 저렴한 마트 물가 덕분이다. 야채, 과일, 고기 등이 한국보다는 저렴해서 장을 보는 것에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치즈, 요거트, 과일과 한국에서 사기 망설여졌던 재료들이 가득해 난 장 보러 가는 게 재밌어졌다.
세 번째, 당연하게 생각했던 편의점과 배달음식.
그렇다! 여기는 집 앞에 편의점도 없고 그렇다 할 배달음식도 딱히 없다. 물론 요즘에 이 곳도 배달을 하긴 한다. 하지만 메뉴가 다양하지 않고 배달이 느리기도 하다. 새삼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배달문화에 놀라는지 이해가 간다. 내가 생각하는 배달음식은 피자, 치킨 이런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배달책자에 있는 다양한 한식까지 포함한다. 당연히 이 곳엔 족발과 보쌈, 아귀찜, 찜닭 등을 배달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가장 뚜렷한 마지막 이유, 한식에 대한 그리움.
이 곳에 오기 전만 해도 난 빵순이라고 불릴 만큼 빵을 좋아했고, 한 두 끼니 정도는 샌드위치로 해결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런던에 가면 먹는 건 괜찮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런던에 오고부터 한식이 간절하게 당겼다. 런던에 처음 온 후 집을 구하자마자 나는 큰 한인마트에 가서 장을 크게 봤다. 고추장, 국간장, 진간장, 들기름, 참기름 등등 한식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란 재료는 다 사들였다. 그리고 처음 했던 음식은 미역국. 한인마트에서 사 온 진미채와 멸치볶음을 반찬으로 놓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는데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 나 이제 여기서 살아갈 수 있겠다 싶은 안도감이랄까. 고국(이라 칭하고 싶다...)에 있을 땐 너무나 당연했던 한식들을 쉽게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끊임없이 한식이 떠올랐다. 고등어찌개, 김치찜, 주꾸미 볶음, 평소에 잘 먹지도 않았던 곱창까지... 뜬금없이 콩불도 먹고 싶고...
이 모든 이유들을 종합하여 내가 요리를 하게 되는 생각 회로는 다음과 같아졌다.
닭갈비가 먹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든다.
닭갈비를 나가서 사 먹기엔 만족스럽지 않다. 비싸고 맛도 그저 그러니까.
인터넷에 닭갈비 레시피를 검색해본다.
만들어볼 만한데?라고 생각이 들면 장을 본다.
닭, 양배추, 당근, 파 재료들을 싼 가격에 산다.
만든다. 만들었는데... 어? 맛있다!
이 회로에 따라 하나둘씩 내가 만들 수 있는 한식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있다.
분명하게 한식에 대한 그리움도 일종의 향수병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애정 하는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단연코 고국을 떠나온 내게, 태어나서부터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먹어왔던 다양한 한식은 곧 나의 정체성이자 국적인 것이다. 엄마의 품과 같은 고국을 떠나오면서부터 나는 꽤 불안정했다. 물론 지금도 불안정하다. 어쩌면 그래서 난 더 한식을 찾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먹어왔던 한식을 해 먹음으로써, 타국 생활의 불안함이 어느 정도는 덜어지는 것 같다. 한식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을 누군가가 도닥여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난 밥을 먹을 때마다 꼭 1인분은 배가 안차 1.5인분을 해 먹는다. 왜 난 여기 와서 1.5인분을 먹게 된 걸까? 이 것도 실은 분명한 이유다.
당연한 첫 번째 이유는, 마음에서부터 오는 불안, 외로움, 일종의 향수 등등을 채우려는 심리.
런던으로 오고 나니 이런 심적 허기가 유난히 더 잘 느껴져 음식, 특히 한식으로 채우려는 것 같다. 마치 배를 두둑하게 채우면 (배부른 느낌이 들면) 나 마음도 채워지는 것 같아서. 물론 매일 이러진 않는다. 어쩔 땐 배부른 느낌과 살찐 것 같은 느낌이 싫어서 많이 먹지 않는다. 또 마치 루틴처럼 긍정적 에너지로 내 자신이 꽉 채워졌을 땐, 많이 먹지 않아도 괜찮다. 난 나의 이런 심리를 단순하게 인정하고 나를 도닥이고 있다. 응 그럴 수 있지. 타국으로 나왔으니 더 그럴 수 있지. 먹은 만큼 내버려두면 살이 찌니 운동을 더 하자. 하며...
두 번째는 육체노동을 위한 에너지 보충.
나는 지금 런던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이 것에 대해서도 따로 글을 써보려 한다.) 커피를 만들지만, 카페 안의 모든 일을 다 하는 사람이다. 일하는 시간 계속 일어서서 있고, 생각보다 육체노동을 할 때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힘이 많이 달린다. 처음 한 두 달 일할 땐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살이 많이 빠졌다. 간혹 점심시간이 겹쳐서 일을 하는 날이면 카페에서 파는 파니니로 점심을 해결했는데 이거 뭐... 빵쪼가리로 전혀 끼니가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도시락을 싸려고 한다. 그것도 밥으로. 사실 이 도시락은 다이소에서 산 샐러드 도시락인데 샐러드는 무슨, 밥으로 꽉꽉 채워 사용하고 있다. 내용물이 뭐 다르면 어때, 잘 사용하면 된 거지. 브레이크 타임도 짧아서 주로 나는 볶음밥이나 비빔밥을 만들어 간다. 1.5 인분으로 푸짐하게! 많이 움직이는 나를 위해 힘을 내라고, 이만큼 먹어도 살이 찔 수 없다고. 나를 응원하며.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건 정말 진짜다. 밥을 먹으면 든든해서 같은 일을 해도 좀 더 여유가 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시도도 하지 못하는 한식들이 나는 너무나 그립다. 초봄이 시작되면 엄마가 뒷산에서 캐오는 냉이로 만드는 냉이된장국, 내가 좋아했던 성수동 어느 감자탕 집의 감자탕, 갈치조림, 갈비탕 등등... 나에게 한식은 고국에 대한 향수와 직결되어 생각하면 끝도 없이 생각나고, 멈출 줄 모르게 그리워지는 것 같다. 사랑하는 만큼 그립다고, 바보같이 한국을 나와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이 너무 그립다. 나는 나의 조국이 좋다. 한국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한식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