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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가쏭 May 26. 2018

다름을 인정한다는 건

남과 다른 내 모습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얼까?' 한창 고민하던 때였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친구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지금 하는 일이 좋다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우린 아직 젊으니, 이제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몇 년 안에 일을 관두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지금 하는 일이 맞지 않아서 그렇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생각이 달라질 걸'이라고 답했다. 그녀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대화를 할 때에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고 대부분 들어주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박을 하거나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편도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들어주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다름을 잘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특나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정 반대의 의견을 만났을 때.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때도 많았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 어떤 상황 때문일까?' 궁금해하지 않았다. 듣고는 있었지만 그냥 흘려보냈다. 다름을 만나면 내 생각과는 다르니 배제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상황과 가치관, 우선순위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는 건데, 내가 너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생각만 들으려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간 편협한 인간이 될 것만 같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들어 보는 것도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의 빈틈을 채워 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다양한 의견을 접하고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랑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어려운 과제였다. 플랜맨인 신랑과 게으른 자유영혼인 나. 현실주의자인 신랑과 지극히 이상주의자인 나. 우리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 지인의 결혼식장에 가는 길. 사소한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때다 싶었다. '그래 대화를 통해 다름을 한 번 이해해보자'는 생각으로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해 보았다. 그러나 결혼식장에 가는 내내 우리는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이야기는 제자리를 멤 돌았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신랑 신부가 직접 작성해 온 혼인서약서를 읽는 순간, 나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며 살겠습니다." 순간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둘 다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 그러지 못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름을 만났을 때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면 둘 다 손해 보는 느낌이 들 테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바꿀 필요도, 나를 변화시킬 필요도 없었다.


내 고집을 꺾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난 생각보다 고집이 있는 편이었고,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게 나를 꺾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어려웠던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래 그럴 수 있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많아질수록, '이래도 되는 걸까?'하는 것들을 할 수 있게 됐다. 밝은 색으로 염색한 사람을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어야 본인 머리도 염색할 수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만큼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스스로 잡고 있던 발목을 놓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건
내 고집을 꺾는 것도,
타협점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생각이 많아졌다. 취업을 하고 일을 하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퇴직을 한다는 건 한편으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들과 공통점을 하나 잃어버리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 된다는 두려움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았다. 그 두려움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상황이 너무 달고, 경험하는 것이 다르니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의와 응원을 기대한다는 건 어찌 보면 내 욕심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없이는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난 어쩌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점에 다름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건 너무나 다행이었다. 돈, 사회적 지위, 시간과 같은 가치 중에 어떤 것을 추구하던지 그건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무엇이 우월하고 열등할 것도 없었다. 그저 다를 뿐이었다.


내가 이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다면 주변 사람들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움츠려 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저 다를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끊임없이 의식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기로 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있는 그대로 그들을 인정하고, 남들과 다른 내 모습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 다른 사람들과 달라도 괜찮으니 내가 생각하는 대로 믿고 나아가기로 했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건
나를 자유롭게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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