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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가쏭 Jun 12. 2018

오랫동안 망설인 일을 시작하려면

숨고 싶은 창피함을 견뎌내야 하는 일

너 홈스타일링 하려는 거 아니었어?


내가 퇴사를 했다고 하자 친구들은 드디어 홈데코 일을 시작하는 거냐고 물었다. 일 년 정도 이것저것 하면서 찾아볼 생각이라고 답했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퇴사를 하면 홈스타일링 일을 해보겠다며 3개월 넘게 컬러리스트 공부를 하기도 했었으니까. 칼퇴를 하고 스터디 장소에 가서 수업을 듣고 집에 가면 12시. 다음날 출근을 위해 6시 전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꽤나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왜 나는 잊고 지냈까? 이젠 별로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별거 아닌 생각이었던 걸까?


흠뻑 빠져있을 때는 하루 종일 홈스타일링 생각만 할 때도 있었다. 책도 잡지도 수없이 구매해 읽었다. <Mr Kate>라는 인테리어 관련 해외 유튜버의 영상을 보기 위해 영어공부를 하기도 했다.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을 사용했던 이유도 홈데코 사진을 스크랩하기 위해서였다. 친구의 신혼집 홈스타일링을 돕겠다며 PPT 자료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 혼자 신나서 한 걸 보면 좋아하긴 했던 거 같은데, 퇴사하고 6개월이 넘게 잊고 지냈다.


막상 시작하려니 겁이 났던 것 같다.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관심을 갖고 흠뻑 빠져 지낸 시간이 5년이 넘었고, 그동안 나는 눈만 높아져 있었다. 페인트 칠도 한 번 해본 적 없으면서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에 있는 수준의 홈디자인을 꿈꿨다. '아니 그 사람들이라고 하루아침에 그렇게 됐겠어? 전문가 여러명이 모이니까 가능한거야'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욕심이 났고 잘하고 싶었다. 시작도 못하고 도망 다녀야 할 만큼.


오래 망설일수록
시작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인스타 그램 @ muutodesign 맨날 이런 사진만 보니 눈만 높아진다.


퇴사하고 처음으로 도전한 일은 엉뚱하게도 글쓰기였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작가가 되기를 꿈꾸거나 등단을 바랬던 적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 한 시간이 짧았다. 죽기 전에 책 한 권 내고 싶은데, 지금부터 조금씩 글을 써볼까? 생각하자마자 블로그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맞춤법도 문법도 엉망이었다. 다행인 건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글을 쓰고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것.


글쓰기가 어려운 건지 1도 몰랐기에 오히려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망설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 듯했다. 이상과 현실의 갭이 거의 없었던 것.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다. 물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도 더 많이 보고 다른 사람의 글도 더 많이 읽었다. 좋은 글이 어떤 건지 알아가는 만큼 욕심이 늘어났지만 그만큼 실력도 조금씩 늘고 있었다. 하면서 고민하는 만큼 터무니없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대치가 낮다는 건 꽤나 좋은 일이었다. 쓸데없는 고민이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브런치 작가도 4번이나 탈락하고 5번째 겨우 붙었지만, 떨어졌을 때 딱 견딜 만큼만 괴로웠다. '그렇지, 아직 부족하겠지' 생각했다. 훌훌 털고 일어났고 큰 좌절 없이 계속 지원할 수 있었다. 실력이 늘 때까지 그냥 계속 써나갔다. 기대치와 내 실력의 갭이 작을수록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듯했다.


멋 모를 때 시작해야 하는 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도 될 수 있었고, 다음 채널에도 글이 노출되기도 하면서 계속 배우고 있다.


홈스타일링도 그렇게 시작했어야 하는 건데 아쉬움이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그냥 하자. 생각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이미 커진 갭을 한 번에 메꿀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실력을 갑자기 늘릴 수도, 그렇다고 기대를 낮추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작게 시도해 보려고 했으나 한껏 높아져 버린 기대치가 자꾸만 날 붙잡았다. '높은 기대가 날 붙잡고 있다. 용기 내서 하자!' 단계까지 왔는데도 잘 되지 않았다. 돌아보면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얼마 전 부모님 집이 이사를 했고, 기존에 살던 집이 잘 팔리지 않아 수리를 해서 팔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분명 기회였고 셀프 페인팅이라도 해 볼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정된 예산으로는 내 머릿속의 그림을 완벽히 구현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 싶었다. 그냥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도 먼저 꾸며보는 게 당연한데 그러지 못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전셋집이기도 하고, 아이의 장난감들 때문에 한계가 보였다. 그렇다, 핑계는 찾으려면 끝이 없었다.  


내가 기대치보다 형편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인정해야만 했다. 부족한 실력으로라도 꾸준히 하려면 하고, 못하겠으면 깨끗이 포기해야 했다. 지금 실력으결과물을 만든다는 건 흑역사를 만드는 일이겠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야 흑역사도 들여다보게 되는 거니까. 더 늦지 않게 시작하는 게 중요했다. 전문가가 아닌데 부족한 게 당연하지. 시작한다는 게 대단한 거야. 스스로 계속 다독여 주기로 했다. 오랫동안 망설인 만큼 생겨난 이상과 현실의 갭이 메꿔질 때까지. 숨고 싶은 창피함을 견뎌내면서 나아가 보기로 했다.  


앞으로는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오랫동안 망설이는
바보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편]미세먼지를 체크하며 환기를 시키다 보니 





안녕하세요.

퇴사 후, 방황 중인 인생여행가쏭입니다.


100을 생각하지만 1만 실천하는 사람이에요.

글을 쓰면 10은 행동에 옮기지 않을까 싶어 글을 쓰고 있습니다.ㅎ


방황하는 1년의 시간이 허무하게 사라질까 두려워

[머뭇거림과 용기 사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7월 말까지 30개의 글을 포스팅할 예정이에요!


이후, 인생에서 가장 오래 머뭇거린 홈스타일링 도전

준비 중이며 관련해 8월부터 [셰어하우스 오픈기]를 연재할 예정이에요!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해, 불투명 상태지만요ㅜ.ㅜ)


진짜 하나 안 하나,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 눌러주시고ㅎ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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