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가고 싶으면, 마음껏 갈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다.
2024년 1월
통화 분 수, 문자 개수로 비용을 내던 과거와 달리, 어느 순간부터 카카오 모양을 흉내 낸 아이콘을 가진 어떤 서비스가 나타나더니 와이파이만 연결되면 비용 없이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그 당시 와이파이를 위피, 더블유아이에프아이 등 보편화되지 않아 부르는 표현도 각양각색이었다. 그 변화의 시기를 거쳐온 호텔이라면 아직 방에는 랜선을 꽂는 곳이 남아 있을 테지. 해외여행은 모두에게 주어진 옵션 사항이 절대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와 비교하자면 소위 여유가 있는 이들을 위한 여가생활이었고 시간과 비용적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 허용되던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명품 매장에 발을 들이기 힘들어하는 나는 항공권으로 나의 소비를 대신했다. 지금도 나의 소비 지출의 기준은 여전히 같으며 스마트폰으로 쉽게 여행을 할 수 있던 지금과 달리 지도를 보고, 지역민들에게 길을 물어 다니며 인터넷 없이 여행을 하던 사람들을 아직도 존경하고 동경한다.
나의 여행 메이트는 1962년생, 나는 1990년생. 우리의 나이 차이는 생각보다 갭이 있기 때문에 서로 함께 맞춰가야 싸우지 않고 이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기에 따라 바라보던 '여행'의 뜻과 가치가 다를 것이다. 처음엔 여행 선배로서의 책임감이나, 의무감은 버리고 놀다 와야지. 재미있게 놀다 와야지.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다가도, 여행 일정을 세우려고 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문뜩 찾아와 나를 시험했다.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의 대다수는 크루즈를 타고,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명소 '하롱베이'에 간다. (우리는 이번 일정에 가 하롱베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사파(Sapa)와 홍강 삼각주 지역에 위치한 닌빈(Ninh Binh)에 가기로 했다. 특히 행운이 필요한 사파는 고산 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마주할 수 있는 이색적인 환경 덕분에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평소 케이블카를 타거나, 고층에 올라가는 것에 대한 공포증이 없던 나는 나의 기준에 맞춰서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체류 기간을 2일과 3일 중 고민하면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던 와중에 고산지역이라 고생한 여행자의 후기를 읽었다.
그제야
그제야
그녀의 건강 특이사항이 생각났다. 바로 고혈압이다. 고산지대를 갈 때, 주의할 점이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여행은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평상시에 바라본 나의 여행 메이트는 일곱 자매의 장녀였고, 심지어 호랑이띠였기 때문에 내면은 여려도, 누구보다 강한 여자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외는 다르다. 그래서 평소 해외여행을 갈 때 저렴한 항공편을 우선으로 했던 나의 결정이 바뀌었다.
저가항공보다 대한항공으로 간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을 위해, 선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사회적 이익도 추구하며 좋은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돈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했었고, 돈으로 내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생각은 진즉 내려놓은 나였다. 이런 결정은 나에게 투자 한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부와 두둑한 용돈을 안겨주지 못해 마음 한편으로 미안함이 항상 있었다. 여행 메이트가 바로 나의 투자자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자기보다 우선순위를 챙길 때 놓친 세상을 지금이라도 더 바라볼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비행기를 타는 동안 기내식을 기대감을 가지고 먹기를 바랐지, 결코 영어가 통하지 않아 우물쭈물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언어와 환경에 있어서 좀 더 불편함을 덜고자 6시간이 넘은 항공편은 대한항공으로 결정했다.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나보다 상대적으로 여행 경험이 적고, 체력의 크기를 배려한 나의 결정이었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나에게도, 나의 여행 메이트에게도 후회 없는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