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간의 임정로드_Prologue
우리의 근현대사는 현대 정치권의 주요 싸움터 중 하나였고, 그 기능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정치부에서 뒹굴어온 기자의 눈에 비친 그들의 역사와 이념 논쟁은 과도할 만큼 치열했고 동시에 한심할 만큼 비겁했습니다. 저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그 어떤 정치세력도 정치인도 역사를 정치적 목적 없이 대했던 사례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공공의 공간에 글을 써내던 자로서 이 반복되는 문제적 현상에 그 어떤 시도나 역할에는 그동안 스스로 너무나 게을렀습니다. 한심하게 얕은 고민만 반복하던 그 순간순간에도 정치권이 패를 갈라 역사를 땔감 삼아 화력전을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낮에는 손으로 기사를 쓰고 밤에는 술로 반성문을 쓰던, 역량과 용기가 모두 부족했던 기자에게 넘치던 건 부끄러움이었고 간절했던 건 자긍심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참이나 뒤늦은 숙제를 이제야 해보려 합니다. 감히 사명감 같은 것을 입에 담으려 함이 결코 아닙니다. 그저 스스로 마음 한 구석에 쌓인 부채 비슷한 것을 털어내고자 함에 가깝습니다. 비겁함이 짓누르는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이기심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거창한 민족주의나 역사를 잊은 민족의 미래 같은 계몽을 부르짖고 싶음이 결코 아닙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 편을 가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스스로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다고 여깁니다. 사사로운 영달과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앞서 거론했던 비겁한 이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그저 궁금했습니다. 후대의 위정자들이 제 입맛대로 평가하고 이용하게 될지는 꿈에도 모른 채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무언가를 쟁취하고자 했던 이들의 흔적이, 그들이 품었던 뜻과 용기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무섭도록 강렬한 집념 같은 것들이 말입니다. 더 잘 해보고자 갈등도 다툼도 있었고 누군가 혹은 어딘가에 대한 서운함 그리고 아쉬움도 감내해야 했으며, 때로는 가슴 저림을 뒤로 하고 냉정해야만 했을 그들의 시공간. 감히 헤아리기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 최대한 가까이 가 닿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2024년 9월 5일 효창공원을 찾아 백범과 삼의사, 그리고 임정요인 묘에 인사를 마친 뒤 중국으로 출발했습니다. 상하이를 시작으로 자싱, 항저우, 전장, 난징, 창사, 광저우, 류저우, 구이린, 치장, 그리고 마지막 충칭까지 임시정부가 옮겨갔던 11개 도시들을 차례로 걸었습니다. 23일간의 시간 동안 눈에 보이는 것들과 가슴에 들이치는 것들을 서툴지만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가보지 않으면, 그곳에 있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수립 100주년을 훌쩍 넘긴 지금 시점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뒤쫓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를 일정 내내 스스로 묻고 또 물었습니다. 정답은 없겠으나 어제와 오늘, 작년과 올해,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다를 것이라는 게 가까스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이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역사의 현장을 찾는 일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나 사후 약방문을 쓴다는 개념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못내 부족한 이 글줄을 읽는 당신에게 어떤 방향으로든 크기로든 가슴속 추동이 일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