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ven Lim Aug 31. 2020

뇌에 있는 마음의 예민함을 관리하려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내가 이렇게 예민했다니...

‘타인은 지옥이다’란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나 가치관이 다른 여러 세대가 각자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선 누구에게나 납득 가능한 ‘공적 표준 거리’ 같은 게 없어서 더더욱 타인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매일매일 마주 보고 사는 아내마저 가끔은 고슴도치 가시처럼 따갑게 느껴질 때가 있는 걸 보면, 정말 사람 관계란 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질병으로 예전보다는 대면해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요즘, 그렇다고 해서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문자나 톡으로 만나야 할 사람과 이야깃거리는 더 늘었습니다. 게다가 표정과 몸짓, 말투 등을 통한 뉘앙스 전달이 어렵다 보니 더더욱 사용하는 문장이나 어구를 조심해야 합니다.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안할 때도, 때로는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함께 사는 세상은 참 신경 쓸 게 많고 피곤한 법입니다.     


그러던 중 사내 독서클럽에서 8월 함께 읽는 도서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만났습니다. 대놓고 ‘예민한 사람들은 지나치지 말고 꼭 보라’고 말하는 제목입니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을 좋아하는 제가 읽어봐도 괜찮겠다 싶더군요. 솔직히 저를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내 주변의 예민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바른 방향으로 안내하는 방법을 참고할 수 있겠군’ 하는 계몽주의적(?) 생각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분위기 좋은 창가 앞 책상에서 책을 펼쳤습니다. 귀여운 듯 무심해 보이는 고슴도치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저자는 전홍진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지난 10년간 1만 명 이상의 환자를 상담 치료해 온 분이라고 합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동안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예민한 사람들의 정신병적 증상과 대응방안들을 서술했습니다.

뇌과학이나 정신분석학 서적이면 으레 등장하는 뇌 구조를 간단히 설명하는 한편,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못 느끼고 무척 예민한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많다는 것, 이로 인해 신체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는 점을 이야기해 줍니다. 또 과거에 경험한 트라우마 때문에 현재의 경험과 사건, 대인관계에 위협을 느껴 예민한 뇌가 만들어지며, 타고난 예민성을 잘 조절해 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함을 설명합니다.

이어 자신이 만난 내담자들을 통해 ‘매우 예민한 사람’의 여러 유형을 소개하는 한편, 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극복한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이와 함께 예민함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들을 제안하고, 지금 삶의 걱정을 정리·관리해 에너지를 잘 유지하자고 강조합니다.     


이해하기 쉬운 책입니다. 서른 개가 넘는 ‘매우 예민함’의 유형을 전 교수가 직접 만나 치료한 인물들로 구성했기에 사례가 먼 데 있는 일 같지 않고 친근합니다. 오히려 사례들을 접하며 책 속 인물들이 저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 ‘너무 예민해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주변의 누군가가 바로 저 자신일 수도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지만 ‘나 역시 멜랑콜리아형 우울증 성향을 지닌, 전형적인 한국 사회 속의 환자구나’ 하는 깨달음이랄까요?     


실제로 책 뒷면과 본문에 어느 정도 예민한 사람인지를 진단해 보는 질문지가 있습니다. 지인 가족과 찾은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독서를 하고 자기평가를 해 보았지요. 그 결과 다른 셋보다 제 예민함의 정도가 더 높게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엄청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전 엄청 무던하고, 포용력과 이해심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체크리스트에 따르면) 그렇지 않더군요ㅠ.ㅠ 문득 부모님이나 아내, 주변 사람들이 많이 예민한 저를 잘 참아주고 있구나 하는 감사함이 더해졌습니다!^^   

예민한 정도를 스스로 평가해보는 체크리스트. 제가 아내나 친구들보다 훨씬 많을 줄이야... '예민함을 활용한 탁월한 기업가(?) 타입'이라 생각하렵니다~^^

책에서 제안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매우 예민함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의 핵심은 ‘드러내기’와 현재를 살기입니다. 즉 자신의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들을 꺼내놓고 이야기하고, 과거의 트라우마를 지금의 삶과 연관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특별한 방법은 아닙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지극히 일반적인 답안이지요. 그렇지만 결국 예민한 특성으로 인해 사람 사이에서 생긴 문제는 결국 사람 가운데서 해결할 수밖에 없기에 이 모범답안을 뚸어넘어 탁월한 비법을 찾을 순 없습니다. 사도를 좇다보면 마약, 폭력, 성적 타락 등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책 속 안면기형 환자를 비롯해 예민성을 극복한 여러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자신의 의지도 대단했지만,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참 중요했습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받아주는 관계를 통해 자존감이 더해가는 것입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세우는 공동체라고 할까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참 다행입니다. 우선 신앙이 있고, 더불어 주변에 들어줄 귀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제 예민함이 긴장과 걱정, 우울증 등으로 심화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엔 너무 말이 많은 것도 한몫 했을까요?^^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공포와 불안이 오늘 내 삶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인식만으로 깊게 각인된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민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좋은 기억을 쌓아 새로운 신경망으로 덧입혀 나간다면 과거의 트라우마는 수면 밑바닥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눈을 들어보면 지금 이 순간, 행복을 창출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영화와 독서를 즐기고, 좋아하는 지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 삶을 나누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실은 (가끔은 아닐 때도 있지만) 일도 엄청 즐겁습니다. 오늘에 관심과 촉각을 기울여 진실하게 살아내는 삶은 가슴 떨리는 기쁨을 선물해 줍니다.


타인은 피곤하지만, 나를 발전시켜주고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각할 여유가 부족했을 뿐.

예민한 자신을 알고 받아들이며, 함께 하는 상대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시간과 마음을 내어 읽어봤으면 하는 책입니다. ‘한 걸음 더 깊게 내디뎠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조금 남습니다만, 교양입문서적에 더 바라는 건 욕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을 아껴 글로 쓴 이기주 앤솔로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