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느껴지는 펍 Ye Olde Trip to Jerusalem
요즘 수제 맥주 열풍이 아주 뜨겁다. 맥주를 좋아하고 공부한 사람으로서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맥주에 관심을 가져준 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기쁘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더욱더 다양하고 좋은 맥주를 맛보고 맥주를 더 사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제 맥주의 인기로 최근에 다양한 수제 맥주 펍들이 개업을 했다. 수제 맥주 펍을 개업하려면 우선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수제 맥주 품목, 맥주 수량, 펍 위치 선정, 마케팅, 위생, 음식, 영업시간 등등 고민할게 아주 많다. 옛날 사람들도 이런 것들을 고민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고려시대 (918-1392AD)로 가보자. 고려시대에 펍을 개업한다면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 우선 고려시대에는 맥주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주를 팔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전통주를 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전통주를 보관할 것인지를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옛날에는 냉장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 술을 저장할 동굴이나 온도가 낮은 곳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직접 전통주를 만든다면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이며 재료를 어떻게 구매할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어떤 스타일의 펍을 개업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소박하게 테이블을 몇 개 설치하고 전통주를 파는 펍을 개업할지 아니면 다양한 전통주를 아름다운 한옥에서 즐길 수 있는 고급스러운 펍을 개업할지 재정상황에 따라 잘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고려시대 때 지구 반대편 영국에서는 어떤 펍을 오픈했을까? 1189년 영국 노팅엄(Nottingham) 도시에 Ye Olde Trip to Jerusalem이라는 펍이 개업했다.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잠시 쉬어갔던 곳으로 알려져 펍 이름이 Ye Olde Trip to Jerusalem이다. 지금도 운영을 하고 있는 펍이며 영국 에일 맥주와 다양한 주류를 즐길 수 있는 역사적인 펍이다.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1189년에 개업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 자리에서 약 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펍이 운영되었다. 한마디로 인류의 펍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약 800년 전 사람들도 나와 같은 곳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긴 역사만큼 이 펍은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바로 이 펍이 노팅엄 성 (Nottingham Castle)의 절벽과 여러 동굴과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펍 실내로 들어가면 동굴에 온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영국 도시에 비해 노팅엄에는 많은 동굴이 있는 게 특징인데, 약 650개의 동굴이 있다고 한다. 자연적인 동굴이 아니고 모두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이라고 한다. 영국 노팅엄에서 동굴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고 온도가 낮았기에 맥주를 저장하거나 술을 마시는 공간이었다. 또한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 때는 폭격기의 폭격을 피하는 방공호 역할을 했다고 한다.
펍이 동굴에 있다고 해서 펍 안에 들어가면 조명도 어둡고 귀신이 나올 거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펍 내부는 아늑하고 맥주를 마시기에 완벽한 공간이다. 1189년에 지었으면 무너질 법도 한데 나름 견고하다. 겁먹지 말고 맥주 한 잔의 여유를 즐겨도 된다.
기본적으로 영국에 있는 펍에 가면 10가지 정도의 다양한 생맥주가 있다. 우선 음식 시키기 전에 맥주 한 잔 주문하면서 Ye Olde Trip to Jerusalem만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옛날 사람들이랑 같은 곳에서 맥주를 마신다고 생각하며 이 펍의 역사를 한 번 더 느껴보자. 맥주 종류는 많은데 다 처음 보는 맥주라 어떤 맥주를 마실지 고민이 된다면 직원한테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 스타일을 얘기하고 맥주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된다. 직원이 친절하게 몇 가지 맥주를 추천해주고 테이스팅 잔에 맥주를 조금 따라 줄 것이다. 마셔보고 마음에 드는 맥주 한 잔을 주문하면 된다.
배가 고프다면 펍에서 영국 음식을 주문해서 맥주와 같이 즐길 수 있다. 필자는 영국 펍에서 먹는 영국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식 소고기 파이 (Beef pie)와 아름다운 엠버 색깔이 특징이며 고소하고 견과류 향이 나고 쓴맛이 적은 엠버 에일 (Amber Ale)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잘 구워진 파이와 부드러운 소고기 스튜는 완벽한 맛의 조화를 이룬다. 영국 노팅엄에 방문한다면 Ye Olde Trip to Jerusalem에 가서 역사가 있는 펍의 문화를 즐기면서 만약 고려시대에 펍을 오픈한다면 어떤 펍을 오픈했을지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