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먹기 전에 바로 한 것이 제일 맛있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하루 이틀 재우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갈비를 배즙에 담궈 놓는다든지 빵 반죽을 냉장고에 넣어둘 때가 그렇다. 레시피에는 보통 두세 시간 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세요 하고 써 있지만, 경험상 숙성(?) 시간을 더 늘인다고 해서 손해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시간의 경과가 한몫하는 요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밤늦게 요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늦은 밤 요리를 시작하는 것에는 낮이나 해질 무렵에 하는 것과는 다른 느긋함이 있다 (물론 수면 욕구가 강한 날에는 귀찮은 일이 되겠지만). 당장 해소해야 할 식욕을 느끼는 시간도 아니고 배고프다고 노려보는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내 템포대로 하면 된다.
지난 주에는 카포나타(식초와 설탕에 재운 채소 요리)를 만들 일이 있어서 자정 무렵에 요리를 시작했다. 주방에 큰 불은 끄고 카운터 위 작은 형광등을 켰다. 도마 위에서 양파를 반달 모양으로 썰었다. 두 줌 정도의 방울 토마토를 반으로 잘랐다. 샐러리를 잘게 토막냈다. 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스토브를 켰다. 준비한 채소를 약한 불로 익혔다. 약간의 올리브와 캐이퍼 몇 알을 넣었다. 식초와 설탕을 뿌렸다. 센 불로 바꾸고 기다렸다.
보통 요리를 할 때 가벼운 재즈라든가 보사노바라든가 장기하를 듣곤 하지만 자정 무렵에는 음악이 필요없다 (음악을 틀었다가는 방 안에 자고 계신 그분께서 항의할 수도 있다). 요리하면서 나는 소리가 가장 좋은 배경음이 된다. 어둡고 적막한 공간 속을 잠시 채우고 사라지는 이 소리가 참 좋다. 스스로 재촉할 필요도 없고 재촉하는 타인도 없는 조용한 순간이 더없이 만족스럽다.
여행을 할 때 가장 좋은 순간은 여행 전날인 것처럼, 요리도 먹기 전날 기분이 좋다. 칠십 퍼센트 정도 완성된 요리를 냉장고에 넣어둘 때의 설렘은, 세면도구와 잠옷만 빼고 거의 다 싸놓은 여행 전날의 수트케이스를 바라보는 기분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냉장고 선반을 메우고 있는 된장과 고추장을 한켠으로 치우고 간신히 마련된 빈 공간으로 카포나타가 담긴 용기를 밀어 넣었다. 냉장고 문을 닫았다.
닫힌 냉장고 문을 보며 카포나타 위에 뿌릴 잣과 곁들여 먹을 바게트 빵을 생각했다. 오늘을 생각하고 내일을 생각했다. 주방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