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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펜 Jan 21. 2018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문제를 알아내야 해

'오 자히르'를 읽고


1. “잠시 멈춰 서서 인생이 단지 이것뿐일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본 적은 없나요?” 


원하던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충족되지 않는 공허함을 느끼던 에스테르(주인공의 부인)는 해결되지 않은 인생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종군기자가 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고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며 전쟁터를 오가던 그녀는 어느 날 아무런 말도 없이 주인공을 떠나 아예 종적을 감추어 버린다. 


소설은 떠나버린 그의 부인을 찾기 위해 발자취를 따라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담아냈다. 그 과정 속에서 그 또한 그동안 외면해왔던 인생의 질문들에 마주하며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간다.



2. “자히르 = 눈에 보이며, 실존하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 신성 혹은 광기” 


소설의 제목인 자히르는 아랍어로 ‘집착’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소설 후반부에서 주인공은 자히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자히르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 내려온 모든 것 위에 고착된 것이다. 그것은 어떤 질문도 답변 없이 놓아두지 않고, 모든 공간을 점령해버리고, 우리로 하여금 만물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들, 흔히들 역사라고 불리는 것들은 어찌 보면 승자 혹은 누군가에 의해 왜곡된 이야기(자히르)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에 사로잡힌 채 본질적인 질문들은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개개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특정한 사회에 속해 그 사회의 이야기들과 관습으로 채워져 간다. 그리고 반문할 틈 없이 그 관습들의 일부가 된다. 어느 순간, 내 인생에서 내가 사라져 버리고 타인이 세워준 인생의 계획표에 따라 살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흔히들 말하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사랑)이란 그저 “사랑해”, “오늘 하루 수고했어”의 말뿐이면 충분한, 시간이 지나 편안함과 안정감이라는 말로 대변되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감정으로 해석되고 있다(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소설이 말하는 것처럼 그 감정들을, 그 상태들을 우리는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래 다 그런 것이고, 그렇게들 살아”라는 말에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들어 너무나 당연해서, 혹은 ‘내 일’이 아니어서 아무런 의문도 던지지 않았던 것들이 내 삶과 주변을 침범하는 것들을 보면서 문제의식과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나 또한 익숙함과 편함에 속아 관성에 젖은 사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삐딱하게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당연히 받아들여왔던 것들에 ‘왜?’, ‘어째서?’라고 의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 내가 살아온 인생,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에 대해 애초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은 내가 스스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판단하고 강요하며 관습으로 굳어진 것들이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성공한 삶이란 이런 것이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이 정도면 괜찮은 삶 아닐까”, "평범하고 모나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해, 남들도 다 똑같아." 라는 말들에 안도감을 갖지 말고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을 던져보는 것. 요즘 말로 ‘불편러’가 되는 것. 자히르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삶이 많이 피곤해지겠지만 이 물음 없이는 우리가 왜 살고, 왜 일을 하고, 왜 사랑하는지 등에 대한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없고 온전히 자기 자신인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3.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문제가 뭔지 알아내야 해” - 영화 '데몰리션' 中


이 소설을 읽고 영화 ‘데몰리션’이 생각났다. 영화 데몰리션에서 주인공은 교통사고로 부인을 잃게 되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억지로 눈물을 쏟아내려고 애를 써도 눈물 한 방울 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에 그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인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현재 자신의 삶에 있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러한 해체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존의 사고, 방법을 고수한다면 당연히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기존의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인생을, 인간관계를 꼼꼼히 해체해보는 것. 그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데몰리션


4. “그녀가 맨 처음 이 페이지를 펼쳤을 때 스스로 알게 되도록, 크리스티나, 나의 아내,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치오” 


위 헌사와 같이, 이 소설은 파울로 코엘료가 그의 부인에게 바치는 소설이다. 이 부부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이 소설에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담겨있는 것인지, 그들에게 서로는 어떠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의 부인은 이 소설을 읽고 어떠한 생각과 감정을 느꼈을지.  


자꾸만 남의 러브 스토리가 궁금해지는 것이 나도 어서 연애를 해야겠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문제가 뭔지 알아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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