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먼 과거의 노래가 되길
사람들이 특정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노래를 들을 때 과거에 그 노래를 들었던 시공간적 배경과 연관된 기억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본인이 사랑하는 노래들은 연관된 감정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정 노래를 정말 좋아하면 그만큼 많이 듣게 되고, 유발되는 기억들은 닳아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의 경우 조금 특별한 노래들이 있다. 간헐적으로 듣게 돼서 기억이 닳아지지 않거나, 그 속도가 더디게 진행되는 곡들이랄까. 여기서 간헐적이라는 것은 ‘겨울’ 에만 찾아 듣는다는 의미다.
매년 11월 즈음, 출근하기 위해 밖을 나서서 첫 숨을 딱 들이쉴 때 한기를 품은 공기가 콧속으로 스며드는 순간이 있다. (나는 평소 이를 두고 겨울 냄새가 난다고 표현한다.) 겨울이 온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바로 플레이리스트에 몇몇 노래들을 추가한다.
- 처절하게 외로웠던 독일에서의 시간들을 생각나게 하는 Tom Odell의 Make the Moment Last
- 몽환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드는 Lana del ray의 Love나 Young and beautiful
- 아이슬란드 여행 내내 들었던 James bay의 Scar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OST인 Stay Alive
- 혹은 검정치마의 Hollywood, Everything
호르몬의 장난일까, 아니면 내겐 유난히 굴곡이 많았던 계절이어서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위 노래들은 겨울이 오면 항상 찾아 듣게 된다.
어린 시절의 겨울은 온 세상이 하얗고, 엄마가 만들어줬던 핫초코가 생각나고,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듣는 계절이었는데 어느새 그 위로 외롭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덧칠해졌다.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봐도 특정 시점이 딱 떠오르진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겨울이 되면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내 마음을 어찌할 줄 몰랐고, 외로움에 사무쳐 침대에 몸을 파묻고 하루 종일 노래만 들으며 잠에 들기만을 기다렸다.
이번 겨울은 얼마나 또 지독하고 힘들까.
긴 시간 함께해온 나의 '겨울 노래'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추억할 수 있도록 이제는 조금만 더 먼 과거의 노래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