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조금 더 음미하고, 조금 더 오래 머물러야지.
나는 강원도 강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보통 강원도에서 살았다고 주변에 말하면, 열에 여덟은 '그럼 감자 캐먹고 자랐냐'고 도발한다. 갓 상경한 아마추어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욱하곤 하지만 프로페셔널한 나는 동요치 않고, '너님이랑 똑같이 쌀밥먹고 자랐다'고 침착하게 응수하는 편이다. 하지만 어쨌든 강릉은 당시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서울과 차이가 있기에 유명한 음식점이나 외국에서 들어온 프랜차이즈 가게들을 구경하는 것은 많이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영화를 보다가 미국 경찰관들이 길거리에서 커피와 도넛을 먹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강릉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소년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바로 도넛을 동경하게 되었다. 단순히 맛 보고 싶다는 감정이라기보다 도넛이 이국적인 서구 문명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 영화 속 장면을 잠깐 회상해보면 아래와 같다.
'멋스러운 고층 건물이 줄 서있는 뉴욕 길거리 한복판에서, 경찰관 둘이 순찰차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온다. 인도쪽으로 내린 경찰관이 파트너가 차를 끼고 돌아 오는 것을 잠깐 기다린 후, 둘은 나란히 도넛 가게에 들어선다. 청량한 종소리를 내며 들어선 가게는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에 점원은 빨간색 스트라이프 무늬의 앞치마를 매고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고 있다. 둘은 잠시 모자를 벗고 계산대 근처에서 익숙한 듯 잡담을 나누다, 커피와 도넛을 챙겨 밖으로 다시 나온다. 그리고 순찰차에 기대어 도넛을 한 입 베어먹고 뜨거운 커피잔에 살포시 입을 대고 마신다.'
어떤 영화였는지 제목이나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유난히도 그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위 장면과 더불어 내 도넛에 대한 열망을 한껏 고무시킨 것이 있었는데, 바로 던킨 도너츠 TV광고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커피 (한 템포 쉬고) 앤 도넛, 던킨 도넛츠" 라는 광고 카피는 하루종일 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광고 속에서 커피와 도넛을 들고 다니는 바쁜 현대인의 모습은 내 로망이 되었다. 그 이후로 TV에서 던킨 도너츠의 광고 카피가 들릴 때 마다, 그 소리들은 내 달팽이관을 지나 식도를 거쳐 왼쪽 가슴 한 켠에 설레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 내가 13살이 되면서 강릉을 떠나 무려 서울 강남의 한복판, 대치동으로 이사오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이 실현되었다. 어머니, 형과 함께 전학갈 학교의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온 동네 서점을 뒤지고 다니던 날이었다. 녹초가 되어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글씨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글씨는 정확히 알파벳 'D'로 시작했고, 흰 바탕에 주황색과 분홍색 글씨로 쓰여 있었다. 내 심장이 조심스레 콩닥이기 시작했다.
'DUNKIN DONUTS'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던킨 도넛츠의 영롱한 간판을 마주하게 되었다. 투명한 창 안으로는 TV에서만 보던 형형색색의 도넛들이 진열대 위에서 기분 좋은 낮잠을 자듯 누워 있었다. 그 순간 CG처럼 주변 배경이 뉴욕으로 바뀐 것 같았고, 이미 내 심장에는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어머니 팔을 잡아 당기며 길거리 한복판에서 소리를 질렀다.
'우오오오와 !!!!! 엄마!!!! 던킨 도넛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그 순간과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집 안 욕조에 있었고, 나는 길거리 한복판에 있었다는 것. 내가 환호하는 그 순간 주변 행인들의 모든 시선이 우리 가족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곧 둔탁한 소리가 길거리에 울려 퍼졌다.
"퍼억!"
형은 쪽팔린 기운을 모아 풀 스윙으로 내 뒷통수를 후려 쳤고, 난 두개골이 흔들리리면서도 던킨 도너츠 간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너무 서러워서 닭똥같은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형은 행인들에게 나와 혈연관계임을 부정하기 위해 얼른 자리를 피해 집으로 돌아갔고, 거리에 남겨진 나는 눈물을 훔쳐내며 다음 생에는 반드시 형의 형으로 태어나겠다는 다짐을 했다.
당시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강원도 동해에 계셨고 엄마와 나, 형 셋은 서울에서 생활하는 주말 가족? 생활을 했다. 언젠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이 짠내나는 에피소드를 말해줬나보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서울에 왔다가 다시 동해로 돌아가는 날, 항상 나를 그 던킨 도너츠 가게로 데려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트 모양의 분홍 색깔 도넛과, 연유 크림이 들어간 초코바 도넛, 하얀 가루가 묻어져 있는 통통한 도넛, 그리고 오리지널 도넛을 쟁반에 꽉꽉 채워 담아 수줍어하며 계산대에 올렸고,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만큼 다 사주고 가셨다. 그렇게 2~3주에 한 번씩 올라 오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는 나의 두 손에는 항상 던킨 도너츠의 로고가 그려진 종이 봉투가 들려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 서울에서 보낸 시간이 강릉에서 보낸 시간의 세배 가까이 되었다. 어른 서울 사람이 다 된 지금의 나는, 이제 별 다른 꿈을 꾸지 않고서도 새로운 것들을 쉽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열망하는 대상의 스케일도 커져 자동차나 집 따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커진 스케일의 크기와 반대로 가슴 한 가운데가 도넛처럼 뻥 뚫린 것 같은 허전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경험하고, 덜 흔들리게 되었지만, 그 반대 급부로 순수했던 그 시절과, 작은 것 하나에도 웃고 울고했던 날것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가끔 순수했던 기억들이 고개를 내밀때면 반가우면서도, 점점 흐려지고 멀어지는 것만 같아, 그리고 다시는 마주칠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애틋하고 아려온다.
언젠가 운이 좋아, 다시 도넛같이 소박한 무언가를 순수하게 열망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음미하고, 조금 더 오래 머물러야지. 세월에 무뎌진 오감을 다시 곤두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