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과 후의 가정
어제 작은 사건이 있었다. 엄마가 잠깐 집으로 오셨고, 그 잠깐이 길어져서 차라리 아기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빨리 가주시라고는 말 못 하겠고, 온라인 예배 드리던 중이어서 한 말이었다. 그랬더니 1분이 지났을까, 아기가 엄청 우는 것이었다. 엄마도 어쩔 줄 몰라서 당황하시고.
엄마가 아기를 아기 침대 안으로 넣으시려다가 아기 다리인지 발인지가 난간에 끼여 생긴 일인 것 같았다. 아기 예방접종날에만 들었던 격한 울음소리였고, 나는 당황하는 엄마를 붙잡고 '엄마가 당황하시면 안 된다'라고 말한 뒤 아기를 넘겨받았다. 그날 아가는 밤 12시까지 제대로 잠들지를 못해서 우리 부부에게 힘들었던 날이었다.
휴. 다른 사람에게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엄마는 감사하고도 어려운 분이다. 부탁이라면 편하게 할 수 있고, 말하지 않아도 내 걸 먼저 생각해 주시는 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럽다. 어떤 사건을 말했을 때, 불안이 높으셔서인지, 내가 생각지 못한 부정적인 해석을 내놓으실 때도 있다. 그래서 편한 대화 상대는 아니었다. 또 너무 바쁘셔서 대화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9시쯤 퇴근하시면 씻고 TV 보시거나 직장에서 가져온 일거리를 자정까지 하시곤 했다. 두 경우 모두 말 걸면 방해하는 셈이 되곤 했다.
한편 엄마는 헌신하시는 분이다. 직장에서도 남들에게 도움 될 만한 게 있으면 그걸 먼저 하고 본인 걸 하시느라 더욱 바빠지신다고 하고, 집에서는 본인이 정하신 일은 무리해서라도 해내시는 분이다. 그래서 항상 드리는 말씀이 '너무 힘들게 하진 마시라'는 말이었다. 엄마 스스로의 높은 기준 때문에 빠르게 피곤해지시는 것 같았다. 집안에서는 엄마의 생기 있는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결혼 전 가정을 생각해 보면 무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기쁜 적도, 웃었던 적도 없지만 그래도 의식주는 해결되었던 공간이었다. 건강하게 먹으라고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야채를 많이 씻어다 놓으셨고, 내가 사달라고 하는 먹거리들을 사놓으셔서 평일엔 알아서 잘 해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과 대화는 별로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모인 게 가정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과 가정을 꾸린 후 많이 바뀌었다. 그에게는 연애 때부터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모두 얘기한다. 그와 같이 살면서 집에서는 대화가 항상 흘렀고,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도 기쁨과 웃음이 생겼다. 아기를 낳고 나니 더 많은 일거리가 가정에서 생겼지만, 그걸 같이 하는 과정에서도 즐거움이 있다. 한 번은 기저귀를 가는데 '사즉생 생즉사'라는 말이 나한테서 튀어나와 남편과 나 모두 빵터진 적이 있다. 그 당시의 맥락은 '내가 (기저귀를) 간다고 나서면 똥이 아닐 것이다'는 뜻이었다. 하여튼 가정이 참 좋은 곳이라는 걸 느낀다.
전이 있어서 후의 가치가 더 빛나는 것 같다.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