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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Dec 07. 2021

냉장고에 간식을 숨기는 엄마

백번의 힐링다이어리

최근에 3일을 앓아누웠다. 생리주기가 20일로 짧아지고, 그때마다 이틀은 꼬박 아팠는데, 이번에는 주말에 고된 일정을 소화하느라 몸살까지 겹쳤는지 3일 동안 아팠다.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생리 끝나는 날 산부인과에 찾아가 피임시술을 받는' 계획을 세웠다. 이제 정말 참을 만큼 참았다. 한 달에 3-4일을 아파서 누워있으면 밀린 일감은 그대로 내 몫이 되니까. 내 몸을 내 의지로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계속 잠을 잤다. 꼭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계속 잘 수 있었다. 빌 헤이스의 <인섬니악 시티>라는 에세이가 떠오른다. 그래, 어쩌면 올리버와 빌은 불면증 때문에 더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잘 수 없는 고통을 서로 공유하면서. 반면에 난 참 잘 자는 사람인데 그동안 일에 치여서 잠을 계속 줄여왔었지. 하루라는 시간을 쪼개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사는 요즘이다. 그러다가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자, 이제 좀 쉴 시간이야. 칸쵸~.' 일중독으로 365일 노동하는 내가 하루 종일 잠을 자다니 놀랍다. 아픈데, 불안한데, 이상하게 행복하고, 기분이 좋았다. 다행히 특별한 스케줄이 없었다.


산부인과에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이 진료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진짜  줄은 몰랐을까? 아는 의사 선생님한테 아무렇지 않게 부인과 진료를 받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처지를  아는 사람이니  세심하게 진료해 줄거라 믿었다. 다행히도 내가 생리  두통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캐치하고, 적당한 피임약을 처방해주었다. 오랜만에 산부인과 진료를  터라 자궁경부암 검사도 했다. 그리고 작은 근종이 2 정도 있다는 사실과 그게 아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매일 아침 피임약을 챙겨 먹는 일은  평생 처음이다. 피임을 진작에 했더라면 지금  고생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낳은 아이들은 귀엽고 예쁘니 어쩔  없이 기쁘게 키워야 한다. 눈물 또르륵. 피임약, 과연  챙겨 먹을  있을까?

병원에 다녀왔더니 둘째와 셋째가 몸이 간지럽다고 흥분되소리친다. 이상하게 모기 물린 것처럼  여기저기에 수포가 올라온다. 저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소아과에 갔다. 수두 같다고 했다. 학교에   없단다. 약을 받아와서 아이들 몸에 하얀 칼라민 약을 발라주었다. 아이들은 히히 웃으며 스스로 약을 바른다. 학교에  가도 좋으니 만화영화  편만 보여 달라고 조른다. 학교 선생님들이 싫어하시는 협상에 들어간다. "  편씩 써봐 그러면 보여 줄게." 막둥이는 시를  편이나  갖다 바친다. 최근에 베껴 쓰던 노은님 화가의 시랑 비슷하게 써온다. 비슷해서 우습지만,진지한 아이의 시를 비웃을 수는 없어서 한번 읽어보고는  썼다고 칭찬 했다.  표정이 너무 밋밋해 보였을까?


아팠던 동안, 나물에 밥을 비벼먹고, 영양제를 챙겨 먹고, 에센셜 오일을 정성을 다해 마사지해 발랐다. 술과 커피를 끊어내고, 가공식품도 빵도 먹지 않았다. 몸무게 1.5킬로가 줄어들었다. 몸에 있던 염증들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다. 꼭 기도원에 다녀온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두통은 약간 남아있었다. 걸을 때마다 머리가 흔들흔들. 아이들은 아팠던 엄마가 일어나서 일하고, 밥하고, 숙제를 시키고, 청소를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엄마는 늘 아파 누웠다가도, 알아서 일어나서 식사를 챙겨주고, 알아서 일하러 나가는 존재다. 엄마가 밖으로 나가면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고, 가끔은 요리도 해 먹는다. 교통카드로 편의점에 가서 달콤한 음료수와 컵라면도 사 먹을 줄 안다. 도서관에 가서 만화책도 실컷 읽고 오고, 친구들을 만나서 보드 게임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제 아이들은 훌쩍 커 버렸다.

갤러리에서 일요일에 작가님을 초청해 특강을 했다. 힐링 다이어리 멤버이신 지원님이 오셨다.  시간 특강인데 작가님이 2시간 30분을 쉬지도 않으시고 강연을 했다. 중간에 나가야 하는 지원님이 내게 톡을 보내왔다. 직접 구운 호두 파이를 두고 가니  먹으라고 하신다. 지난번에 구워준  아이들이 홀랑  먹어버려서 나는 맛도  봤다고  말을 기억하셨구나. 지원님은 내가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이번에는 애들 주지 말고  먹어보라고 하셨다.  말에 감동 받아 나는 마음을 단단히 굳게 먹었다. 호두파이 상자를 집으로 가져왔다. 갤러리에 두면 분명 손님 오실  꺼낼게 분명하니 집으로 가져가야 한다.


집에 와서 보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호두파이 보자마자 5개를 다 먹어치울게 뻔한 둘째 녀석에게 들키지 않고 냉장고에 잘 넣어야 한다. 안쪽 깊숙한 곳에 상자를 밀어 넣었다. 맛없어 보이는 당근 옆에 무심히 두고 쌀 봉투로 가려 놓으면 설마 모르겠지. 일단 하나 꺼내서 먹어보고. '아~ 이런 맛이었구나~' 지원님의 베이킹 솜씨에 놀라고. 예전에 두 번이나 만들어준 버블티도 떠올려본다. 도대체 이분은 못하는 게 뭔가. 천재인 것 같다.  힐링다이어리 멤버들 중에 신기한 재주가 있는 분들이 많다.

식탁 생활자 : 술마시고, 커피마시고, 책도 읽고 밥도 먹는...

다음 ,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 차리고, 아이들 병원도 다시 다녀오고, 저녁 먹고, 숙제를 시키고, 양치시켜서 재웠다. 그리고 숨겨둔 호두파이 상자를 꺼냈다. 4개가 고스란히 들어있기를 기대하고 열었다. 설마,  먹어 버리지는 않았겠지? 둘째 녀석이   먹었을  같다는 예감은 들었기에 설마~ 하면서 열었다. "~ 있다, 있어. 2 남았다!" 기쁨의 눈물이  . 상자에서 호두파이 2개를 꺼냈다. 하나 남겨두면 내일 뺏길게 분명하기 때문에 오늘  2 모두 내가 먹어야 한다. 자러 갔던 둘째가 다시 슬쩍 나오더니  호두파이를 힐끔 쳐다본다. ", 호두파이? " (시치미 떼는   보소.)

"두 개 다 엄마 거다. 건드릴 생각하지 마~!"


간식을 냉장고에 아무리 깊숙이 숨겨두어도  걸린다. 둘째의 식탐 레이더 망은 피해   없다. 어쩌겠나. 식욕이 태어날 때부터 좋은 아이였는데. 2돌이 되기 전에 식욕이 떨어지면서 많이 아팠던 시기를 생각하면 식욕이 왕성해서 간식 뺏기는   맘은 편하다.  아픈  딘가? 건강하니 감사하다.

피임약을 먹은지 4일이 되었다.   산부인과에서 "생리를 멈추고 싶으신 거죠?"라고 물었을 ,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대놓고 물을 줄은 몰랐다.  말에 내가 이렇게 놀라게  줄도 몰랐다. 아직도 나는  몸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일까? 멈추고 싶으면, 멈출 방법이 있으면 멈추어도 되는데, 그저 고생스럽게 참는 것만이  선택지에 있다고 생각했었나. 머뭇거리긴 했지만,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도 아프고 고생스러운  싫고, 맛있는  먹고 싶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그걸 나이 마흔이 지나서야 알게 되다니.

서로 말을 놓지는 않지만, 동갑내기 지인이 갤러리 특강하는  와서 선물을 놓고 갔다. 겨울만 되면 뭔가 따뜻한  주고 간다. 올해로 알고 지낸지 4년이 넘었는데  애틋하고 고맙다. 선물로 답하기 보다는 같이 맥주한잔 하자고 전화를 해야겠다. 바쁘게 지내다 겨울이 온줄도 몰랐는데, 작은 선물이 오고가면서 실감한다.  겨울도 따뜻하게 서로를 돌보며 지내야겠다.


#힐링다이어리

#빨강장화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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