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사람 여행
미국에서 지낸 2년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었다.
1년 반 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언제 이 분들을 다시 뵐 수 있을까 생각하니 떠나기도 전에 그리움이 덮쳐 와 아이 둘과 나,짐가방 6개를 공항까지 실어다 줄 택시 앞에서, 배웅해 주시던 Hide할머니와 껴안고 펑펑 울었었다. Hide는 미국 생활 중 만나게 된 가장 소중한 세렌디피티였다.
집 렌트도 빼고 떠나기 전 며칠 간을 할머니 집에 머물게 해 주시고, 차도 처분한 우리를 어디든 데려다 주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짐을 싸 주시고, 짐싸기를 겨우 마치고 공항 가기 전 마지막 저녁식사까지 사 주신 Hide. 소중한 의미가 담긴 몇 가지 선물을 건네드리자 눈물 쏟으시던 모습이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각난다.
이제는 마음의 고향이 된 캘리포니아로 1년 반 만에 다시 온 가족이 함께 비행기를 탔다. 그 곳 친구들과의 추억이 한가득 담긴 나의 책을 들고. 7월에 출간된 책을 선물해 드리며 감사를 전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큰 목표였다.
미국에 갈 당시 2학년이던 큰 딸 민주는 지금 5학년이다. 민주는 지난 겨울 히데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혼자 씩씩하게 할머니댁에 석 달 간 다녀 왔지만 남편과 나, 둘째 YJ은 떠나오고 처음이다.
우리의 도착일에 마침 히데 할머니는 동부 여행 중이시라 떠나기 전 이웃에게 집 열쇠를 맡겨두시고 집을 통째로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 우리가 일주일 간 애리조나 여행을 마치고 온 다음 날 Hide도 집으로 돌아오셨고, 마치 친정 엄마네 간 듯 내내 할머니댁에 머물렀다. 매 끼니 식사도 만들어 주시고 할머니 방의 제일 편한 침대도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 마치 떠난 적 없었던 것처럼 예전의 편안함 그대로이다.
친구 Hong은 우리에게 3주 내내 본인 차를 빌려주었다. 2만 km도 타지 않은 새 차와 다름없는 인피니트를!
Ed는 텐트, 침낭, 겨울재킷까지 모든 캠핑용품을 완벽하게 빌려 주어서 무려 40도의 기온차가 난 눈 덮인 그랜드캐니언에서 캠핑을 할 수 있었고,
'겁 없이 살아 본 미국'의 표지 가족사진을 찍어주셨던 사진 작가 Robin은 언젠가 다음 책에도 실리기를 바란다며 또 한번 가족사진을 선물로 찍어주셨고, 올해 땡쓰기빙은 함께 하지 못하는 대신 예년과 같이 홈메이드 땡쓰기빙 음식(칠면조, 스터핑, 그레이비, 크랜베리 소스, 애플파이, 펌킨파이)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셨으며,
애리조나로 이사 가신 Sue는 이사간 집의 첫 번째 손님으로(심지어 Sue의 대학생 딸도 아직 새 집에 가보지 못했다) 우리를 초대해 주셔서 커버도 뜯지 않은 새 침대를 내어주셨고,
Sally는 휴가 차 가신 리조트로 우리를 초대해 주셔서 덕분에 좋은 리조트에서 뜻밖의 휴가를 함께 즐기게 되었고, 캘리포니아에 돌아와서는 토랜스 바닷가로도 초대해 주셨으며,
Sherry는 애리조나 카우보이식 식사를 맛보여 주시겠다며 초대해주어 아들 가족까지 모두 불러 다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여름에 한국으로 여행와 우리 집에 묵으셨던 Ann은 애틀랜타에서 Hide집으로 의미 깊은 선물을 보내 주셨으며,
Hide의 언니 Kiku와 남편 Leo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와주셨고,
올해 초 멕시코 크루즈 선상에서 90세 생신파티를 하실 때 미국에 있던 민주를 초대해 가족여행에 데려가 주셨던 Beth는 이번에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셨고,
Gym친구들은 우리에게 송별회를 열어 주었던 장소에서 환영파티를 열어주었고,
Frida가족과 Aiperi 가족과 Karen가족은 집으로 초대해 정성스러운 홈메이드 식사를 만들어 주셨으며,
Rae는 잠깐이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러 와주었고
많은 한국 친구들도 멀리서 일부러 와 주었다...
모두들 책 내용을 너무 궁금해 하셔서 친구들이 등장한 부분은 영어로 번역해가서 나누어 드렸더니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책에 내용과 사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진심으로 환대해 주시고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해 주는 친구들 덕분에 가슴 한가운데서 자주 뜨거운 것이 울컥했다.
떠나는 날 Hide와 언니 내외인 Kiku, Leo를 모셔 두고 가족 넷이 큰 절을 올렸다. Kiku할머니와 Leo할아버지는 큰 절이 어떤 것인지 몰라 신기해 하시면서도 눈물을 훔치셨고, Hide는 이제 한국식 큰 절이 무엇인지 잘 아신다. 내년에 한국을 방문하시기로 약속한 Hide와 몇 달 후면 재회할 것이라 이번만은 헤어짐이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감사함과 따뜻함과 그리움과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기원하는 마음이 한데 버무려져 이번에도 또 어김없이 뜨거운 눈물이 삼켜지질 않았다.
오직 사람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사람에 대한 감사함만 가득 안고, 다시 돌아왔다.
'넓은 것은 오지랖, 깊은 것은 정, 많은 것은 흥 뿐이고
좁은 것은 세상, 얇은 것은 지갑, 적은 것은 겁 뿐인 가족'
<'겁 없이 살아 본 미국' 책은>
평범한 40대 회사원 남자가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 입학부터 졸업하기까지,
10년 차 워킹맘이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 무료영어강좌에서 수십 개 나라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알파벳도 구분하지 못하던 큰 딸이 2년 만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완독하고,
Yes/No도 모르던 작은 딸의 미국 유치원 적응기까지, 다양한 미국의 교육 현장 이야기와
전화도 터지지 않는 서부 국립공원 열 곳에서 한 달 이상의 텐트 캠핑,
현지인들과의 소중한 인연,
경험이 없는 덕분에 좌충우돌 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을 생생하게 담은 책.
출간 두 달 만에 2쇄 인쇄. 브런치 글 100만 뷰.
페이스북 팔로워 1400명(www.facebook.com/MKLivingUSA)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리워지는 장소와 사람과 음식이 생겼고
나이와 국적에 대해 견고하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친구 삼을 수 있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서로 다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며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고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당황해서 주저 앉아 울고만 있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이 결국은 '성숙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