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ck or Treat
10월의 마지막 날은 핼러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의 핼러윈을 경험했고, 올해는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지난주까지 미국에 있으면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끼다가 돌아왔습니다. 즐거웠던 핼러윈의 경험을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코스튬 퍼레이드가 단연 하이라이트.
핼러윈을 앞두고 둘째의 프리스쿨에서는 아이들부터 선생님들까지 모두 코스튬을 입고 잔디밭에 앉아 무시무시한 마녀 이야기책을 함께 읽은 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점심으로 피자를 주문 시켜 먹었다. 식사 후에는 각자 코스튬을 뽐내며 커뮤니티 센터를 한 바퀴 도는데 직원들이 모두 캔디 바구니를 들고 나와 아이들에게 캔디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선생님들의 손가락 공연 (puppet show)도 이어진다.
동네에서는 꽤 큰 규모의 핼러윈 퍼레이드를 연다. 이 때는 각자 준비한 (어떤 참가자들은 오랜 시간 공들여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빌리지를 천천히 행진하며 아이들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사진 찍고 즐긴다.
핼러윈이 다가오면 곳곳에 펌킨 패치가 생겨난다. 키 높은 옥수수는 미로 탈출 놀이(Corn Maze)를 하기에 안성맞춤. 미로에 들어가 바쁘게 통로를 찾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어른들의 발도 함께 바빠진다. 건초더미 위에 기어올라가 풀썩 점프하기도 하고 미끄럼을 타기도 하지만 푹신해 다칠 염려가 없다. 작은 동물들을 만져보는 페팅 주도 인기이다.
초록의 넓은 들판에 가득 널린 짙은 오렌지색 호박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맑아지는 느낌.
호박을 조각하여 잭오랜턴(Jack-O'-Lantern)을 만들거나 예쁘게 꾸미는 콘테스트가 곳곳에서 열린다.
우승 상품은 또 호박!
유치원에서도, 동네에서도,
낮에도, 밤에도,
Trick or Treat!! (캔디 줄래? 아니면 장난친다!!)를 외치는 엘사와 스파이더맨, 몬스터들로 붐빈다.
큰 딸 클로이는 친한 카페 사장님 덕분에 카페 앞에서 손님들에게 캔디를 나눠주는 역할까지 해보았다. 캔디 받는 재미에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지쳐서 오더니, 앉아서 초콜릿 나눠주고 심심하면 하나씩 까먹는 것이 더 재미있음을 깨닫고는 꿈쩍 않고 앉아 나눠주는 쪽을 택했다.
차 위에는 해골을 싣고 다니고, 집집마다 정원에는 온통 비석과 유령 장식이 가득하다. 카페 유리창에도 해골이 있다. 세 살이던 둘째는 겁도 없이 해골 갈비뼈를 살살 만져보았다.
한 달치 생활비를 몽땅 핼러윈 데코레이션에 쏟아붓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당과 집 전체에 번쩍이는 조명을 설치하고, 콘서트 무대장치에나 쓸 법한 엄청난 양의 연기를 계속 뿜어대고, 커다란 스피커로 으스스한 유령 소리가 흘러 나오게 꾸민 집들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이다. 아이들은 늦도록 줄을 서서 캔디를 받아간다. 클레어몬트는 밤에 주택가에 가로등도 켜지 않고 상점들도 네온사인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이 날만은 번쩍이는 핼러윈 장식이 더욱 돋보인다.
낯선 사람들 수백 명에게 본인의 집을 개방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현관문을 열고 집 안까지 개방하여 거실에서 캔디를 나눠주는 분들을 뵈니 다음 날 찾아가 감사인사라도 드려야 하나 고민했다. 아마도 이제는 미국에서도 집을 개방하여 캔디를 나눠주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동네가 많지 않을 듯 싶다.
이쯤 되면 하나 정도 사 줘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어딜 가든, 어디로 눈을 돌리든 온통 호박. 호박. 호박이다.
마켓에는 Trick or Treat 때 나누어 줄 대용량 캔디나 초콜릿을 판매하는 코너가 별도로 크게 마련되어 있다.
**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핼러윈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분들도 계시겠으나, 미국에서 핼러윈은 점점 원래의 의미보다는 모두가 즐기는 파티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듯 하다(미국도 물론 지역마다 가정마다 다르겠지요).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돌이켜보니 저희 가족과 함께 핼러윈을 즐겼던 친구들도 각각 크리스천, 무슬림, 불교 신자들이었네요 ^^;;
큰 아이의 학교에서는 핼러윈 행사 대신에 학생들이 교과과정 중에 배웠던 내용 중 테마를 잡아 직접 마스크를 만들고, 각자 마스크를 쓰고 전교생 앞에서 행진하는 Mask Parade를 했다.
'넓은 것은 오지랖, 깊은 것은 정, 많은 것은 흥 뿐이고
좁은 것은 세상, 얇은 것은 지갑, 적은 것은 겁 뿐인 가족'
<'겁 없이 살아 본 미국' 책은>
평범한 40대 회사원 남자가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 입학부터 졸업하기까지,
10년 차 워킹맘이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 무료영어강좌에서 수십 개 나라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알파벳도 구분하지 못하던 큰 딸이 2년 만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완독하고,
Yes/No도 모르던 작은 딸의 미국 유치원 적응기까지, 다양한 미국의 교육 현장 이야기와
전화도 터지지 않는 서부 국립공원 열 곳에서 한 달 이상의 텐트 캠핑,
현지인들과의 소중한 인연,
경험이 없는 덕분에 좌충우돌 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을 생생하게 담은 책.
출간 두 달 만에 2쇄 인쇄. 브런치 글 100만 뷰.
페이스북 팔로워 1400명(www.facebook.com/MKLivingUSA)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리워지는 장소와 사람과 음식이 생겼고
나이와 국적에 대해 견고하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친구 삼을 수 있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서로 다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며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고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당황해서 주저 앉아 울고만 있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이 결국은 '성숙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