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화를 잘 그리려면
뭐든 잘 해야 재밌다.
성과가 생각한 바에 이르지 못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취미는 그냥 즐기는 것 같지만 우리는 생업이 아닌 취미에서도 사실은 성과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계속하는 것은 보통 의지력으로는 힘들다. 오히려 생업은 돈이라도 벌지. 돈도 안 되고 해 봤자 늘지 않는 것을 계속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흥미로 그림을 시작했어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길 기대한다. 처음 한 두점은 영 그림같지 않아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넘어가게 되어도 변화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이래서 공부도 잘 하는 아이가 더 잘 하게 된다. 성취감이라는 도파민이 인간에겐 최고의 도파민이고 꾸준히 함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흥미로 시작했다가 재능없음만 확인하고 포기하지 않도록 단기 성과를 위한 팁을 드리려 한다. 즉, 나 생각보다 소질있는데 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을 팁.
첫 째, 동양인보다는 서양인 얼굴이 그리기 쉽다.
보통 동양인은 선이 가늘고 이목구비가 서양인만큼 또렷하지 않다. 그래서 특징을 잘 잡지 않으면 닮게 그리기가 쉽지 않다. 서양인들은 이목구비가 굵직굵직하면서 또렷하다. 그래서 디테일을 다소 놓치더라도 얼추 비슷하기가 쉽다. 동양인은 선이 가는데다 이목구비도 아담하여 이목구비 위치를 조금만 잘 못 잡아도 영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래서는 재미가 없다.
둘 째, 여자보다는 남자가 그리기 쉽다.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그리기 쉬운 이유와 같다. 여자는 선이 가늘어서 조금만 틀어져도 다른 인상이 되어 버린다.
셋 째, 어린아이나 노년은 일단 나중에.
사랑하는 아이나 부모님 모습을 그리고 싶은 사람이 많겠지만 소중한 만큼 실력이 늘었을 때까지 미뤄두자. 실전은 나중에, 연습은 다른 얼굴로.
아이들은 아직 이목구비는 흐릿한데 피부는 너무 깨끗하다. 그래서 닮아 보이게 이목구비 위치 잡고 모양 잡는 게 너무 어렵고 깨끗한 피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자칫 통통한 볼살은 평면이 된 채로 누군지 모를 얼굴만 남는다. 예쁨보다 귀여움이 표현하기 더 어렵다.
반대로 노년의 모습은 얼굴에 디테일이 너무 많다. 잔주름 하나하나 다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실물보다 훨씬 늙어버리기 쉽다. 적당히 생략하고 남기는 게 필요한데 초반에 그 적당함을 잡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노년의 모습은 재미가 붙을 때까지 일단 패스.
넷 째, 예쁜 사람을 그리면 그림 자체가 예쁘다.
닮았는지와는 별개로. 안 닮아도 예쁘면 위안이 된다. 누군지 말 안 하면 잘 그렸네, 소질있다는 말도 들을 수 있다.
덤으로 그림선도 예뻐진다. 나중에 지인을 그렸을 때도 그 예쁨은 남아있다. 그림의 가장 큰 장점은 미화(美化)에 있다. 이것은 AI가 진짜 잘 못 하는 것이기도 하다. 못 생기게 닮게 그려 주느니 덜 닮아도 예쁘게 그려주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다섯 째, 측면 말고 정면부터.
옆모습은 이목구비 비율 맞추고 위치 잡는 것도 쉽지 않고 명암 넣기도 어렵다. 자칫 잘 못하면 얼굴이 비뚤비뚤해진다. 그러니까 정면. 웬만하면 정면을 그리는 게 좋다. 이왕이면 증명사진 찍는 자세로. 목을 빼거나 옆을 보거나 위를 보거나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이는 모습은 잘 그리지 않았다간 대참사다.
여섯 째, 작게 그린다.
사진도 줌으로 당겨서 얼굴 꽉차게 찍으면 굴욕이다. 얼굴도 마찬가지. 스케치북을 꽉채운 얼굴은 보기 좋기가 어렵다. 작게 그려서 명암만 잘 넣어도 느낌은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땐 크게 그려서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는 게 더 좋은 방법이긴 하다.
이것은 모두 단기 성과에 집중한 팁이며 장기적으로 실력을 쌓으려면 무엇보다 기본기가 중요하며 많이 성실히 오래 다양하게 그려야 함은 당연하다.
화실 다닌 두달 째의 그림. 이목구비 뚜렷한 예쁜 서양사람의 정면 얼굴은 난이도 "하"에 속합니다. 나 좀 소질있나 싶어서 열심히 화실 다녔지요. 몇 년 쉬었더니 손맛이 예전 같진 않지만 성취감의 기억이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