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 너무나 가혹했던 인생
동기언니와 근황 이야기를 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 아 근데 그거 들었어? Y 언니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대.
- 네? 어쩌다가요? 왜요?
-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거의 십년만에 소식을 들었는데 3개월 정도 살 수 있다나봐.
가슴이 철렁했다. 물론 나도 십년, 아니 그 보다는 덜 되었을 것이다. 졸업 후 언니의 결혼소식을 듣고 연락을 하긴 했으니. 아니, 어쩌다, 왜. 너무 선하기만 한데 모진 시간을 버텨낸 언니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미어지게 아팠다. 연락을 해도 될까, 보러가는 건 오버인가, 아니 볼 수는 있는 상태인가. 어쩐지 SNS로 꾸준히 근황을 보여줬었는데 근래엔 뜸했던 것 같다. 건강이 안 좋아서 그랬구나.
한참을 망설였다. 연락을 해도 될지. 내가 아는 체를 하는 게 맞는지. 이런 상황에 위로라는 게 의미가 있을지,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지.
언니는 갓 50이 되었을 것이다. 딸이 있고 나이 드신 부모님이 계신다. 아버님을 뵌 적이 있었다. 언니처럼 인상이 참 선한 분이셨다. 아무쪼록 우리 애 잘 부탁한다 하셔서 내가 한참 동생인데 어찌 나한테 이런 말씀을 하실까 의아했었는데 그 후에 우연히 알게 된 언니의 과거를 듣고 참 아픈 손가락이겠구나 이해가 되었다. 건너 듣기로는 언니가 겪은 모든 일들에 아버님은 당신 탓을 하시며 우셨다고 한다. 언니의 시한부 판정에도 또 당신 탓을 하시며 우실 것만 같다. 얼마나 기가 막히실까.
언니는 나와 같은 로스쿨에 나보다 한 기수 다음 기수로 입학을 했었다. 늦은 나이에 입학을 해서 고시 장수생이려니 짐작했었는데 드라마보다 기가 막힌 사연을 후에 알게 되었다. 인생, 왜 한 사람에게 시련을 몰아주는 걸까. 적당히 하지 좀.
세상 사람들과 인생은 언니에게 가혹했지만 언니는 사람 잘 믿고 누구든 도와주려 하고 참 선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나이에 비해 사회성이 다소 부족한 편이라 가끔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는 행동을 할 때도 있었다. 순수한 사람들이 악의없이 주는 불편함. 당시엔 감싸줄만한 아량과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그런 순간들만 떠올랐다. 난 왜 더 따뜻하지 못했을까? 왜 가끔 잘 지내냐는 안부도 묻지 못했을까?
가끔은 천재끼를 드러낼 때도 있었다. 언니는 S대 법대 출신이었다. 굴곡을 겪지 않았으면 소년급제해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인생은 가혹하기만 한 게 아니라 뒷통수를 쳤다. 인생 전반부에 영광을 몰아 주고는 방심한 때 무자비하게 시련을 연타로 날렸다.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새 삶을 살아보겠다는 생각도 못할 정도의 시련이었다. 그러고 보니 선한 사람이 가장 강하다. 내 탓하던 아버지의 사랑도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함부로 추측하는 게 결례가 될까 걱정된다.
연락해도 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언니의 SNS에 근황 소식이 올라왔다. 항암치료 중이었다. 다행히 밝은 모습이었다. 잘 극복하겠다는 문구와 함께 언니는 활짝 웃는 사진을 게시했다. 문자 정도는 할 수 있는 상황인 것 같아 과일 선물과 함께 응원 문자를 보냈다. 답장도 금방 왔다. 많이 외로운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은 잊혀질까봐 두렵다고 하던데 열심히 근황을 올리는 이유는 극복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죽음을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일까.
병문안을 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언니는 입원한 병원과 면회 가능시간을 내가 묻기도 전에 알려줬다. 정말 많이 외로운 것 같았다.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으로 인한 두려움과 외로움. 한 평생 선하였던 언니의 병실엔 늘 병문안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니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 둘러쌓여 있는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지 않을까.
병원이 서울이라 당장 가볼 수는 없었고 꾸준히 올라오는 소식에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언니를 만나지 못했고 부고도 몇 주나 지나 후에야 접했다. 넘치게 다정하지 못한 것은 내 마음 속에 묵직한 돌로 남았다. 다행히 사랑하는 가족들이 옆을 지켰고 대학시절 친구들이 끝까지 의리를 보였던 것 같지만 내가 끝내 언니를 보지 못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이기적이지만 무거운 마음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언니의 얼굴을 그리며, 추모의 마음을 담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다시 힘을 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더 다정하지 못해 미안하고 언니의 다정함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