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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by 푸른국화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말 그대로 한 소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늘과 열매 정도는 나눠 줄 수 있다쳐도 자신의 기둥을 내어준 후 오랜만에 찾은 소년이 편히 쉬도록 남은 밑둥마저 내어준다. 어릴 때 이 동화는 그저 소년이 이기적이네, 나무는 왜 그럴까 이 정도 감흥을 남길 뿐이었다. 조금 더 커서는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와서 보니 나무기둥까지 베어간 후 밑둥까지 차지한 그 소년이 나였다. 밑둥마저 내어주는 나무가 바로 우리 아버지. 그 아버지는 이제 당신 뿌리까지 내어주려 하신다.


<<폭싹 속았수다>>의 양관식처럼, 아버지는 열을 가져놓고 나에게 백, 이백을 주셨다.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절도 아니었고 우리집도 넉넉한 집은 아니었다. 공무원, 대기업이 아니고서야 일 하고 돈 떼이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니 늘 빠듯했고, 빠듯한 살림에 자식 둘을 먹이시느라 아버지는 불편한 데가 있어도 제때 치료하지 못하신 것 같다. 무쇠는 아파도 아프단 말이 없어서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가족들도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드시는 게 영 시원찮으니 치아가 말썽인 것을 겨우 눈치챘다. 자식들이 눈치챌 정도면 상당히 오랜 시간 혼자 않으셨을텐데 왜 제때 치과에 안 가신건지. 이제는 자식들이 다 독립해서 돈 들어가는 자식도 없는데 습관이 무서운 것인지 아버지는 당신에게 쓰는 돈을 그렇게 아까워 하신다. 결국 살릴 수 있는 치아가 몇 없어서 대대적인 인플란트 시술을 받으시느라 엄청 고생하셨다. 하지만 시술받고 나시니 이제 뭐든 마음껏 드시니 다행이다.


아버지는 양관식처럼 자식에겐 죽어도 시키기 싫은 일을 당신은 자식을 먹이려 묵묵히 하셨다. 그런 아버지 덕에 나는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다. 직장생활 힘들다 해봤자 아버지에 비할 바 아니며 사는 게 녹녹치 않다는 말도 아버지 앞에선 쏙 들어간다. 그저 우리 세대가 우리끼리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행여 내가 직장생활 힘든지, 스트레스받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신다.


"딸, 학교 다니고 일도 하려면 힘들텐데 학비랑 용돈 줄테니 학위받을 때까지 공부만 하는 거 어때?"

그야말로 기둥까지 베어간 자식에게 이제 남은 밑둥도 마저 가져가라 하신다. 집 팔아 유학가는 길에 펑펑 울던 금명이처럼 나도 속이 상해 짜증을 내고 말았다. 짜증을 내는 핑계는 아직도 내가 애냐, 학교 한 2년 다니면 학위 그냥 주는 줄 아나, 2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다 내가 평소에 돈을 얼마나 쓰는데 그걸 아빠가 무슨 수로 생활비를 대준단 말씀이냐, 일은 쉬었다가 내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줄 아나였지만 사실은 밑둥만 남은 것도 마음이 아픈데 그것마저 내가 없앨까봐 무서워서, 장성한 자식에게 쿨하게 직장 때려치라 하는 아버지는 사회생활, 직장생활이 얼마나 고달프고 싫었을까, 그런데도 본인은 묵묵히 해낸 게 너무 슬퍼서였다.


미안하고 감사하단 말이 차마 안 나와서 한바탕 짜증을 퍼부었다. 이런 못돼먹은 딸인데도, 본가에 온다고 하면 아버지는 한 참을 마중나와 계신다. 나이든 딸이 집 못 찾을까봐 어디까지 마중을 나오신다. 더운날 땡볕에 땀 흘리고 서 있는 아버지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또 성질을 부린다. 아빠와 헤어질 때마다 다정한 딸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그게 그렇게 안 된다.


나는 아버지에 비하면 좋은 근로조건에 편하게 일하는 편이다. 내 나이였던 아버지보다 고소득인데다 나는 나 하나 먹여 살리면 되니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며 이 나이에 다시 공부까지 시작했다. 그런데도 불안하고 조급하고 막막할 때가 있다.

내 나이보다 어렸던 아버지는 힘든 환경에서 어떻게 나를 키우셨을까? 평생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주시고도 어째서 또 주려 하시는걸까?


부모라 해서 당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선 나부터 그럴 자신이 없고, 자식들이 제발 독립 좀 해주길 바라는 부모들도 내주변에 많다. 이쯤했으면 내 삶 좀 즐기자는 부모들을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아빠도 그림 좀 그려달라 하셨다. 사진이 있어야 보고 그리는데 아버지는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었다. 울컥했다. 나중에 아빠가 보고싶으면 어쩌라고 야속하게 사진도 안 남겨 주신건지.

늙으면 사진찍기 싫어지는 거라 하신다. 그래서 젊은 날의 아빠를 그려봤다. 어린시절 찍은 사진을 보며.



그리고 지금 아빠 얼굴을 그려 보았다.



동생에게 닮았냐고 물으니 똑같다며 웃는다.

그런데 젊은 날의 아빠와 오늘의 아빠 얼굴을 나란히 놓고보니 웃을 수가 없다. 아버지도 나보다 어렸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이다. 젊은 날의 아빠는 멋도 부리고 싶었을테지. 그 시절이 다 지나가 버린 게 마음이 아프다. 늦었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밑둥만은 지켜주고 싶다. 할 수 있다면 기둥, 가지 남아 있는 나무 부럽지 않은 밑둥과 뿌리를 지켜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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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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