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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성찰

I 중에 가장 I라는 INTJ

by 푸른국화

"팀장님, I 일리가 없어요. 당연히 E라고 생각했는데."


현직장에서 두번째로 많이 들었던 말이다. 하하.

하지만 그들이 보는 내 모습은 한 번의 전문대학원 생활과 네 번의 직장생활이 만들어 낸 인격이다. 내 오랜 친구들, 특히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학교 친구들은 내가 " I "중에서도 극 " I"라는 것에 모두 동의한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가 소모되는 편이고 에너지를 채워 넣으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들 앞에서 나서기를 썩 좋아하지 않으며 여러사람을 한꺼번에 만나는 자리보다는 소수멤버로 여유롭게 만나는 자리를 선호한다. 사람이 많아지면 무대공포증도 생긴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는 오래된 인연에 정성을 쏟으려 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인연에 벽을 치는 것은 아니다. 친구가 많고 인맥이 넓은 것보다 나는 "어떤 사람과" 친밀한지 훨씬 큰 의미를 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과 서먹하거나 잘 못 지내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사람을 가려 사귀는데, 그 가려사귐을 지양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이게 맞고 저게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내가 이렇게 생겨 먹었다는 것이고, 이렇게 생겨 먹은 게 싫지 않다. 누군가는 이런 내가 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쩌라구? 너무 사무적이잖아. 아니, 사무적인 관계 맞잖아? 좀더 친해보고 싶다는 거지. 그러니까 그건 본인 사정이고. 난 그럴 생각 없으니까 사무적이겠지?


여기서 이미 눈치 챈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렇다, 나는 "T"다.

하지만 현직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바로,

"팀장님 T일리가 없어요. F이실 거에요."

이다. 이것 또한 내 오랜 친구들은 내가 F 성향보다 T 성향에 가깝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F는 좋고 T는 나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하지만 I 성향과 마찬가지로 T 성향이 강한 내 자신이 싫지 않다. 아니, 조금더 냉철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 때도 있다.


회사에서 나를 F 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비교적 풍부한 감정표현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좋은 감정은 더해서 표현하고 나쁜 감정은 조금 깎아서 표현하긴 하지만 어쨌든 표현은 한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불편함도 어떻게든 표현을 한다. 물론 세 번은 참지만, 네번째부터는 참지 않는다. 세 번이면 내 생각엔 타인의 결례에 그 정도 참아줬으면 참아 줄만큼 참아 준 것이고, 그 이상 참아줄 이유는 없는데 표현하지 않으면 개선의 여지도 없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의미로 F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내가 타인이 곤란을 겪을 때 내 일처럼 고민하기 때문이라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가장 T스러운 모습이다. 해결책을 찾는 게 바로 내 일이다. 해결책을 찾는다고 밤낮없이 고민하고 잠을 설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고친 부서는 다 퇴근했는데 왜 혼자 남아서 고민하냐고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사고치는 게 그 부서의 일이고 해결하는 게 바로 내 일이니까. 내 일을 하느라 퇴근을 못한 것이다.


이런 나를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되게 차갑고 딱딱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너무 따스하시다고. 반면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냉정하다고.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알 것 같으니 따스하단 말에 기쁘지도 않고 냉정하단 말에 슬프지도 않다. 그러면 나란 사람은 어떤 말이 기쁘고 어떤 말이 슬플까?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더할 나위없이 따뜻하고 편안한 사람이고 싶다. 일로 만난 사람들은 차갑고 어느 정도는 편치 않은 사람이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일로 만났지만 자연스럽게 친구 범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친구 범주로 넘어간 뒤엔 따뜻하고 편안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가족, 친구들 사이에서 눈치 제일 많이 보게 되는 걸 보면 완벽하진 않지만 가까울수록 배려하고 노력하고 있나보다.


나는 눈꼬리가 아래를 향하고 선이 가늘고 희미하게 생겼다.

이렇게.



그리고 잘 웃는다. 성격이 좋은 건 아니고 자본주의 미소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엄청 착하고 성격이 순할거라 기대한다. 원래 이렇게 생긴 웃상들이 많이 착하고 순했나 보다. 하지만 난 별로 그렇지 못하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도 큰 편이지만 난 그닥 슬프지 않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내 추구미는 아니라서. 악하거나 남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으면 난 사람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어렵고 곤란한 사람을 돕고 선행을 베풀테지만 무차별적인 다정은 그닥. 내 추구미는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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